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124호 - 문재인 대통령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는 약속을 지켜주세요 / 이형숙
문재인 대통령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는
약속을 지켜주세요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이형숙입니다. 사무실 책상 보다 도로점거가 취향저격인 탓에 동종 전과 부자랍니다.
사진 정택용
일주일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큰병 없이 여든다섯해를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갔고 의사는 미리 정기검사를 했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 말이 본인은 숨쉬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마 엄마는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파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도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엄마를 한 번만이라도 정기검사를 받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을 못한 것이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3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저를 키우기 위해 열 살 많은 금쪽같은 아들을 재혼한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죄가 많아서 몸이 성치 못한 자식을 본인이 거두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저를 보살폈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 대신해서 아들에게 의지를 했었는데 저 때문에 아들과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한 평생을 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엄마는 끝내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서 검사 한 번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응급실에서 엄마를 진료했던 의사는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를 했습니다. 가난하면 병원도 못 가고 죽는 것을 당해보니 정말 비참했습니다. 누가 의료쇼핑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가난한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적 말장난입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입니다.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 않으면 국가는 살인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불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을 권리로서 책임 있게 보장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님!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명을 받아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을 하고 농성을 접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광화문 광장 지하역사에서 2012년 8월21일부터 1842일 동안 5년이라는 긴 세월 농성을 했습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염원인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었습니다.
박능후 장관의 요청으로 매우 힘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성을 접어야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2017년 8월25일 박능후 장관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 광장 지하역사 농성장에 방문해 2차 종합계획이 발표되는 2020년에는 반드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담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박능후 장관은 3년 동안 수많은 면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꼭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장관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파기하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2001년 최옥란열사는 기초생활수급비 26만원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반납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수급자가 된 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더라는 그녀의 말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던 그녀는 의료비 때문에 수급
권을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최옥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최옥란이 되어야 합니다. 최옥란 열사는 의료비 때문에 기초수급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박능후장관과 홍남기장관이 사는 집 앞에 갔습니다. 크고 좋은 아파트였습니다. 이런 장마에도 비 걱정은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관의 삶과 가난한 이들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능후 장관님,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누구나 그런 큰 집에 살며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집에 살며 탁상행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지 말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지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생각해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간절히 바랍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주십시오.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대선 공약처럼 2차 종합계획에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넣어주십시오. 이 땅에는 많은 최옥란들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모두 최옥란입니다. 가난함을 알고 가난이 가져오는 좌절감과 절망을 아는 우리들이 바로 최옥란입니다. 저 굳건한 자본의 성벽을 반드시 무너뜨리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가져와야 합니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을 봐야합니다.
오늘 저의 머리를 삭발해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장관에게 보내겠습니다. 중증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몸을 내놓고 싸우는 것. 이 몸밖에는 싸울 것이 없습니다. 오늘 밀려나가는 이 머리카락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반드시 폐지하겠다는 저의 결의이고 동지들의 결의입니다. 동지들. 우리 끝까지 싸웁시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될 때까지 지치지 말고, 이곳에서 끝까지, 폐지될 때까지 질기게 싸웁시다.
저의 인생은, 어릴 때는 어머니의 짐이 되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들의 짐이 되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한 평생 짐이 됐는데 자식들에게까지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양의무자기준을 꼭 폐지해서 더 이상 짐덩이 취급을 받지 않고 싶습니다.
동지들. 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슬퍼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같이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함께 합시다. 투쟁입니다!
*이 원고는 이형숙 님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8월 7일 광화문에서 삭발하던 당시에 발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