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장판 핫이슈]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 애린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애린│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의 지하철 노선도에 표시된 내용들은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발생한 사고들입니다. 1970년대부터 대중교통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개통되며 시민들의 이동 또한 한층 빠르고 편리해졌습니다. 점차 호선과 구간이 늘어남에 따라 시민들은 거리와 환승의 횟수에 제한 없이 웬만한 곳은 지하철을 이용해서 접근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나 교통약자라 불리고 있는 장애인의 현실은 이와 많이 다릅니다. 보통 지하철을 타려면 지상에서부터 대합실을 거쳐 승강장까지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보행에 제약이 없는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서 탑승을 합니다.
그러나 보행이 어렵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기가 불가능하여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 계단 옆에 매달려 있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평평한 철판 위에 무거운 전동 휠체어와 사람의 몸무게까지 더해진 채 허공에 떠 있는 리프트에 올라타면, 촌스러운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며 천천히 난간을 따라 위 아래로 이동을 합니다. 계단의 높이에 따라 한 번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5~6분, 길게는 10분 이상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흔들거리는 리프트에서 무섭고 아찔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의 불편한 시선까지 견뎌야 겨우 지하철에 탑승할 수가 있습니다.
6~7년 전부터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들의 이동을 위해 수동휠체어에 맞추어 설치되었던 작고 낡은 리프트를 철거하고 전동휠체어용으로 새롭게 리프트를 바꿨다고는 하지만, 사람과 전동휠체어의 무게를 합치면 거의 150~160킬로에 육박합니다. 이 무게를 온전히 감당한 채 계단 한 쪽 벽에 매달린 리프트는 공중에서 조금씩 흔들거리며 수십 개의 계단을 더딘 속도로 이동을 하는데, 그 모습은 허술하다는 느낌을 훨씬 초과합니다.
산꼭대기 사이에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널빤지로 된 흔들다리를 오가는 심정이고, 언제 어떻게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매일 느껴야 하니까요. 처음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99년 4호선 혜화역에서였고, 그 이후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더구나 2017년 신길역에 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 장애인분이 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중 계단 밑으로 추락해 98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돌아가실 때까지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사과를 위한 병문안은커녕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 때까지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신길역 참사에 대해 유가족과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책임을 인정할 것, 그리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도의적’,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도덕적·사회적 책임은 통감하지만, 법적 책임은 다툼이 있다는 이유로 분명하고 진정성 있는 ‘책임인정과 사과’는 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동권 투쟁을 펼치며 목 놓아 외쳤던 구호는 “장애인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한, 그러면서도 또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 2005년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교통약자들이 이동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고, 이 법률을 근간으로 시내 저상버스와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처럼 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만큼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서울 도심의 중심지인 광화문 역사에 설치된 리프트를 승강기로 교체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출퇴근 선전을 통해 그 당시 양 공사(메트로, 도시철도공사)와, 서울시 담당 공무원,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 1년간 민간협의체를 진행하며 방안을 모색해 갔습니다.
그 결과 2015년 12월 서울시가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통해 2020년까지 서울시내 전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 2022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 등을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나가고 있는 현재까지 약속한 이행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는 21개 역사 중 16개 역사는 엘리베이터가 설치 불가하다며 장애인들을 또 한 번 기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휠체어리프트로 인해 최소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신 장애인분들은 장애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동료이며, 친구이기도 합니다. 천만 시민의 대중교통이라 불리는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무관심과 성의 없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2016년 2호선 구의역에서 한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에는 한달음에 서울시장이 달려와 그 죽음 앞에 사과를 하고 책임을 인정했지요. 당연히 그래야 했고요. 반면 살인기계인 리프트로 인해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는 모습,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시는 누군가가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신길역 추락 사고는 개인의 잘못이 아닌 서울시와 교통공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리고 공개적인 사과를 받기 위해 장애인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1호선 시청역에서 지하철타기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투쟁을 하며 차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르는 몇몇 시민들을 바라볼 때, 제 시간에 이동하지 못하는 불편함과 답답한 마음에서 그러는 거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져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민들에겐 1~2시간 정도에 겪는 불편함, 답답함, 화나는 일들이 장애인에겐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매일 매일의 절박함으로 다가옵니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해야 할 권리, 즉 이동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보편적인 권리입니다.
장애유무와 관계없이 이러한 권리와 가치는 보호받아야 하고, 지켜져야 하며, 그 책임은 당연히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서울시와 교통공사에게 있습니다. 이동에 있어 단 한 명의 시민도 배제되지 않도록,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예산의 논리에 밀려 위험한 살인기계 리프트로 인해 죽어가지 않도록, 같은 시민으로서 미래의 교통약자로서 같이 목소리를 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