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132호 - 지구 끝까지 투쟁하겠다! / 유진우
지구 끝까지 투쟁하겠다!
유진우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해방의 길을 향해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은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준말)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겪은 차별과 억압을 장판에서 마음껏 털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2022년 6월 20일, 김광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김 청장의 발언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던 전장연 활동가들의 장애인권리예산 확보 투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어떤 발언이었기에?
김 청장의 발언은 이러하다. “불법을 저지르고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는 것은 제가 서울청장으로 있는 한 있을 수 없다. 법질서 확립 측면에서 불법 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 하겠다. 전장연이 오늘 아침에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시민 발을 묶으려 한 행위에 대해 즉각 조치한 부분도 바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라며 전장연 지하철 투쟁을 비난했다. 일차원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 하겠다는 말은 장애인 이동권을 알지 못한 처사이고, 전장연이 21년간 투쟁해 온 것들을 알아보지도 않고 한 발언이다.
이에 대해 전장연 대표인 박경석 고장샘은 “공포정치를 하려는 것인가. 저희는 법과 원칙에 따라 감내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 감당하겠다. 지구 끝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혜화역 인근 저희 사무실에 와서 조사하라”라고 일축했다.
‘지구 끝까지 찾아가겠다’라는 말은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전국에 저상버스 도입률 30%,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20곳, 장애인콜택시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잡힌다. 뿐만 아니라 광역이동지원센터가 없어 시ㆍ군 간의 이동이 불가능해 경기도 끝에서 끝까지 걸리는 시간은 8시간이다. 8시간은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 하와이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다. 이러한 장애인 이동권 현실 앞에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 하겠다는 말은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없고, 그저 ‘불법’을 저지르는 ‘장애인들’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있다는 걸 증명한 꼴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출석 요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김 청장이 했던 말, 불법을 저지르는 장애인과 활동가들을 사법처리 하겠다는 말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혜화경찰서를 시작으로 용산경찰서, 종로경찰서를 마지막으로 장애인 활동가들이 ‘도장 깨기’를 하듯, 경찰서를 돌아다니면서 자진 출두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장애인 활동가들이 모두 조사 거부를 했다. 조사를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 곳 경찰서에는 조사실이 1층이 아닌 2층이나 고층에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출석해 조사를 받으려면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조사실 포함해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출석 요구서를 보냈던 경찰서 세 곳 모두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뒤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힌 장애인 활동가들의 말에 김 청장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남대문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자진 출석 기자회견을 하고 조사를 거부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김 청장을 겨냥하여 8월 29일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모의재판 전 서울경찰청 앞에서 김 청장에게 모의재판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모의재판의 내용은 출석요구서를 받은 장애인이 경찰서에 자진 출석을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조사실로 올라갈 수가 없는 환경을 만든 것,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는 당연한 의무인데 이러한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이 아니냐며 경찰청장부터 위법하다고 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경찰청장이며,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 하겠다’라는 말에 대해 사과하고, 편의시설을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배심원단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해 유죄라고 판결했고, 재판장은 김 청장에게 3천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사실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 하겠다’란 말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망언이었다. 경찰서부터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아 조사를 못 받는 판국에 ‘불법’이란 말로 지역사회에 함께 동료 시민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투쟁을 비난하는 말이고, 장애인의 삶을 모른다는 말이다. 우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 무엇이 필요한지, 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예산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알려나가고 투쟁할 것이다. 법으로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가 지켜질 때까지 우리는 ‘지구 끝까지 투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