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이태원 참사, 참사‘들’, 그리고 사회적 애도의 가능성 / 정창조
이태원 참사, 참사‘들’, 그리고 사회적 애도의 가능성
애도를 거부한 사람들을 위한 변명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노들장애학궁리소 등에서 활동한다. 노들야학 교사로 다시 활동하고 싶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복직이 늦어져만 간다.
타자의 존재감이란 그가 사라졌을 때 가장 강렬하다. 일상을 당연한 것처럼 함께 꾸려온 이의 존재는 그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절실해진다. ‘있음’에 대한 감각이 가장 예민해지는 건 역설적으로 ‘사라짐’의 경험에서다. 그리고 애도란 바로 이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대개 한탄과 슬픔, 체념에 머물지만, 때로는 사라진 이가 누구이며 어떤 말을 전하려 했는지, 그는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타자의 빈자리’란 더는 들리지 않는 그의 음성이 생전보다 뚜렷이 발화되는 장소, 그러므로 타자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떠안는 장소이다. 설령 죽은 이가 얼굴을 맞대온 이가 아닐지라도, 그의 사라짐으로 인해 일상의 균열이 혹은 일상의 모순이 감지된다면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사회적 참사’가 누군가에게 연쇄적으로 새로운 실천을 자극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모든 이가 참사 앞에서 기꺼이 이 책무를 떠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나의 고통을 감내하기도 벅찬 이들에게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요구는 도리어 자신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오래전부터 억울함의 정동이 넘쳐나던 이 사회에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직후 ‘고통의 인정투쟁’이 본격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라 핼러윈 따위 신경 쓸 여력도 없는 내가 왜 ‘놀다 죽은 이들’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런 내 처지에 대해 이 사회는 왜 아무런 관심이 없는가?” 지원금 논의와 함께 반응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내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낸 세금을 ‘놀다가 죽은 이들’에게 줘야 한다고? 심지어 외국인에게까지? 국가에 봉사하다 다친 난 정작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는데?”
혹자는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 ‘제발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라도 갖추라’고 규탄했지만, 이 노력은 대부분 공허한 외침에서 그쳐 버렸다.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애도의 순간이란 각자에게 결코 의지적으로 찾아오지 않고, 그 후의 선택들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좋은’ 애도의 태도를 개인들 각자의 결의만으로 취할 수 있다는 건 사실 환상에 가깝다. 그렇다면 지금 사회적 애도를 확장하길 바라마지 않는 이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한편으로, 이 억울함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고 이 억울함을 낳는 사회적 조건을 규명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춰야 할 때가 아닐까? 즉, 무엇이 대중들로 하여금 애도를 거부하게끔 만드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용인하자는 제안을 하는 게 아니다. 대형 참사를 한낱 ‘정권 교체’의 계기로만 이해하는 이들에 동조할 생각도 없지만, 애도를 정치화하지 말라면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날 선 말들을 건네는 이들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단숨에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 정부나 유족의 동의도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이들보다야, 이 억울함을 드러내는 이들이 훨씬 더 진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이 억울함은 그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조롱이나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나름 존중받을 필요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 억울함이 참사 희생자 및 희생자 158개의 세계를 함께 꾸려온 이들의 상실감과 연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금의 사회적 애도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어떤 참사들
고통의 인정투쟁에 동참하는 것 같아 죄스럽지만, 그럼에도 잠시 이태원 참사 전부터 억울함을 호소해온 이들, 특히 어떤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태원 참사를 겪고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즉 이 참사는 곧 ‘우리’ 모두의 사건임을 강조했지만, 지금부터 언급할 참사의 희생자들은 애초에 ‘우리’ 바깥에 놓인 사람들인지라, 아무리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했어도 도무지 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없었다.
2001년 오이도역 지하철에서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장애인이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2002년 발산역 리프트에서도 추락 참사가 일어났다. 2017년, 신길역에서도 동일한 참사가 발생했다. 24시간 활동 지원이 필요했지만, 당시 기준으로 최대였던 12시간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았던 김주영은 2012년 10월 26일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뒤,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대로 질식사했다. 송국현 역시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신 3도의 화상을 입고서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인 4월 17일 숨졌다. 송국현은 활동지원 없이는 혼자 거동도 할 수 없었지만, 당시 장애등급제 기준에서 그는 애초에 활동지원 제공 대상자도 아니었다. 장애인 부모들이 부양의 부담을 견디다 못해, 자식을 살해하고 자살을 택하는 사건들은 이제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조차 할 수 없다.
이 참사들은 모두 이태원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대로라면 곧 참사가 발생할 것임이 이미 국가에 고지된 것들이었다. 최소한 참사 발생 후,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누군가 몇 차례나 국가 및 책임자들에게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 것들이었다. 실제로 2001년 오이도역 참사 후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지금껏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없이 우리는 계속 죽어 나갈 것’이란 외침을 포함한다. 송국현 역시 참사 3일 전인 2014년 4월 10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 찾아가 활동지원 긴급 대책을 요구했다. 김주영도 참사 전날 제대로 된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을 가로막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역 농성장을 사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지원서비스 확대를 두고 매일같이 전투를 벌인다. 장애인 가족의 친족살해 예고는 도대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가?
내가 이 희생자들을 호명한 건 이태원 참사 앞에서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누가 더 억울한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경쟁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이 참사들이 과연 이번 이태원 참사와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어질 뿐이다. 그런데 실은 이 참사에서도, 저 참사들에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것은 모두 국가였고, 나아가서는 국가가 온 힘을 다해 보존하려는 이 체제였다.
