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시설말고 집! 쪽방말고 집! 집집집! 우리집! / 민푸름
시설말고 집! 쪽방말고 집! 집집집! 우리집!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들센터는 2022년부터 "종로구 주거권 옹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쪽방주민의 주거권에 대한 논의에서 장애거주민은 비가시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쪽방이 비장애인에게도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보니 장애거주민은 당연히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거의 선택지가 협소하고, 경제적 안전망 형성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장애당사자들이 쪽방촌을 포함한 비적합주거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과 장애라는 두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지점의 쪽방촌 거주 장애당사자는 주거/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지곤 한다. 이에 노들센터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지역사회’를 위해, 쪽방촌 거주 장애인이 생명권에 준하는 권리로의 주거권을 온전히 향유하고, 장애당사자로 권리로서 보장받아야할 여타 법적, 제도적 지원을 활용하며 지역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종로구 주거권 옹호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4월, 종로구에 위치한 창신동 쪽방촌은 민간개발이 확정된 바 있다. 창신동 쪽방 정비계획은 쪽방 주민에 대한 임대주택을 세우고, 임시 거주 대책을 마련하도록 정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정비계획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개발소식이 오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쪽방 건물주 및 관리자들은 쪽방 주민들을 퇴거시키고 있는 실정이었다. 창신동 쪽방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는데도 종로구, 서울시 등 창신동의 재개발사업과 창신동 주민들의 주거권에 책임이 있는 그 누구도 주민에 대한 사전퇴거 예방 내지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반빈곤운동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는 '2022 홈리스추모제기획단 주거팀'과 노들센터가 함께 ‘팀창신’이라는 이름의 연대체를 결성하고 창신동 쪽방주민들의 주거권 옹호활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운영되는 ‘화목한 사랑방’을 창신동 쪽방촌에 마련하여, 창신동 쪽방촌 거주 장애/비장애거주민 분들을 만나뵈었다. 만나뵌 주민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쪽방촌 거주 장애당사자의 주거권 보장실태를 파악하고 파악한 바를 바탕으로 쪽방촌 거주 등록/미등록 장애당사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사례지원을 진행했다.
또한 ‘화목한 마을 소식지’라는 자립생활정보지를 매월 발행하여 진보적 장애운동과 반빈곤운동의 소식을 공유하고, 가난한 이로, 장애를 가진 이로 자립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더불어 화목한 사랑방 앞 마당에서 창신동 쪽방촌 거주 장애/비장애 거주민 분들, 그리고 종로구 주거권 옹호활동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창신동 1열]이라는 이름으로 주거권 옹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동체상영회, 거리강연회, 거리집담회의 형태로 주거권, 탈시설, 자립생활, 빈곤, 당사자 연대/네트워킹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활동 소식은 노들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보다 더 넓은 방은 없는 거야?” 할아버지는 쪽방이 처음이라고 했다. 창신동에 쪽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싸게, 보증금 없이 방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왔다고 했다. 동네에서 본 적은 없지만, 동네에서 수없이 봤음직한, 익숙한 낯선 이를 알아본 동네 이모들이 할아버지에게 방을 구하냐 물었고, 창신동에 처음 온 그 날 윗마을에 할아버지는 자리잡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건물의 2층과 3층을 올라가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층계를 오를수록 방값은 만원씩 줄지만, 방 크기는 반절 가까이 작아진다는 걸 몰랐다. “여기보다 좁으면 관보다도 좁은 거 아니냐”고 할아버지는 양은냄비에 물을 끓이며 말했다. 양은냄비에 팔팔 끓인 물로 우리는 믹스커피를 타서 나눠먹었다. 할아버지는 한약처럼 믹스커피를 마셨다. 믹스커피를 마시며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전기장판에 손을 댔다. 커피잔을 쥐었던 손이 전기장판보다 따듯해서, 사실 추운 방에서 따듯한 건 커피잔뿐이어서 전기장판이 켜있었는데도 정말 켜있는지 확인하게 됐다. 할아버지는 천원짜리 옥수수빵도 반을 갈라주시고, 믹스커피도 두 개나 뜯어서 커피를 타주셨다. 한 롤에 500원하는 두루마리 휴지도 두 바퀴를 둘둘 풀어 건네주셨다. 우리는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빵을 쥐고 다음 주에 나눠먹을 간식거리를 고민했다.
