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노들아 안녕] 노들장애인야학 신임 학생 & 교사 / 정고은·김형근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고은
저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이유로 부모님과 헤어져 시설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위 도움을 받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주변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웃고 살다 보니 세월이 훌쩍 흘러 벌써 성인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꾸준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탈출하게 해달라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그러던 중에 용산센터 소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였고, 현재는 좋은 집에서 살고 있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영미언니와 노들 야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한글도 배우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야학은 조금 더 세상에 가까워지는 다리와 같습니다. 야학을 통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되었습니다.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한 필수라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혼자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고 또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노들야학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남의 공동체, 노들
김형근
만약 삶에도 본질이 있다면,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모든 우리 삶은 만남의 연속이며, 나는 너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이 되었고,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너’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너’를 우리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제 삶을 회상해보면, 가까이는 내 안에 있던 사랑의 씨앗을 피워주신 나의 어머니에서부터, 어릴 적 친구들, 함께 공부했던 모든 너들,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준 책 속의 정신들, 그리고 나를 언제나 부끄럽게 하는 전태일까지. 지금의 저 자신은 모든 이들과의 만남의 총체에 다름 아니며, 앞으로의 저는 미래의 너들과의 만남으로 말미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어도 제게, 삶의 본질은 만남입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제게 노들은 온전한 만남의 공동체였습니다. 노들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부름에 성실히 응답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김상봉에 따르면 우리는 부름과 응답이 교차하는 만남 속에서 자기가 되며, ‘우리’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너’가 될 때 비로소 그는 자기를 자기로서, 다시 말해 ‘나’로서 의식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르는 자와 대답하는 자는 부름과 응답 속에서 너와 내가 되고 또 우리가 됩니다.
그 속에서 주체는 부름받는 ‘너’이면서 응답하는 ‘나’이며 부름과 응답 속에서 생성되는 ‘우리’인 것입니다.” 노들은 부름과 응답이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활발히 오고가는 공간입니다. 서로의 부름에 성실하게 응답함으로써 노들의 우리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수년 전에 노들을 알고 난 후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가 나또한 ‘우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게 노들은 배우고 싶다는 목소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나도 우리가 되고 싶다’는 외침, 그 모든 부름에 대한 응답의 모임입니다.그런 노들과의 만남(지금도 진행중인)은 제 삶의 소중한 계기입니다. 아픔에 응답하며 살고자 결심했던 제게 노들이 주는 단단한 사랑의 온기와의 만남은 또 다른 제 자신을 잉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신임교사로서 아직은 노들의 구성원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부끄럽지만, 노들의 모든 분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제게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처음 제가 노들야학의 부름에 응답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까닭은, 우리 장애인들이 여전히 자유롭게 사회 속에서 만남을 이루며 자유로운 삶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존의 일이 우선인 장애인에게 자유로운 만남이란 사치였습니다. 여전히 사회로부터 배제된 시설 장애인들이 적지 않으며, 장애인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협받고,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너와의 자유로운 만남 따위에 대해 떠드는 일은 세상물정 모르는 일이었고, 그렇게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형성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현실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 대신에 장애인들의 어려움에 응답하던 노들에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다, 부채의식을 조금 덜어내고자 하는 마음에 노들야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처음 저는 장애인과 노들의 부름에 응답하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학기 동안의 교사연수를 거쳐 신입교사로 활동하게 된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부르는 자는 노들이 아닌 저였고, 제 부름에 응답해주셨던 분들은 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더욱 노들에 대한 부채감은 늘어만 갔습니다. 즈음에 저는 매주 목요일 검정고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요일 저녁은 일과 공부에 치이며 조금은 지쳐갈 때라, 솔직히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들은 언제나 그런 나약한 저를 반성하도록 하더군요.
오히려 노들은 제 순수함이 드러날 수 있는 제 일상 속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순수함에 정화되고, 동료 교사들의 열정에 반성하며,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자유함이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감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고, 그렇게 스스로 형성한 자기 자신에 따를 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란 오직 만남의 온전함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살펴본 것처럼, 자기를 형성하는 일은 결국 만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우리의 자유가 자유로운 만남 위에서만 존립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의 만남이 가로막힌 정도만큼 나와 너는 함께 부자유한 것입니다.
만남은 너와 내가 서로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발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만남이 둘의 일인 한, 너가 만날 수 없는 상태일 때 나는 너와 만남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오직 너와의 만남으로 나 자신일 수 있으니, 너의 어려움은 곧 나의 부자유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자유로운 만남을 이룰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비장애인 또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함석헌의 말처럼 우리는 막막한 우주에 단 한사람으로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모든 너들과의 관련 없이 있을 수 없는 나입니다. 자기 자신이란 오직 타인의 자리에서 자기를 되돌아볼 때라야 찾아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만남이 곧 삶의 본질임을 그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앞으로 노들의 모든 분들과의 만남으로 새롭게 형성될 제 자신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제 자신 또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들의 선배님들처럼 서로의 부름에 응답하며 ‘우리’가 되어가다 보면, 언젠가 전태일과 같이 너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응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저도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 노들은 제 바람에 응답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