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여름 134호 - [노들 책꽂이] 도대체 전장연이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면 / 장혜영
노들 책꽂이
도대체 전장연이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면
장혜영
탈시설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비장애 형제자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21대 국회 정의당 국회의원으로 ‘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등을 발의했다.
처음 『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글 홍은전·그림 훗한나, 오월의봄)라는 책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웅 대서사시였다. 왜 이런 낭만적이고 비장한 제목을 골랐을까? 궁금증은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투쟁과 그 투쟁의 최전선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가 장애인의 동등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 편의 긴 대서사시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서사시의 주 무대는 운명을 건 전투다. 『반지의 제왕』의 헬름 협곡 전투든 『삼국지』의 적벽대전이든 예외는 없다. 전투에 나선 영웅들의 초인적인 활약은 경탄스럽지만 우리가 영웅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그의 탁월함이 아니라 그가 운명적 전투에 이르기까지 헤쳐온 삶의 궤적이다. 추앙받기는커녕 오히려 무시당하고 낙인찍힌 존재였던 누군가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난관을 헤쳐가며 마침내 세상의 운명을 가르는 전투를 마주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운명적 전투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승리를 염원하게 된다.
‘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근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치열한 전투다. 지난 2021년 말부터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전장연’이라는 단어가 각인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한 무리의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시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중파 뉴스로 연일 보도되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 예산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공감하는 시민들도 많지만, 반복되는 지하철 시위가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비판도 함께 일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전장연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외면했다. 전장연은 굴하지 않고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 때로는 승강장에서 피켓을 들며 투쟁을 계속했다. 전장연의 투쟁을 본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물었다. “도대체 전장연은 왜 그러는 거야?”
사진제공: 오월의봄
『전사들의 노래』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성스러운 대답이다.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는 전장연 대표단 6명을 각각 인터뷰해 연재한 기사들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기사의 발행 시점은 지하철 시위 이전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은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이 머리말에 적었듯 “전장연이 왜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게 됐는지를 알리는 장대한 서사”가 되었다. 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수많은 뉴스를 낳았지만 뉴스를 이어 붙인다고 그대로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사들의 노래』는 뉴스가 채우지 못한 서사의 공백을 전장에서 전사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겨 정확하고 세밀하게 채워 넣는다. 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 전장연의 대표단 6명은 서로 가진 장애도, 장애를 갖게 된 경로도 다르고, 성별도 연령도 태어난 지역도 다르다. 『전사들의 노래』는 이렇게 다른 여섯 사람이 어떻게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최전선에 나란히 전사로 서게 되었는지 가만가만 들려준다.
비장애인으로서 27년을 살다가 갑자기 찾아온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장애를 입은 박길연은 16년을 집안에서만 지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 겨우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올 결심을 한다. 그렇게 다시 마주한 세상은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20대 동료 장애인, ‘집 지키는 개’로 살았지만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동료 장애인이 있는 충격적인 세상이다. 박길연은 글을 모르는 동료가 있으니 장애인야학을 열고 ‘집 지키는 개’로 살기 싫다는 동료가 야학에 살고 싶다 하니 그렇게 하기로 하며 점점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어간다. 지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찾아 시설에서 탈출하는 다른 장애인들의 삶이고 죽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가졌던 박김영희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좌절하는 대신 동생의 바느질 숙제부터 라디오 사연 보내기까지 앉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한다.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간 종교공동체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규정되며 거부당한 경험도 그는 새로운 도전의 동력으로 바꿔냈다. 장애여성의 존재와 언어를 찾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고, 장애여성을 위한 성폭력상담소를 열고,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시설 권력에 맞서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그는 자기 자신으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언제나 새롭게 체득하고 있다.
