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여름 134호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다큐 「일로 만난 사이」로부터 / 박임당
[특집_2023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다큐 「일로 만난 사이」로부터
박임당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각종 미션 수행 중
태초에 노들야학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다큐가 있었나니… 2020년 7월 서울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막 시작되던 그 때, 야학에서는 이 일자리를 알리기 위한 홍보 영상을 제작하려는 기획이 사업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역할은 정부가 비준한 국제 협약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들에게 각종 방법으로 홍보하는 것이고, 이 새로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잘 알린다면 중증장애인의 노동할 권리를 여기저기에 알리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중증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노동의 결과물을 구성하고 외부화하는 방식으로 영상만큼 적합한 매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첫 해인 2020년에는 이 생경스러운 일자리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노동의 기록」이 기획됐다. 민아영 감독의 주도하에 면접이 진행되는 모습이 담기기도 하고, 장애인 시설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의 봉고차를 따라가기도 했으며, 현장에서 시민들과 만나 호흡하는 권익옹호 활동의 모습, 서울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담당 공무원의 인터뷰를 담기도 했고, 이 일자리가 생산하는 것과 사회적 의의 등에 대한 활동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두 번째 해인 2021년의 다큐 「우리는 노동자다」에서는 노동으로 인해 변화한 노동자 개개인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확산되어 재택근무 위주로 일자리가 진행되며 활기를 잃을 법도 한 조건이었건만, 다큐의 주인공인 두 사람 박만순과 조상지는 노동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시끌벅적해졌는지, 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한 노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보람된 것인지 힘주어 이야기한다.
세 번째 다큐를 기획할 때는 고민이 더 커졌다. 원래 처음이 쉬운 법. 처음에는 소개, 두 번째는 노동자 개인의 삶으로 들어갔다면, 세 번째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 이번 다큐도 감독을 맡은 호경 감독님이 좋은 의견을 주셨다. 작년에 촬영을 할 때 피플뻐스팀 노동자분들의 관계가 끈끈해진 것을 보았는데, 이에 관한 내용을 담아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소개에서 개인으로 그리고 관계로, 너무 완벽한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완성된 영화는 올해 2023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기획작으로 상영되었고, 현재는 노들장애인야학 유튜브에도 공개되어 있다(https://youtu.be/OQ7TfpkRd08). 지역영화제 등에서 상영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서 배급을 요청하면 된다. 이 글은 영화 전반의 내용보다는 (유튜브나 지역 장애인권영화제등을 통해 직접 영화를 보시기를 권하며) 일부 씬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1. 너무나도 소중한 쉬는 시간의 수다 타임
노동자에게 쉬는 시간이란 정말 달콤하다. 주인공들이 일자리 쉬는 시간에 모여서 인기 근로지원인과 함께 왁자지껄 말씀을 나누다 못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감독님에게까지 말을 시켜버리는 선을 넘나드는 시끌벅적함. 또 어딘가에 가서 수다를 떨고 계시는데, 대화 상대를 잘 살펴보면 다른 일자리팀인 탈탈탈팀 담당인 엠마, 민섭과 수다를 떨고 있다. 이 광범위한 친화력. 우연히 겹친 쉬는 시간은 이렇게 또 팀을 넘나들면서 수다의 장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에서 복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2. 우리의 노동을 돌아보기
온라인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활동을 갈무리해서 올리는 ‘피플뻐스 SNS 권익옹호 홍보팀’의 업무 현장. 우리의 노동을 우리가 돌아보고, 갈무리 영상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고, 사진을 배치하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서 이야기를 엮는다. 권익옹호 캠페인의 의미를 되짚어보기도 하고, 캠페인 물품이었던 깡통의 의미를 함께 찾아보기도 한다. 물론 떡볶이에 관한 수다 등 일상의 이야기가 흘러들어오기도 한다.
#3. 거리 캠페인의 곤란함과 성취감
거리에 나가서 낯모르는 시민들에게 다가가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어떤 곤란함과 자주 맞닥뜨리는 일이다. 추운 날 거리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피케팅을 하고, 홍보물을 배포하고, 권리옹호를 위한 서명을 받는 일은 대체로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희자야, 상처받지 말자’라고 다독이던 성숙님이 홍보물을 받지 않고 지나치는 시민에게 서운해 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캠페인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러다가도 시민들이 유인물을 받아드는 것만으로도 작게 환호하고, 시민들이 홍보물이라도 가져가서 읽게 되면 ‘우리에 대해 알게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동료 유리 샘의 말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한다.
이 영상의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선, “언니”들의 우정과 사랑과 갈등과 부딪힘이 ‘일로 만난 사이’에서 비롯되었듯,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권리중심 노동자와 시민과의 만남이 ‘일로 만난 “황홀한” 사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 일로 만날 더 많은 사이들, 지역사회 시민들과의 만남의 계기를 올해도 기대하며, 앞으로는 이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숨겨진 씬들, 이를테면 “언니”들의 갈등과 부딪힘 등 우리의 더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