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권영진 시장님, 마음 푸세요~”라고 하면 풀리실 건가요? / 전근배
“권영진 시장님, 마음 푸세요~”라고 하면 풀리실 건가요?
전근배│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잘못하면 규탄하면 된다. 이해 못하면 설득하면 된다. 안 만나주면 찾아가면 된다. 근데, 근데! 삐치면 답이 없다. 권영진 대구시장 말이다. 그는 한 번도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우리에게 털어놓은 적 없다. 하지만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단단히 토라져 있다고. 지난 7월 2일, 당선 후 처음 시청으로 출근한 권영진 시장은 농성장을 방문했다. 꼭 농성 보름째였다. 그리고는 1시간 동안 대표단의 요구안 설명에 대해 깊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이러지(농성하지) 말고 자기를 믿고 그만 돌아가시라고, 협약은 원래 지지하는 단체와 후보가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특정단체와 협약할 수 없다고. 그러고는 휙 가버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한 말이 활동가들의 더 마음을 쎄~하게 만들었다. ‘그 일’로 당신들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상처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뜻일까.
대구 동지들은 지방선거를 겨냥해 2월부터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시작했다. 희망원 등 장애인 탈시설 정책 강화,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확대, 발달장애인 사회통합 계획 수립 등 요구안을 3월에 이미 발표하고, 예비후보자들부터 하나씩 만나 협약을 맺었다. 그렇게 5월이 되었고, 권영진 후보 한 명이 남았다. 권영진 후보는 이번에 시장으로 최대한 있다가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당내 경선이 끝나 정식 후보로 내정된 뒤에는 다시 시장직 복귀를 했다가, 그 뒤에 정식 후보 등록을 했다. 그러니까 시장 → (예비)후보 → 경선 승리 → (다시) 시장 → (정식)후보로 왔다갔다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새누리당은 제대로 선거 운동 안해도 대구에선 이길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다’고 비판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후보가 아닌 시장직임에도 선거운동을 하다 선거법에 걸려 현재 재판에 들어가 있다. 어쨌든, 과정이 복잡했단 말이다. 여기에서 ‘그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는 시장시절에는 ‘후보 등록하면 협약에 대해 의논하자’고 했다. 그러다 예비후보 시절에는 ‘검토 중이다’고 하더니 경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예비후보를 사퇴하고 시장직으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정식 후보로 등록한 뒤 5월에 만났을 때에는 ‘협약을 위한 의논을 시작하자’고 했다. 5월 25일이라는 협의 마감 시기까지 정해서 말이다. 그렇게 원안은 아니었지만, 어렵게 수치와 문구를 서로 합의하여 협약안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다시 검토 중’이라고 하며 ‘본격적인 선거운동 전에는 협약하자’고 했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아침까지도 협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5월 31일, 대구 중심지인 반월당에서 권영진 후보의 선거운동 출정식이 있었다. 보름이 채 되지 않는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를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협약을 하기 위한 물리적 시간을 내는 것조차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애가 탄 장애인당사자들과 부모 활동가들이 권영진 후보 선거운동 출정식을 찾았다. 무릎을 꿇었다. 비굴하게 협약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영진후보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깨닫고 책임감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짧은 인사를 마친 후 유세지를 바로 떠나려고 했다. 한 어머니가 황급히 떠나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뒤로 벌러덩 쓰러졌고, 순식간에 유세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온갖 욕설 속에 우리는 착잡한 심정을 숨겨야 했다. ‘유세 중 폭행’, ‘난입’, ‘침입’, ‘선거방해’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기자들이 경쟁하듯 기사를 뱉어댔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후보캠프 대변인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후보의 꼬리뼈에 금이 가는 중상으로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한다며, 이 사태를 ‘명백한 테러’로 규정했다. 바로 420투쟁 대표단은 긴급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우발적인 사건이었으며, 모든 과정을 제쳐두고서라도 후보가 다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미 여론은 ‘권영진 후보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들끓었다. 더불어 ‘선거 테러’라는 고전적인 몰아붙이기 프레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비록 장애인 당사자들과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이유에 대해 다뤄주는 언론이나 시민 댓글은 없었지만, 그래도 왜곡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뿔싸! 하지만 그게 우리만의 생각이었다. 권영진 후보가 그 때부터 완전히 태도를 바꾸었다. 아니 그전부터 협약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호했던 태도가 분명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 때부터 우리는 ‘특정단체’, ‘폭력단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단체’로 권영진 후보에게 찍혔고, 당선 이후까지 냉담한 눈초리를 받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 후, 처음 만난 날이 7월 2일이었다. 사실 기대했지만 역시 그는 냉소적이었다.
