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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장애의 시좌에서 재구성한 미국사

킴 닐슨, 『장애의 역사』,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2020

 

 

 

 

김도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기도 하다.

『장애학의 도전』(2019)을 썼고, 『철학, 장애를 논하다』(2020)를 우리말로 옮겼다

 

 

 

김도현_장애의역사.png

                                                                           <장애의 역사> 표지 이미지.(사진 제공: 동아시아)

 

 

 

   비장애중심주의와 능력주의

   장애인을 영어로 ‘person with disabilities’라고도 쓴다. 그럼 ‘비’장애인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person with abilities’, 말 그대로 ‘능력 있는 사람’. 물론 이건 소위 콩글리시다. 어 쨌든 이걸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부정하면 ‘person without abilities’, 즉 ‘능력 없는 사 람’. ‘에이블리즘’(ableism)은 비장애중심주의 내지 장애차별주의를 뜻하지만 그 본질은 다름 아 닌 능력주의다. 요컨대 비장애중심주의/장애차별주의를 철폐하지 않는 한 능력주의 사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킴 닐슨(Kim E. Nielsen)의 『장애의 역사』(원제: 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그러한 진실을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역사 속에서 통찰해 내는 책으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장애인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장애의 시좌(視座)에서 읽어낸 미국의 역사다. 킴 닐슨은 이 책을 통해 “장애를 이용해 역사에 질문하고 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 질 수 있는지, 장애가 어떻게 인종·젠더·계급·성적 지향과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왜 냐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게이와 레즈비언, 빈민, 여성을 온전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없는 2등 시민으로 분류할 때마다, 장애[무능력]는 역사의 여러 장면에서 계속 호명되었”고 “역 사의 수많은 장면에서 장애는 다른 사회적 범주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기 때 문이다(19, 27쪽).

 

 

 

 

김도현2.jpg

‘달아난’ 노예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면 20달러를 보상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1851년의 포스터.

이러한 노예들에게 당대의 의학은 ‘출분증’(drapetomania)이라는 진단명을 부여하고

채찍질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Wikimedia Commons

 

 

 

   예컨대 미국의 백인들은 “노예가 몸과 정신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노예제가 돌봄 이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제도라고 주장”했다(103쪽). 당대의 저명한 의학자였 던 새뮤얼 카트라이트(Samuel Cartwirght)는 “흑인들은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백인 이 감독하고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126쪽), 이처럼 좋은 노예 상태에92 Nodl·Nodl·Nodl 서 벗어나 북부로 달아나려는 흑인 노예들에게 ‘출분증’(drapetomania)―그리스어로 ‘드라페테 스’(drapetes)는 ‘달아나다’, ‘마니아’(mania)는 ‘광기’를 뜻한다―이라는 정신장애 진단을 내린 다. 또한 182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상태와 재산 관 리 능력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했는데, 후견인의 보호하에 있는 사람은 재산을 관리할 수 없었 기에 투표를 할 수 없었다. 동일한 논리가 여성에게도 적용되었다. 즉 남편에게 모든 재산 관리권 이 위임되어 있던 여성 역시 일종의 ‘금치산자’(禁治産者)로 간주된 것이다.

 

   에이블리즘과 ‘능력 있는 몸’(Able-Bodiedness)을 준거로 한 장애, 인종, 젠더, 성적지향의 억압적 교차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역사적 장소 중 하나는 이민국 심사장이었다. 뉴욕의 엘리스섬 심사장에서는 ‘빈약한 체형’(poor physique)을 지녀 노동할 수 없다고 간주된 이들뿐 만 아니라 재생산 능력이 없다고 규정된 동성애자와 인터섹스들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리고 아시아 이민자들이 들어오던 샌프란시스코 에인절섬의 추방률은 유럽인들을 심사하던 엘리스섬 보다 5배 이상 높았는데, 미국 국회 보고서는 “중국인들은 자치 정부를 위해 힘을 보태기에는 두 뇌 역량이 부족하다”고 기록했다. 즉 중국인들의 신체가 민주주의를 지탱하기에는 “지나치게 장 애(Too Disabled)가 있다”고 본 것이다(200~201쪽).

