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135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 / 주장욱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
주장욱
대항로 유리빌딩에 있는 한 장애인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활동지원사입니다.
2018년 가을,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저는 ‘좋은 일’ 한번 해 보자는 생각에 교내 ‘장애학생 이동 도우미’ 활동에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까지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과 함께 학교 기숙사와 강의실 사이를 잇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놀랍고도 황당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이 제가 학교에 입학한 지 3년 반이나 지나서야 알게 된 ‘첫’ 휠체어 이용 학생이었고, 제가 ‘생전 처음’으로 함께 이동하고 대화하게 된 휠체어 이용자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한 2022년에도 물론 별반 다를 것은 없었지만, 2018년 당시 학교의 시설은 전혀 배리어 프리(barrier-free)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 이용자가 혼자서는 여닫기 어려운 형태의 문이 학교 건물과 강의실 출입구를 막고 있었고, 교내 곳곳에 가파른 언덕이 있었으며, 강의실 안에는 턱과 계단이 있었습니다. 기숙사와 강의실 앞에서 제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그 학생을 보면서, 저는 학기 내내 단 하나의 질문만 스스로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얼 모르고 살았던 거지?’
배리어 프리하지 않은 시설도 문제였지만,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에게 고작 인권 교육 1회 수강을 요건으로 이동 도우미, 필기 도우미 등의 ‘자격’을 부여하던, 그리고 그것만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이동권과 교육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하던 학교의 무책임함이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사실 학교는 장애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시 학교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이동 도우미 활동 후기를 작성하게 했는데요, 아래는 제가 첫 활동을 마친 2018년 겨울에 제출한 후기의 일부입니다.
“저는 한 사람이 진정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하는 학생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껏 유지해온 학교의 지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대학이 고민하기를 멈추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듬해 1월, 저는 당시에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생활비도 벌면서 위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직업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 활동지원사’입니다. 그때만 해도 어색한 공간이었던 유리빌딩에서 들은 40시간의 교육, 추경진 활동가와 그분의 활동지원사를 따라다닌 10시간의 실습은 수개월 전 ‘내가 그동안 무얼 모르고 살았던 거지?’라고 스스로 묻던 저의 시좌를 옮겨 주었습니다. 앞서 보여드린 제 활동 후기에 적혀 있는 ‘학교’라는 글자를 ‘사회’로 바꾸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활동지원은 단순한 ‘봉사’가 아닌 필수 노동이며,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필수적인 권리 보장의 방식이자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넘치는 의욕을 주체할 수 없어 바로 일에 뛰어든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곧바로 활동지원사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학교생활과 활동지원을 병행하려 했던 저는, 활동지원을 하면서도 일상을 제 편의대로 유지하려 했던 탓에 이용자와 연결되기 어려웠습니다. 저녁, 새벽 시간을 포함해 온종일 활동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들의 일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죠. 2019년에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았지만, 4년이 지난 2023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관련 서류를 작성하며 얼굴이 빨개졌던 그때가 여전히 민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6월 29일 개최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장애인권리입법·예산 쟁취 전국결의대회’에서
저는 현재 대항로 유리빌딩에 있는 한 장애인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활동지원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지하철도 타고, 집회도 하며, 행진도 하고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요구들과 목소리들이 여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옵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제 안에 쉬이 해소되지 않는 분노도, 고민도, 때로는 망설임도 쌓여 가지만, 제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저의 시좌를 계속해서 흔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기쁩니다. 2018년 가을과 겨울에 했던 고민을 잘 간직한 채로, 2023년 현재 쌓이고 있는 고민들을 잘 다져 가면서 앞으로도 잘해나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