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여름 134호 - 열차는 어둠을 헤치고 장애해방의 종로구로 나아가지요 / 민푸름
[특집_2023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열차는 어둠을 헤치고 장애해방의 종로구로 나아가지요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장애인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서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과 그 전후의 기간에는 중앙정부와 각 시, 군, 구를 대상으로 한 격렬한 투쟁이 펼쳐진다. 종로구도 마찬가지다.
‘종로구중증장애인지원을위한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응하기위해 2009년 첫 자치구 투쟁을 시작한 이후 종로구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아래 종로420)이 진행돼 왔다. 이번 2023년 종로420의 주요 장면들을 돌아보며 종로구에서의 자치구 투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우리 잘 싸울 수 있을까?
이번 종로420은 노들장애인야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단법인 노란들판,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종로지회,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관했다. 주관 단체들이 첫 회의를 가진 것이 4월 5일 수요일이었는데, 종로420 선포 결의대회일이 4월 24일로 정해졌다. 그것도 심지어 중앙 420투쟁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20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잘 준비할 수 있을까? 우리 잘 싸울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종로420 준비가 시작됐다.
짧은 시간 내에 요구안을 작성하고, 당일 사전대회, 행진,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을 조직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종로420 선포 이후의 투쟁을 우리가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준비 기간 내내 함께했다. 종로구청장 정문헌도, 종로구 최재형 국회의원도 국민의힘 소속이다. 특히 최재형 의원은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를 포함한 17개 단체가 연 ‘장애인탈시설범사회복지대책위원회’에 직접 참여하여 “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로드맵은 시설에 거주하는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선택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더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거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장애인 복지 정책에 힘쓰겠다”고 축사를 할 정도로 탈시설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요구안은 너무도 거대해보였다. 종로구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제정, 종로구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 제정, 종로구 관내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설치 및 입소 금지, 사각지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구비 추가 지원 확대,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주간활동·평생교육 등 활동 지원체계 구축. 탈시설의 ‘탈’만 꺼내도 언제든 우리를 탈탈 털 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과 우리, 잘 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 싸울 수 있을까?
종로구청과 노들장애인야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종로지회,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요구안을 바탕으로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2. 종로구에 대형시설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종로420 이전에 중랑420과 은평420이 열렸다. 해당 자치구와의 면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슬쩍 흘려들은 바, ‘자치구 관내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설치 및 입소 금지’는 어렵다는 얘기가 반복해서 나왔다고 한다. 구청으로 대체 언제쯤에나 입소가 가능한지 계속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입소 금지는 너무도 가혹하다는 것이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이 요구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이다. 게다가 예산이 드는 요구도 아니고, 그저 시설을 새로 만들거나 새로운 장애인을 입소시키지 말라는 건데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 그럴 거면 ‘신규시설 설치 금지’ 내용을 포함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2021년도에 대체 왜 발표한 건가.
구분 |
문혜 장애인요양원 |
은혜 장애인요양원 |
라파엘 단기거주시설 |
마로니에 공동생활가정 |
서울정신요양원 |
장애 유형 |
1급중증(정신지체 뇌병변, 중복장애) |
1급중증(정신지체 뇌병변, 중복장애) |
시각, 중복장애 |
지적, 자페성 |
정신질환 |
설립연도 |
1992년 |
1995년 |
2004년 |
2009년 |
1984년 |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텃골1길 13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텃골1길 19 |
필운대로2길 16 |
혜화로12길 20-10, 101호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마골로 258번길 122 |
생활인원 |
115명 |
117명 |
10명 |
4명 |
261명 |
전화번호 |
033)452-7881 |
033)452-6161 |
02)739-7020 |
02)744-9026 |
031)826-3300 |
홈페이지 |
www.munhye92.or.kr |
www.eunhye1004.org |
www.raphayel.org |
- |
www.seoul3300.or.kr |
특히나 종로구에서 해당 요구는 더욱 중요하다. 종로구가 관리·감독하는 시설은 총 5곳인데, 이 중 2곳이 100명 이상의 대규모 거주시설이고, 정신요양원까지 포함하면 100명 이상의 거주시설이 3곳이나 된다. 2021년 기준, 전국에 거주인 100명 이상인 시설이 37곳인 것을 생각하면 꽤나 큰 비중이다. 특히나 여전히 전체 거주시설 장애인의 대다수가 30인 이상 대규모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입소 금지는 더욱 중요하다.
종로구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대회 참여자가 ‘종로구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종로구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3. 자치구에도 탈시설지원조례가 필요해
작년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바 있다. 해당 조례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하면서 완전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며,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며,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에 필요한 공적자원을 충분히 지원”함을 원칙으로 한다. 위 조례 제정 이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성명에서 말한 것처럼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됐”음은 분명하다. 특히나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의 법적 근거가 될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의 조례 제정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조례는 사각지대를 남겨둔다. 예컨대 공동생활가정, 단기거주시설, 영유아시설이 탈시설 대상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고, 이로 인해 이 같은 시설에서 거주하다 나온 이들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한 탈시설 욕구를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탈시설 권리를 보장해야 함에도, 해당 조항이 삭제되어 상대적으로 중증인 장애인의 권리가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종로구에서는 탈시설 지원 조례는 당연하고, 이러한 사각지대를 메꿀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 즉, 종로구에서 제정하는 조례에는 신규 시설 설치 및 입소 금지, 활동지원서비스 추가 지원, 시설 거주인의 자립계획 수립을 위한 정기적인 상담 실시 및 계획 수립, 주거서비스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한다.
종로구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대회 참여자가 ‘종로구의 자랑스러운 탈시설 당사자 이웃이 저에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종로구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4. 종로구에 공공임대가 없어도 너무 없잖아!
