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노들예술로 활동기(1) 노들은 나에게도 학교였다 / 오혜린
노들예술로 활동기 (1)
노들은 나에게도 학교였다
오혜린
리더예술인
2022년 3월의 어느 날, 겨우내 서울에 잘 가지 않아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일정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시위로 인하여 열차가 정차하고 있다는 안내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안내 음성으로는 무슨 시위인지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고 나는 누군가 시위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멍하니 지하철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차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누군가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원래의 시간대와 노선대로라면 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집에 돌아갔을 터였다. 지하철을 잘못 타 이 열차 저 열차를 바꿔 타다가 시위의 영향을 받는 열차를 타게 된 모양이었다. 열차가 얼마간 정차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시위에 대해서는 잊고 있다가 뉴스 기사를 보고 장애인권에 관련된 시위임을 알게 되었다.
1월부터 3~4월까지의 시기는 예술인들에게 문서 작업의 나날들이 이어지는 기간이다. 예술로 사업이 대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각종 지원 사업과 공모 관련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서류작업을 위해 예술인들은 말과 글을 쏟아낸다. 쏟아내며 생각하고 지우고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팬데믹이 끝나게 될지, 작년과는 다른 상황이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팬데믹이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 돌봄 노동과 타인의 희생, 그리고 ‘우리’에 묶여 강요되는 공동체 의식을 소리 내어 발음해 보게 된다. 평등하지 않았던 재난이 우리에게 국가, 사회, 공동체 등의 의미를 물어보고 있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최하는 ‘예술인파견지원-예술로’사업의 목적은 예술인과 사회(기업·기관 등)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예술인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 제공 및 새로운 예술 직무영역 개발 지원 등을 통한 적극적 예술인 복지 구현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4번째로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저 문장이 말하고 있는 목적과 현장에서의 목적이 같은지에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업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와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에 잘 가지도 않는 조각가가 개연성이 없는 사회집단과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기회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예술인이 아닌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고 조각가가 아닌 예술인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동안의 예술로 사업 참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어르신들, 기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나도 조금은 이 사회에 스며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됨이 좋았다.
노들장애인야학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사회에 참여하고 싶은 내 욕심과 기사에서 읽은 장애인권에 대한 무지의 죄책감을 안고서. 노들장애인야학은 어떤 곳일까? 그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멈춰 선 열차 안에서 이미 그렇게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처음 유리빌딩에 들어서서 교실들과 학우들을 보는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들었다. 긴장하며 나를 다독이지 않아도 웃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서한영교 선생님, 천성호 교장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함께한 5명의 예술인들은 각자의 예술적 깊이와 장애인권과 관련된 경험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노들은 나에게도 학교였다. 선생님들과 활동가들, 예술인들 그리고 학우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 삶의 한 부분을 함께하며 태도를 배우고, 듣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1학년이 된 셈이다. 서툴고 잘 모르지만 수업에 들어가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지하철역에서 같이 걷기도 하고, 행진도 함께 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배움의 시간이었다. 거창한 무언가를 배운 것은 아니다. 나도 옆에 서서 같이 걸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노들예술로가 2022년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고 김순석 열사의 유서를 학우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낭독한 ‘턱을 없애주시오’ 영상 제작이었다. 낭독 글의 결정에서부터 누가 어떻게 낭독할 것인지, 듣는 몸의 기울기를 어떻게 표현할지, 촬영과 장소, 편집의 과정까지 많은 회의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업 기간이 끝나 마무리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들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배려하게 되었다. 끝이 정해져있는 사업이기에 짧은 시간 동안 우리들이 도달할 수 있는 관계의 깊이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찰나 같은 순간에도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는, 영원 같은 지점이 있다고 믿고 있다. 옆자리에 앉아 같이 수업을 진행하며 듣게 되는 학우의 숨소리와 몸짓이 내는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 이름은 서로 모르지만 복도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같이 걸으며 서로의 안전을 위해 길을 살피고 잘 오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차가운 시선과 폭언을 마주하며 나란히 서 있었던 그 순간들이 앞으로도 노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기에 충분했다. 지원 사업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개인으로 노들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졸업이 없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천천히 즐겁게 오래오래 배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