2022년 겨울 133호 - [노들아 안녕] 그렇게 문득, 노들을 만났습니다 / 남호범
노들아 안녕
그렇게 문득, 노들을 만났습니다
남호범
안녕하세요, 남호범이라고 합니다. 지난 학기 노들야학의 신입교사이자 청솔 1반 류재용 학생의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노들에서의 일상을 함께 했습니다. 이번 학기부터는 신입교사 길라잡이 과정을 마치고 정식으로 청솔 3반의 수학 수업을 맡게 되었어요.
작년에 노들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불안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가 정말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 마음도 몸도 피폐해지고 주변 관계들도 점점 무너져갔습니다.
그맘때쯤이었어요. 별다른 생각 없이 아침 지하철을 탔다가 우연히 눈앞에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직접 보고 들은 장면 하나하나가 제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때서야 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맞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의 절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어요. 동시에 그러한 절실한 외침에 무참히 쏟아지던 욕설들과 폭언, 무관심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무언가, 지금껏 내가 당연하게 여겨 온 배움과 관계와 세계가 흔들리는 계기였달까요.
그렇게 그날 이후 저는 장애 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눈에 띄던 이름이 단연 ‘노들장애인야학’이었습니다. 특히 노들야학에서 오랫동안 교사 활동을 했던 홍은전 작가님이 쓴 책 〈그냥, 사람〉을 읽으며 노들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키워갔어요. 저는 은전 작가님이 수많은 지면을 통해 마음껏 뽐내고 자랑한 노들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 함께한 경험들이 정말 궁금했고 또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과 부러움은 끝내 지금껏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 새로운 앎,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다는 자그마한 용기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저는 대학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고,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때마침 새로이 활동지원사를 구하던 재용씨와 만날 수 있었고, 이윽고 야학의 신입교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당시의 저는 무작정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던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로든 내가 필요한 곳, 더 정확히는 내가 필요한 존재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죠. 사실 그건 순전히 나만을 생각하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난 반 년 노들에서 함께하며 너무나 즐거웠고 많은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었어요. 어느새 웃음도 많아졌고, 몸도 마음도 주변의 관계들도 이전보다 더 잘 살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전의 나라면 보고도 듣지도 않으려 했을 말과 몸짓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언어와 시야 역시 조금은 넓고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때때로 지치고 겁이 났을 때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어려운 순간들을 계속 마주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노들과 함께라면 조금은 안심일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앞으로 노들의 자리 어느 곳에서든 늘 함께하며 힘을 보태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고맙습니다.
추신. 낯을 많이 가리지만 실제로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시시콜콜한 농담, 강아지, 산책, 재즈, 영화, 뒤풀이 그리고 잠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조그마한 책방을 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