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교단일기] 미.술이라고 술.술 넘어가는 게 아니구나 / 김준영
교단일기
미.술이라고
술.술 넘어가는 게 아니구나
김준영
교사활동을 한 지 벌써 3년이네요. 노들에 와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
노들야학에서는 계획과 달리 흘러가는 일들이 많다. 우선 미술 전공인 내가 미술 수업을 맡기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업들을 진행하게 되었다. 특활반 매니저부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어 수업과 이론인 예술 수업까지. 돌고 돌아 지난 1학기부터 맡게 된 미술 수업 역시 학생분들의 역할이 큰 실기 수업이어서 그런지 전에 맡았던 수업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생각나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먼저, 제시어의 모양을 설명하면 그 설명대로 그림을 그리고 맞추는 게임을 하려 한 적이 있다. 설명대로 그리지만 제시어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그날 마침 참관 선생님도 함께해 더 기대가 되었다. 영상을 보여 드리고 열심히 설명해 드렸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에 전처럼 그냥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종이 안 보고 상대방 얼굴 그려주기. 이건 친구들과 직접 해봤고 정말 재밌었기 때문에 강한 확신이 있었다. 이날도 참관 선생님이 함께해 즐겁게 그림을 그려주셨다. 이후 소감 나누는데 학생분들은 별로 재미없었다고 하셨다. 이날 그린 그림은 교실 1에서 사라져 아직까지 행방불명이다. 교실 1은 낮의 진수업부터 저녁의 미술수업까지의 그림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오늘은 기분이 아니라며 작업을 거부하는 학생분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이 끝나서까지 작업을 하는 열정적인 학생분들도 계셨다. 매번 수업을 마치고 나면 목요일이지만 치열했던 한 주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한 주 한 주 지나고 어쨌든 학기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제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1학기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학기 말에 멋들어진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매번 재료는 어떤 거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걸로 우린 무엇을 만들 건지 설명하다 보니 학생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다. 마지막 날엔 작품 설치하다 시간이 다 가 전시는 방학 중에 보세요, 하고 얼렁뚱땅 마무리 지었다. 2학기에는 좀 여유롭게 학생분들의 일상과 안부를 충분히 묻고 수업도, 전시도 조급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여전히 정신없었고, 각자의 개성 넘치는 작업을 시리즈로 전시하지 못한 게 아쉽다.
돌아보자면 자기표현 방법 중 하나인 미술을 어려워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공자로서 이 즐거움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노들에 왔다. 학생분들은 창작활동에서 소외됐을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같이 그림을 그릴 때 보면 내가 가장 어려워하고 있다. 학생분들이 아주 거침없이 표현하신다. 분명하고 솔직하게. 오히려 내가 새로운 경험과 에너지를 받고 있다. 원체 활달한 성격이 아니어서 수업 후에 몸이 지치지만 뭔가 미소를 띠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 덕에 3년 동안 가늘고 길게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쉽지만 다음 학기엔 나의 공부를 좀 더 해보고자 노들 수업은 쉬기로 하였다. 그래도 아직 함께해 보고 싶은 작업이 많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