할아버지와는 ‘창신1정비구역 쪽방주민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처음 만났다. 팀창신은 2022 홈리스추모주간 사업으로 ‘창신1정비구역 쪽방주민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의미화하여 결과보고회를 통해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3일에 걸쳐 쪽방 방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설문을 진행했다. 일상생활, 장애와 건강, 시설경험, 사용 중인 사회서비스, 창신동 재개발사업과 관련된 질문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창신동에 자리를 잡던 시기, 많은 창신동 주민분들이 마을을 떠나셔야했다. 창신동에서 진행되는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건물주들이 일방적으로 쪽방 영업 중지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재개발사업이 발표될 때 쪽방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주대책 가이드라인도 포함은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신동 주민들에게 이러한 대책이 있다는 건 알려지지도 않았고, 속수무책으로 방에서 쫓겨났다. 주민들은 엇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곧 건물을 닫는다. 두 달쯤 뒤다. 이후로는 물도, 전기도 끊긴다. 다만 그 때까지 월세는 받지 않겠다. 방을 비워달라.” “사정은 안다. 나도 방을 주고 싶다. 그런데 정말 방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주민들은 대책도 없이 방에서 쫓겨났다. 말뿐인 이주대책이라 주민들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해야했다. 운이 좋은 주민은 빈방을 구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창신동 안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창신동 쪽방촌 자체를 떠나야했다. 그렇게 2020년 기준 388명이던 쪽방주민은 현재 180여명으로 줄었다.1) 서울시는 매년 ‘쪽방 거주민 실태조사’를 실시하는데, 금년도의 실태조사 결과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 그러나 창신1정비구역에서 주민으로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와중 쪽방상담소 관계자가 현재 창신동 쪽방촌 주민 수와 관련하여 위와 같이 전언하였다.
1) 서울시는 매년 ‘쪽방 거주민 실태조사’를 실시하는데, 금년도의 실태조사 결과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 그러나 창신1정비구역에서 주민으로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와중 쪽방상담소 관계자가 현재 창신동 쪽방촌 주민 수와 관련하여 위와 같이 전언하였다.
오랜간 유지해온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주민으로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지원도 어떤 것도 받지 못했다. 재개발사업 내에 쪽방주민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알려준 이도 없었다. 건물이 문을 닫을 때까지 두 달여의 월세를 받지 않는 것으로 모든 지원이 ‘퉁’쳐졌다.
할아버지가 사는 건물은 그렇게 쫓겨난 주민분들이 가장 탐냈던 건물이다. 아랫마을부터 사전퇴거가 시작돼 당분간 윗마을은 비교적 퇴거 위험으로부터 안전했다. 윗마을 대부분의 쪽방 건물들은 아랫마을 건물들보다 층계가 높고, 계단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건물 상태가 더욱 낙후되어있는데 할아버지가 사는 건물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에 속했다. 무엇보다 양변기가 있었고, 층별로 싱크대가 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 손을 씻을 때, 설거지를 할 때 쪼그려 앉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방을 구해야하다보니, 1층에 있는 방, 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과 같이 그나마 주민 자신의 건강 혹은 장애상태를 고려한 방을 구하는 것은 뒷전이 된다. 이 건물에 방을 구하자고 단전, 단수 처리된 영업중지 쪽방건물에 마냥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한답시고 쪽방주민에게 하루 한 끼를 쪽방촌 인근에서 지정한 동행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권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하루 두 끼를 챙겨먹는 할아버지는 반 절의 부담이 줄어든 것 같았다고 했다. 쪽방에서의 겨울이 처음인 할아버지는 쪽방상담소를 통해 배분되는 방한용품도, 겨울나기 음식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쪽방상담소까지 손수레를 끌고 가야해서 지팡이를 짚지 못해 몸에 부담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없으면 겨울나기가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사전퇴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굳이’ 이런 취약한 쪽방에 살고자 하는 이유가 있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쫓겨나지 않을 ‘권리’의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현 복지전달체계에서 ‘쪽방주민’은 인정 여부가 따져지는 ‘지위’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번 팀창신에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 거처에서 퇴거 당할 경우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계획 없음” 응답이 40.8%, “같은 구 쪽방 또는 비적정 주거”로 이주가 32.4%로 높게 나타났다. 