 

 

 

에이블리즘에 맞선 저항적 교차

   이처럼 미국의 국가 형성 및 발전 과정에서 하나 의 지배적 이념이 된 에이블리즘에 맞서 소수자들은 저항의 몸짓을 보였지만, 초기에는 그 에이블리즘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도 했다. 1848년 세니커폴스 여 성권리회의 참석한 백인 여성들은 “평등한 인권은 자 신이 속한 인종 정체성에서 나오는 능력과 책임감에 기인한다”라고 결의했으며, 노예 출신인 노예 폐지론 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권리 의 진정한 기반은 [인종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다” 라고 말했다(118쪽). 그리고 남북전쟁 당시 “노예 소유 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노예제를 정당화 하기 위해 장애 개념을 이용한 반면, 폐지론자들은 노 예제에 반대하기 위해서 장애 개념을 이용했다”(127 쪽). 즉 노예 소유자들은 앞서 언급했듯 흑인들이 장 애가 있기 때문에 백인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 장한 반면, 폐지론자들은 노예제 때문에 그들이 몸에 손상을 입고 무능력해진다고 맞섰던 것이다. 또한 미국 대공황 시기 농인 단체들은 장애인이 ‘고 용될 수 없는’(unemployable) 이들로 분류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다만 농인은 장애인이 아 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247쪽)

 

 

김도현3.jpg

「재활법」 504조 집행을 위한 장애인들의 보건교육복지부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H.E.W.)

점거 투쟁 승리 소식을 전하고 있는 흑표범당의

1977년 5월 7일자 신문. “장애인들은 요구를 쟁취했고,

보건교육복지부 점거 농성을 끝냈다”고 적혀 있다.

(사진 출처: http://www.disabilityhistory.org)

 

 

   그러나 1960년대 말 공민권 운동과 신사회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에이블리즘 자체에 맞선 투 쟁이 서서히 조직된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들의 저항적 교차의 장 역시 형성되는데, 그 대표적 인 사례는 1977년의 「재활법」 504조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조항은 연방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활동과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 후 미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인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의 모태가 된다. 장애인들이 「재활법」 504조의 집행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보건교육복지부 사무실 점 거 농성에 들어간 후 고립되자, 전국의 노동조합, 게이단체 ‘나비여단’(The Butterfly Brigade), 멕시코계 미국인인 치카노(Chicano) 운동가들, 약물 이용자들의 풀뿌리 단체, 그리고 전과자들 의 풀뿌리 조직인 ‘딜란시 스트리트’(Delancy Street)가 이 농성에 연대했다. 특히 블랙팬서[흑표 범당](Black Panther)는 농성 중인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매일 한 끼씩 제공했는데, “느슨 하게 조직되었고 대부분 백인이었던 장애인권 운동 집단에게 블랙팬서의 흔들림 없는 연대활동 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297쪽).

 

 

노동권과 탈시설, 장애해방을 향한 미완의 과제

   유럽에서 형성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장애’라는 개념의 핵심에는 노동의 문제가 놓여있었으며, 이러한 점은 이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또 언급된다.

 

   1818년 제정된 미국 독립전쟁 연금법은 법적·사회적 복지의 범주에서 장애를 정의했다. 이 법에서는 19세기 초 장애의 정의에 따라 실명, 다리 절단, 마차 사고로 인한 손 부상 등의 손 상으로는 장애인이 되지 않는다고 정했다. 연금법에 따르면 장애는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노 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121쪽) 장애 연금 시스템은 점점 의학적 판단에 의존했는데, 그 시스템에서 장애는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했다. 따라서 장애인이 노동을 해서 임금이나 경제적인 보수를 받을 경우 그것 은 장애인의 정의와 충돌하는 논리적 모순을 야기했다. (172~173쪽)

LPC(공공의 부담이 될 것 같은(Likely to become a Public Charge)) 조항은 결함 있는 몸을 가진 사람들의 임금 노동이 불가능하다고 명백히 가정했다. […] 역사학자 더글러스 베인튼 이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이민국 관료들은 “노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배제하는게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207쪽)