이번 요구안에는 ‘주거권’과 관련된 요구가 3개나 들어가 있다. ① 종로구 관내 장애인 자립 공간 확보 ② 종로구 관내 쪽방 등록/미등록 장애주민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통합지원체계 구축 및 공공임대 유니버설 디자인 의무화 ③ 발달장애인의 주거권 보장 및 주거서비스 지원 체계 구축이 그것이다.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와 자립생활 권리에 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 안다. 그러나 자립하기 위해 살 집을 구해본 적 있는 장애인들이라면 이게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면서도, 크게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과 적당히 가까워 이동권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 그런 집. 대부분의 탈시설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주택, 공공임대주택, 지원주택 중 하나를 선택하고자 하지만, 종로구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은 2022년 7월 기준 1,409호에 불과하다. 서울시 지자체별 평균 보유 임대주택 호수는 9,590호로, 종로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보유 물량이 가장 적다. 지원주택이나 자립생활주택의 물량 역시 많지 않아 공공임대로 입주해야 하는 경우 종로구에 자리 잡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게다가 종로구는 서울시내 5대 쪽방촌 중 2곳인 돈의동과 창신동이 있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쪽방주민과 쪽방촌에 거주하는 장애주민에 대한 주거 및 주거서비스 대책이 다른 자치구에 대해 더욱 촘촘히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창신동 쪽방촌은 현재 재개발사업이 확정되었고 곧 관내에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설 예정인데, 여기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될지도 미지수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 아주 적은 지원이나 사비로 안전바와 경사로를 직접 설치하고 욕조를 해체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할 것이다.
더불어 주거권은 단순히 살만한 집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정한 주거 환경이란 그곳에서 주거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적절한 주거서비스가 지원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예컨대 일단 입주는 할 수 있는데, 임차료 지원이 아예 없다면? 들어갈 임차료를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면? 집만 마련해주고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게 차단한다면? 이는 자립생활을 제대로 지원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의 주거권 보장에는 주거서비스 지원체계 구축이 함께 요구되는 것이다.
종로구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대회에서 핵심요구안을 흰 천에 라카로 작성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5. 200명을 조직하라!
200명.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집회 신고를 하며 경찰과 200명을 기준으로 합의를 했다. 참여 인원이 200명 이상이면 2차선까지 확보해 행진하고, 200명 미만이면 1차선만으로 행진한다는 합의였다. 종로구청 앞 장소 사용도 마찬가지였다. 종로구청 앞 인도를 포함하여 1차선까지 집회 장소로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한 200명이 기준이었다. 199명이면 1차선, 200명이면 2차선 행진이 되는 상황에서 200명 조직이 꼭 필요했다.
종로구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대회 참여자들이 2차선을 확보해 행진하며 종로구청으로 향하고 있다.
이후부터는 너무나도 죄송스럽게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을 귀찮게 했다. ‘죄송하지만, 조직 상황 한 번만 더 확인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중앙420 당일에도 지나가는 활동가들을 불러 세워 ‘꼭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읍소했다. 아참 중앙420 당일에는 지쳐 잠들려는 모 센터 소장님을 붙들고 늘어지기도 했다. 염치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욕심나는 일이었다. 보신각 앞에서 출발해서 세종대로를 지나 종로구청에 이르기까지, 200명 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종로구와 지역사회에 자신의 권리를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이 만들어 내는 장관. 중간 중간 멈춰 서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결의에 찬 발언도 들으며 구민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우리의 행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당일 200명이 넘게 조직됐다.
성북구, 성동구, 강동구, 은평구, 중구, 광진구, 중랑구, 영등포구, 심지어 경기도 김포에서까지 종로420에 함께하기 위해 모였다. 200명을 조직하기 위해 힘써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지난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자치구 투쟁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중증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 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7개 자치구의 구청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시의 퇴행적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으니까. 서울시 자치구 곳곳에서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이 위협받기 시작하자, 각 자치구의 거점인 장애인야학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더 똘똘 뭉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종로420은 종로만의 투쟁이 아닌 것이다. 이어서 진행될 강동, 영등포, 김포 등의 자치구 투쟁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투쟁이기에, 종로에서 모였던 이들은 함께 연대해서 다시 힘차게 거리로 나설 것이다.
종로구청 앞에서 2024년 종로구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제안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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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종로구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보장 및 예산 핵심 요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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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노동권 보장 |
1. 2024년 종로구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0개 신규 추진 2. 사업 전담인력 2명 인건비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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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 |
1. 종로구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제정 2. 종로구 관내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설치 및 입소 금지 3. 종로구 관내 장애인 자립 공간 확보 4. 종로구 관내 쪽방 등록/미등록 장애주민 돌봄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통합지원체계 구축 및 공공임대 유니버셜 디자인 의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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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 |
1. 종로구 중증장애인 지원 조례 개정 2. 사각지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구비 추가지원 확대 3. 만 65세 이상 고령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자치구 추가지원 4.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확대 5. 불공정한 주민세 해결방안 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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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육권 보장 |
1. 종로구 「장애인평생교육 지원 조례」 제정 2. 종로구 장애인평생학습 도시 예산 확보 3. 종로구 장애인평생교육기관에 대한 운영비 및 교육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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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보장 |
1. 발달장애인의 주거권 보장 및 주거서비스 지원 체계 구축 2.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확대 및 중증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마련 3.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 주간활동 및 평생교육 등 활동 지원체계 구축 4. 발달장애인 기존 지원시설 개선 및 신설 5. 발달장애 학생 학습 도움이 파견사업 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