이 ‘가해자’가 희생자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관례처럼 반복됐다. 이태원 참사 후에도 그러했듯, 장애인들이 겪어온 참사들 앞에서도 국가는 우선 책임을 회피하는 데 집중했다. ‘사과’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참사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들의 입에서 고작 ‘사과’라는 단어 한 마디를 끌어내기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말 그대로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야 했다. 그리고 잠시라도 방심하면 저들은 곧장 ‘참사’를 ‘사고’로 둔갑시켜 버릴 걸 알고 있으니, 이 싸움은 도무지 중단될 수도 없었다.
무엇이 사회적 애도를 불가능하게 하는가?
국가의 피해자는 이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만이 아니다. 대형 참사 앞에서도 자신의 억울함만이 더 뚜렷이 떠오르는 이들 역시 ‘아직’ 죽지 않았을 뿐, 이미 국가의 피해자다. ‘느린 폭력’의 형상으로 누적돼온 재난은 이미 죽어간 참사 희생자들에게 날 선 말을 건네는 당신들의 존재를 조용히, 그러나 매순간 맹렬히 덮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왜 좀처럼 자신의 억울함을 낳는 진짜 가해자를 식별할 수 없는 것일까? 분노는 왜 국가와 이 억압적 시스템이 아니라, 참사 희생자들을 향하는가?
이들에 맞서 희생자들에 대한 조롱과 공격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원래부터 빻은 이들’로 치부해 버리는 것 역시 문제의 본질을 감추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두고 ‘인간성의 상실’을 한탄하지만, 그 어떤 조건에서도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정말로 인간의 본성인가? 분명한 것은 희생자들을 향한 이 날 선 반응들이 개인의 생명과 권리가 애초부터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과 무관한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오랫동안 이 사회에 축적된 ‘당연한’ 경험들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곁에는 내 호소를 들어주는 동료 시민이 없었다. 내가 국가를 가장 절실히 요청할 때, 국가는 나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나를 보호해주는 공적 시스템이 없으니, 내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능력에 의존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많은 경우 재난은 단숨에 찾아오지 않으니 그것은 곧 일상이 됐고, 어쨌거나 이 일상은 그럭저럭 살 만은 하다. 각자도생의 시대정신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잠식해 왔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피해 책임을 국가와 사회에 묻는 경우다.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내 삶을 내가 책임져 왔다고 믿는 이들에게 그것은 한낱 ‘생떼’ 이상의 의미가 없다. 나도 힘들고, 내 가족들도 힘들다. 옆에 있는 내 동료들도 힘들다. 모두는 그렇게 힘든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만’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묻는 것인가? 그것은 권리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일종의 특권이 아닌가? 이 물음들과 함께 내가 책임져야 할 타자의 범위는 점점 더 좁아지고, 그만큼 내 일상의 단절감,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죽음의 범위 역시 점점 축소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일’이 아닌데도 굳이 사회적 애도에 나서는 이들은 그저 위선자로 보일 뿐이고, 저들이 모여 힘을 발휘하면 어쩐지 내 억울함은 더 깊어질 것만 같다.
주디스 버틀러는 “재난을 겪고서 애도하는 능력이 축소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을, 즉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사회적 애도 능력을 상실한 결과는 곧장 우리 자신에 대한 억압의 일상화로 이어진다. 사실 순수하게 각자도생할 수 있는 존재란 없다. 모든 존재는 그 조건상 취약성을 간직하고 있고, 그 취약성은 언제든 온갖 참사의 형태로 당신을 나락으로,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그 비극을 막아내는 건 타자의 억울한 죽음 속에서 내가 당장 겪고 있는 억울함을 낳는 원인을 발견하고, 그에 함께 맞서는 길뿐이다. 즉 모두의 억울함을 잉태하는 이 사회의 근본 모순을 발견하고, 변혁을 준비하는 길뿐이다.
억울함이 만나 애도를 연습하는 광장을 희망하며
이태원 참사 전부터 매주 광장에 모여온 수십만의 대중들이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모인 어떤 이들은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고, 희생자들의 서사가 하나씩 드러나기도 전에 희생자들을 이 구호의 깔때기 안에 집어넣어 버렸다. 어떤 지식인은 이러한 태도를 ‘진정한 애도’라며 찬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광장은 지금 158개의 세계를 호명하고 있는가? 아니면 만악의 근원으로 격상된 윤석열만을 호명하고 있는가?
작년 11월 22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발표한대로, 이 사태의 책임자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한 과정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사회적 애도에 대한 연습도 없이, 너와 나의 억울함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한 감각도 배양하지 못한 채 도래할 ‘윤석열 퇴진’이란 결과는 과연 이 사회에서 벌어질 각종 참사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최소한의 기능만이라도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이기에, 다른 정권이, 다른 지자체장이 들어서 있었다면 당장에는 벌어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 이후에는 참사가 없었던가? 그 시기에는 정말로 참사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가능했던가? 문재인 정권 때 세월호 진상 규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참사의 온상인 중대재해를 처벌하는 법률도 누더기가 됐다.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예산 논리는 그 정권에서도 그대로였고, 빈민들은 그때도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하물며 촛불 광장에 모인 당신들은 적폐 청산이 성취된(?) 그 시절, 정말로 안녕하셨던가? 당신들은 이태원 참사 앞에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해결할 준비가 돼 있는가?
나는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이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광장은 ‘윤석열 퇴진’이란 구호를 중심으로만 뭉쳐서는 정작 나‘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공간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다른 참사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물리적 근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당신의 억울함과 나의 억울함이 연결돼 있다는 감각,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오는 진짜 적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이제 우리는 다르게 모여야 한다. 새로운 애도와 함께, 박근혜 퇴진 촛불 너머를, 나아가 87년 체제 너머를 상상하며.
*이 글은 〈참세상〉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