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 125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노들의 온갖 ‘첫’ 일을 기억하는 사람, 김혜옥 / 김명학
노들은 사랑을 싣고
노들의 온갖 ‘첫’ 일을
기억하는 사람, 김혜옥
『미래로 가는 희망버스 : 행복한 장애인』
펴낸 김혜옥 동문 인터뷰
인터뷰, 정리 : 김명학 편집위
안녕하세요? <노들바람>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노들야학 창립멤버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짧고 굵게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짧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요즘은 교사들이 워낙 길게 활동을 하니 저의 활동기간은 무척 짧은 거더라고 요. 지금은 특수교사로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고요, 동화 작가 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요?
노들야학하기 전에 장애인운동청년연합에서 잠깐 활동을 했고, 그 활동이 노들야학 교사활동 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노들 교사 활동을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기억나는데요, 첫 교실이었던 정립회관 탁구장 교실, 첫 해오름식, 첫 수업, 첫 교사회의, 첫 교사 수련회, 첫 노들밤, 첫 소풍, 첫 모꼬지, 수영장 건물로 이사 왔을 때 교실 벽을 방음을 위해 계란판으로 덮었던 일 등 노들에서 뭐든 ‘첫’이었던 일들이 생각나고요. 또 노들에서 보낸 많은 밤들이 생각나요. 제가 활동할 때는 뒤풀이가 많았어요. 거의 매일이었지요. 그래서 술 에 취해서 저질렀던 온갖 객기들이 가끔씩 생각나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것도 있지만 그때는 그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용서되고 그랬죠. 서로에게 따뜻하게 열려 있었거든요. 그렇게 사람이 남았지요. 오랜 시간 함께 울고 웃고 온갖 꼴을 다 보여주고 지내서인지 무척 끈끈한 사이가 되었 죠. 살면서 그렇게 사람에게 열려 있고 사람에게 뜨거워 본 적이 또 있었을까요? 노들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곳이었어요.
노들을 알게 돼서 삶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술을 사랑하게 되었죠.ㅋ
최근 책을 썼다고 들었는데.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분홍고래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기획동화 <미래로 가는 희망버스 시리즈>가 있어요. 어린이 를 위한 지식정보 동화시리즈이고요. 재개발, 노동, 생명, 에너지라는 주제로 4권이 나와 있고 저 는 5번째로 ‘장애’를 주제로 책을 썼어요. 이 시리즈는 희망버스를 타고 과거로 가서 주제에 따른 과거의 어두운 문제를 알아보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미래 세상을 그려 보는 구조예요. 그래서 저 도 과거의 장애인 문제를 알아보고, 가까운 미래 세상으로 가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펼쳐 보 이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보았지요. 장애인 문제는 시설 문제와 자립생활, 이동권 투쟁 등으로 접근했고요.
지식정보 책이라 그 동안 쓰던 동화화법과는 좀 달라서 쓰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장애 인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에 스토리를 재미있게 잘 입혀야 하거 든요. 지식정보 동화이니 책에 나온 사람과 사건은 다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장애인 수용시설에 서 30년 넘게 살아오다가 자립생활을 하는 삼촌은, 장애인 운동판 사람들은 조금만 읽어도 누구 의 이야기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삼촌이라는 한 등장인물에 장판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뒤 섞였어요. 누군가는 책을 읽다가 웃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이거 누구 이야기잖아? 아 니 이 이야기를 여기다 갖다 붙였어? 이러면서.
그리고 노들야학으로 추정되는 장애인 야학과 박교장님으로 추정되는 야학 교장선생님도 등장하지요. 노들야학은 자립생활의 주막(?) 같은 곳이 잖아요. 이렇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 약간의 상상을 더 해서 쓴 것이라 저의 온전한 창작은 아니에요.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옮겨 쓴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제목이 ‘행복한 장애인’인 것은 앞의 시리즈 제목 이 ‘행복한 에너지’, ‘행복한 생명’…… 이라서 ‘행복한 장애인’이 되었어요.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 어떤 제도와 지원이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 을까를 생각하는 제목이지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고 인권의식을 높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린 이뿐만 아니라 어른과 청소년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됩니다. 인세의 일부를 노들야학에 기부하기로했으니 책이 많이 팔려서 노들야학에 후원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앗, 필명은 김혜온입 니다.^^
마지막으로 노들에 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얼마 전부터 딸이 노들에서 자원봉사(교사를 할지는 딸의 선택에 맡김)를 하게 되었어요. 그 러면서 문득 22년 전 노들에서 했던 딸의 돌잔치가 생각났어요. 그 때 노들교사들이 장난스럽게 도 돌잡이 물건으로 맥주병, 소주병, 부탄가스를 놓았고, 아이는 가장 커다란 맥주병을 집어 들었 다죠. 그때는 노들야학이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내 아이가 커 서 노들야학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스무 살 이 넘은 아이가 스물일곱이 된 노들의 품으로 갔네요.
우리가 노들을 하던 시절에는 ‘노들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지요. 노들의 현 교사들은 그 말을 그렇게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나 글에서도 그 말을 자주 하고요. 우리 또한 모든 차별과 불평등이 없어지는 시대를 소망한다는 의미였는데 그 말을 너무 싫어하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해석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마무리 멘트로 노들의 발전을 바란다고 말하자니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그 반대의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러네요.ㅎ 아무튼 노들을 거쳐 간 사람이든 현재 노들을 사는 사람이든, 노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노들에서 뜨거운 오늘을 살고 있는 노들인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대들이 있어 앞으로도 노들은 쭈욱 아름다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