 

   이런 조건과 억압에 맞서 미국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노동권을 주장하며 분투한 역사는 분명 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에이블리즘의 강고한 벽과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동권, 교육 권, 차별금지법 등 여타의 권리 영역에서 한국보다 앞선 제도적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장애인들의 고용률은 OECD 평균 수준인 한국보다 높지 않다. 즉 노동이 상품으로 존재하 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부에 일정한 파열구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장애인 노동권의 확보는 상 당히 오랜 기간 동안 미완의 과제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탈시설이 처해 있는 현 상황은 (종종 하나의 선도적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탈시설이 주요 의제로 부상해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 인운동에 일정한 고민과 함께 시사점을 제공한다.

 

 

   [탈시설 후] 운이 좋은 사람들, 특권층, 지지해주는 든든한 가족을 가진 이들은 자립생활센터,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 지역사회 그룹홈에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러나 나머지는 노숙 자가 되어 거리에서 살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 수감은 정신장애가 있다고 여겨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가 돌보는 주된 방법이 되었다. […] 투옥 된 사람의 대다수는 빈곤층, 유색인종이었다. 탈시설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바를 다 이루지는 못했다. 그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했던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90쪽)

 

 

 

 

 

김도현4.png

1920년 이후 미국의 수형 인구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80년을 기점으로 400% 이상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s://libertarianinstitute.org)

 

 

 

 

 

   실제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백만 명 이상의 수형자가 존재하는 국가이며, 인구 대 비 비율에서도 세계 1위이다. 인구 10만 명당 수형 인구수가 700명을 넘어, 푸틴이 장기간 강권 통치하고 있는 러시아의 500명을 누르고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런 수형 인구는 미 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된 1980년대에 급격히 증가했고, 그 이면에는 교도소의 민영화에 따 른 ‘감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즉 감옥과 산업의 복합체―의 등장이 놓여있다.1)   

   다른 한편 미국 사회의 탈시설 운동 과정에서는 ‘시설 수용보다 지역 사회에서의 자립이 더 적은 비용이 든다’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동원되고 인정되었다. 그리고 1990년 제정된 「미국장애 인법」의 전문(前文)에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본연의 목적은, 경제적 자기충족을 보장하는 것 이다. […] 차별은 미합중국에 의존과 비생산성으로부터 초래되는 수십억 달러의 불필요한 비용 을 지불하게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2) 조시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 은 법안 서명 연설에서 “미국 장애인이 자립하지 못한다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연방정부, 주, 지방자치단체, 민간은 연간 합계 2천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3) 이는 장애인의 탈시설-반차별-자립이 미국 사회에서 수용되던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지배 세력 의 의도를 반영한다. 이로 인해 미국 유학 중 자립생활운동을 접하고 귀국해 탈시설운동 조직 ‘인디펜던트 리빙 인 스웨덴’(Independent Living in Sweden)을 설립한 아돌프 락스카(Adolf Ratzka)는 “미국에선 자기결정권의 범위는 넓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복지는 부족했다. 이 또한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4)

 

 

   이 지점에서 우리는 탈시설의 미국적 모델과 북유럽 모델의 차이를 잘 살피고 우리 나름의 전략과 경로를 수립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탈시설 운동이란 단지 시설을 없애는 차원을 넘어, 시설을 필요로 하고 시설을 산출하는 지역사회 자체를 변혁하는 운동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1) 고병권, 「수익모델로서의 인간 수용소」, 『철학자와 하녀』, 메디치미디어, 2014, 179~180쪽.

2) 42 U.S.C. §12101(a)(8)-(9) (1994).

3) 에이타 야시로 외, 『ADA의 충격』, 송영욱 옮김, 한국장애인연맹출판부, 1993, 11쪽.

4) 박고은·박송이·고경민·이충현, 「‘탈시설 성지’ 스웨덴에서 찾는 장애인의 미래①-스웨덴 왜 어디서나 장애인 볼 수 있을까」, 〈노 컷뉴스〉,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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