이주대책 없는 퇴거가 이뤄질 경우 응답자들이 주거를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예상하게 하는 답변이다. 당장 주민들이 경제적 안전망을 확보하거나, 일시적이나마 경제적 상황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이상 쪽방이 아닌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 등 보증금이 없거나 매우 적으면서 주거급여 내에서 월세가 충당 가능한 다른 비적정거처로 이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쪽방촌에는 그래도 그나마 ‘쪽방상담소’가 있다. 새삼스럽지만 쪽방촌에 위치한다고 해서 다 쪽방 건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팀창신이 마을 내에서 운영하는 화목한 사랑방이 처음 입주할 때 해당 건물은 쪽방건물로 인정되지 않았다. ‘입주민이 2년 정도 없어서 그랬던 거 같다’고 추측할 뿐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고 본격적인 사전퇴거가 이뤄지며 주민들이 마을 내에서 급하게 방을 구해야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어느새’ 다시 쪽방건물로 인정되었다. 이전까지 해당 건물로의 이사를 ‘창신동 안에서 유일하게 방이 남은 건물이지만, 쪽방이 아니라서 고민’했던 주민들은 이 건물이 ‘쪽방 건물’로 인정받은 뒤에야 입주하기 시작했다. 쪽방건물로 인정이 되지 않는 건물에 살면 주민들은 쪽방상담소에서 제공하는 지원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인정받는 쪽방건물’에서 거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동행식권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번 겨울 쪽방상담소를 통해 배부되는 방한용품들도 수급비를 아끼고 아껴서 스스로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도적 돌봄이 뻗치지 않는 창신동 쪽방촌에서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인 쪽방상담소에의 의존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주거상향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할 때 ‘주거취약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창신동 쪽방촌에서 수십년을 살았어도 쪽방건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물에서 가장 최근 몇 개월 살았다는 사실이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퇴거 상황을 마주하며 ‘쪽방주민’ 또한 분투해야 얻을 수 있는 ‘지위’라는 것을 확인한 주민들은 이 ‘지위’를 상실한 이후, 복지전달체계의 밖으로 밀려난 일상을 그려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쪽방촌에 남아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복지전달체계 말단의 말단에라도 남아있고자 할 수밖에 없다.
창신동 쪽방촌 재개발사업에 책임이 있는 이는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특히나 창신동에서 자신의 취임식을 진행했다. 창신동은 오세훈 시장님에게 취임식 배경으로 적절한,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슬로건을 돋보이게 해 줄 배경천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오세훈 시장이 취임식을 하겠다고 방문한 그날에도, 에어컨을 달던 그날도 주민들은 창신동의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행식당이 잘 운영되는지 확인해보겠다며 추석 연휴에도 창신동 쪽방촌을 방문했다고 한다.
창신동에 들인 그 걸음걸음에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발을 디딘 창신동 골목 모든 곳에 주민들의 부담이 녹아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 팀창신 활동을 시작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세 번 찾아갔다. 처음엔 7월 12일에 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 쪽방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주민들에게 식권을 나눠주는 그 대책이, 약자와 동행하겠답시고 들고 온 그 정책이 정작 약자의 편에서, 창신동 쪽방 주민의 편에서 그 어떠한 행동도 함께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러 갔다. 그 당시도 창신동 쪽방주민분들은 강제퇴거에 시달리고 계셨다. 갑자기 문을 닫는 쪽방건물이 너무 많아서, 정말 들어갈 방이 없어서 주민분들이 봇짐을 싸서 마을을 떠나고, 마을 내에서 이 방 저 방으로 몸을 옮겼다. 물론 에어컨과 식당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9월 22일이었다. 양동, 동자동, 돈의동 주민분들과 함께 갔다. 그때는 분명한 숫자도 있었다. 2020년 기준 388명이던 쪽방주민의 40%가 사라졌다는 걸 보여주는 숫자였다. 마을 곳곳에 지주대책위원회, 재개발추진위원회, 재개발대책위원회 등 재개발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무실이 차려지고, 남은 주민분들은 그제야 항간의 소문인 줄만 알았던 창신동의 재개발이 코앞까지 왔음을 아셨다. 서울시도, 종로구청도, 쪽방상담소도 아니라 거리의 간판과 현수막을 보고서야 아셨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서울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주민분들이 각자 알아서 이사할 곳을 구하고, 이사할 곳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창신동에 20년 전에 들어올 때도 재개발이 되니마니 하던데 설마 되겠냐, 진짜 되면 어떻게 하냐는 당장 오늘 내 집이었던 곳이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 시달리고 계셨다.