첫돌이 되기 전 경기를 하고 장애를 얻게 된 박명애는 엄마가 ‘니는 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엄마랑 놀자’고 말했을 때 그것이 배움을 포기하는 것인 줄 몰랐다.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아 열심히 기르며 47년을 집안에서 살았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대구 질라라비야학과의 만남이다. 야학에서의 배움과 세상의 차별에 맞서 권리를 쟁취한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서 싸우면 바꿀 수 있다는 확신, 마음속에 담아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을 말해도 좋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박명애는 이제 투쟁의 현장에서 은발머리를 휘날리며 가장 솔직한 언어로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흔들어 놓는 놀라운 선동가로 활약 중이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20년 동안 집에서 밥 먹고 잠만 자다가 스무 살부터는 시설에 들어가 밥 먹고 잠만 자길 10년을 한” 이규식은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 처음 가 본 것은 스물셋 무렵. 지내던 시설에서 후원자가 사준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며 학교 건물을 보고 학교가 이렇게 생겼구나 했다. 우연한 기회로 노들야학에 입학한 후 혜화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타다 추락 사고를 당하지만 그 사고의 원인은 장애인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리프트를 그대로 방치해 온 사회에 있음을 고발하며 당당하게 싸워 승리한다. 이규식은 지금 현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효과적으로 경찰저지선을 돌파하는 베테랑 활동가이자 자기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낸 작가다.
엄마 말, 선생님 말, 사회의 말을 골고루 안 듣던 저항의 아이콘 박경석은 해병대 제대 후 대학 동아리 선배와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척수장애인이 된 후 5년간 집에만 있었다. 집에서 죽으면 어머니가 너무 슬퍼할 테니 집 밖에서 죽을 방법을 찾기 위해 교회를 나갔다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경로를 마주한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정태수와 박흥수 두 사람은 그에게 친구이자 동료이며 현장에서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장애인운동의 방향성을 일깨워 준 나침반이다. 많은 이들이 현장을 떠날 때 박경석은 꿋꿋이 현장을 지켰고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망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는 이동권 투쟁을 이끌며 마침내 스스로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쟁취한다.
네 살 때 근위영양증이라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된 노금호는 기도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5학년이 될 무렵 엄한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와 학업에 전념한다. 갑갑한 집에서 벗어나려 일부러 하향지원한 대구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에서 만난 여러 인연을 통해 그는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깨닫고 교내의 장애 및 비장애 학우들과 학내 장애인권동아리 ‘레츠’를 만들어 활동한다. 학생운동을 정리한 노금호는 대구에 터를 잡고 2006년 대구 활동지원서비스 투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리더로서 쉬지 않고 수많은 투쟁에 헌신해 왔다. 노금호는 누구보다 전장연의 장애인운동이 가지는 한계를 냉정하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척수성 근위축증이 심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말한다. “나의 손상이 진행되는 속도에 비해 사회의 성숙도는 너무 느린데 그 의미를 확장하는 운동조직 안에서조차 제가 깰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요.” 노금호가 마주한 한계는 자신의 한계이고 운동의 한계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또 다른 전선이다.
그림: 훗한나
2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의 역사와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여섯 전사들의 삶에서 눈을 돌려 다시 지하철 시위의 전장을 바라본다. 이들이 싸우는 상대는 오크나 고블린, 사우론 같은 악의 세력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를 향해 소리치고 있지만 정부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과 싸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장연이 싸우는 상대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고 장애인을 배제한 채 만들어진 세상이다. 전장연은 장애를 이유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바쳐 싸우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기에 놀랍게도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다. 마치 대서사시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말이다.
『전사들의 노래』는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써 내려가는 현재진행형의 대서사시다. 아직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성벽은 견고하기에 전투는 계속된다. 어지러운 전투의 한 장면만으로는 이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전사들은 구성진 곡조에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부른다. 좋은 이야기는 좋은 노래가 되고, 좋은 노래는 멀리멀리 퍼져 승리의 희망이 된다. 수십 년을 방 안에 갇혀있던 전사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으로 뛰쳐나와 차별의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닥을 기고 구호를 외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우리의 연대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어서 이 장대한 이야기에 합류하지 않겠느냐고, 이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