(정책)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협약할 수는 없다, 시정 반영을위해 노력할테니 농성을 중단하라, 한 장애인단체와 협약하는 것은 다른 장애유형 단체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식의 공식적인 약속을 거부하는 사유만 반복한 채 자리를 떠났다. 420투쟁단은 “권영진 시장은 대화하러 온 것인가, 통첩을 보내러 온 것인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비평을 발표했다. 동시에 개탄했다. “(믿어달라니)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후보등록하면 의논하자”던 3월의 권영진 시장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던 4월의 권영진 시장을 믿어야 하는가. “본 후보 등록 전에 협약하자”던 5월의 권영진 시장을 믿어야 하는가, “후보사무실 앞 농성을 종료하고 의논하자”던 6월의 권영진 시장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과 같이 농성장을 직접 찾아 협약서에 서명하며 장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던 2014년의 시장을 믿어야 하는가!”
물론 이것은 ‘삐쳤다’는 것은 ‘카더라 통신’에 가깝고, 공식적인 시민사회의 평가는 별도로 있긴 했다. 예를 들어 촛불 정국 속에서 대구경북은 보수 정당의 색을 분명히 하며 자기 세력을 결집하는 주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때문에 권영진 시장 역시 민선 6기 때의 비교적 새누리당 내 개혁적 성향으로 평가되는 행보와는 달리 민선 7기 후보에 나서면서는 420투쟁은 물론 대구의 어느 시민사회단체에서 제안하는 협약에도 일체 응하지 않았다. 민관 거버넌스 구축의 기조 자체를 보다 보수적으로 분명히 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420투쟁단이 후보 캠프 사무실 앞에서 항의 농성을 할 때에도 그는 기자들을 초청하고 보수 장애인단체들을 결집시켜 지지 선언하는 자리를 가질 정도로 공세적인 자세를 보였다. 물론 이 지지선언에 나선 장애인단체들의 협의체는 5월 31일 사건에 대해 ‘소수의 과격장애인과 몰상식한 한 개인 여성의 일탈행동’으로 치부한 대구의 내로라하는 단체들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장애인 부문을 넘어서는 여러 정치적이고도 정서적인 맥락 가운데 대구시청 앞 농성투쟁이 놓여있다. 물론 대구의 농성장 지킴이 활동가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권영진 시장이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투쟁하겠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번 여름을 겪으며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활동가들 절반 이상이 얼굴이 쌔카맣게 탔다. 물을 잘못 먹어서 지킴이 활동가들 사이에 장염이 유행하는가 하면, 농성장 아스팔트에 수돗물을 뿌리는 새로운 농성문화(?)도 생겨났다. 바람에 천막이 부서지는가 하면, 대충 수선해 놓은 천막에 밤새 비가 내려 완전히 내려앉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청와대 농성장처럼 몽골텐트를 구입하여 장기전을 대비했지만, 이런 알록달록한 계절을 적어도 3번은 더 겪어야 한다니. 그래도 힘이 나는 건 언제나 파이팅해주는 전국의 동지들 때문이다.
노들을 비롯한 전국의 동지들께 대구의 ‘장애인 생존권 쟁취! 함께 살 권리 확보!를 위한 농성’(약칭 ‘함께살자 농성’)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옆에 있어 달라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