그리고는 12월 8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인데도 9월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창신동을 떠나고 마을에는 걸음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문을 닫은 건물과 문을 닫을 건물, 떠난 주민과 떠날 주민들로 나누지 말라고, 운이 좋아 늦게 떠날 사람들과 운이 좋아 늦게 문을 닫을 건물들로 창신동을 남겨두지 말라고 절박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서울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얼마전 종로구 신년인사회에서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창신미래도시’ 프로젝트가 ‘건전한 젊은 중산층’의 삶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지, 그들을 유입하는 것이 강남에 넘겨줘야했던 발전의 구심점을 종로로 되찾아오는 ‘모던 종로’의 발전에 얼마나 중대한 원동력을 마련하는 일인지 신이 나서 설명했다. 단상에 두루마기 한복까지 갖춰입고 선 구청장은 농담이랍시고 ‘그렇게 되면 종로 집값은 또 얼마나 오르겠냐’고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기가 찼다.
할아버지는 창신동 쪽방촌을 부끄러워하는 게 이해가 간다고 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이렇게나 낡고 지저분한 동네가 아직도 있으니”, “싹 허물고 새로 아파트로 세우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그 부끄러움을 이해하는 것까지도 할아버지의 몫이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생길 때쯤 할아버지는 당분간은 별일 없을 테니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라고도 했다. 그러겠다고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벌써 가냐고, 다음 주에는 더 일찍 오라고, 꼭 오라고 하셔서 그 또한 그러겠다고 답했다.
다음주에는 귤 같은 과일을 가져가서 나눠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군데군데 문을 닫은 상가 창고와 아예 허물어진 창고들, 건물이 문을 닫은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 사람들이 더는 향하지 않는 샛길을 지나치며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봤다. 생각이 깊어지면 이건 애초에 비빌 수가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에까지 가닿곤 했다. 그래도 미래를 운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운에만 맡겨놓은 미래에 출구는 없을 테니까. 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니까 어떻게든 싸워야한다. 근데 대체 왜 투쟁하지 않고는 지역사회에 자리 한 켠,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게 만드는지, 왜 누군가에게 지역사회는 안식처가 아니라 투쟁의 장이어야만 하는지, 왜 누군가의 일상은 그냥 일상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순간들의 연속인 건지 넌덜머리가 났다. 그러다 또 문득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나아가 동조하는지 이들에게 넌덜머리가 나는 건지, 투쟁으로도 바꿔낼 수 있는 게 없으면 어떡하나 하고 의심하는 나에게 넌덜머리가 나는 건지, 둘 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화목한 사랑방 마당 앞에 도착하니 팀창신 활동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당 프로그램을 할 때 함께했던 대항로 활동가들, 권리중심 일자리 노동자들, 권익옹호활동가들도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팀창신 활동가들이랑 같이 창신동에 있으면 깊게 생각하지는 일이 적었던 것 같다. 같이 웃고, 같이 화내고, 같이 일하느라 바빠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나저제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무엇이든 할 것이고, 누구든 만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출구든 비상구든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시설도 쪽방도 거리도 아닌 지역사회에서 우리집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믿게 됐던 거 같기도 하다. 2023년도에도 창신동 쪽방촌에서 장애/비장애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한 투쟁은 이어진다. 더 많은 대항로의 동지들과, 대항로와 함께하는 동지들과 더 많은 주거권 현장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