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여름 134호 - 그 봄, 우리가 경찰서를 드나들었던 이유 / 남호범
그 봄, 우리가 경찰서를 드나들었던 이유
서울시 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 후일담
남호범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
지난 2월 20일 오전 9시, 평일 여느 때처럼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선전전’이 끝난 뒤 특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계속되는 경찰의 최종 ‘출석’ 통보를 거부하는 한편, 서울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와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부터 경찰은 장애인 권리입법과 권리예산 보장을 외쳐온 전장연 활동가들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재물손괴, 일반교통방해, 「철도안전법」 위반, 기차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 및 출석 요구를 해왔다. 특히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해 6월 취임 뒤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장연을 향해 “국민 발을 묶어 의사를 관철하는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출석요구서를 받은 장애인 당사자가 조사를 받고자 경찰서 앞으로 나선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경찰의 입장은 스스로 그 모순됨을 드러내고 말았다. 매일 같이 경찰은 전장연 활동가들 앞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왔지만, 막상 장애인 활동가들이 자진 출석한 혜화·종로·용산경찰서 등에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997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편의증진법)에 따라 국가 공공시설인 경찰서는 장애인이 통행 가능한 접근로,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점자블록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2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서 다수가 해당 법을 제대로 지켜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것이 바로 박경석 대표가 수십 년간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경찰의 ‘출석’을 거부한 본질적 이유이자, 이후 약 한 달 동안 진행되었던 서울시 경찰서 31개소에 대한 편의시설 전수조사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장연의 계속된 외침과 요청에도 경찰은 무응답 내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고, 결국 전장연은 2월 28일을 시작으로 직접 경찰서 편의시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이에 노들장애인야학에서도 권익옹호부를 중심으로 야학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혜화경찰서(3월 9일), 종암경찰서(3월 14일), 동작경찰서(3월 17일) 세 곳 경찰서에 대한 편의시설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5월 11일 목요일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옆 한 카페에서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명학, 찬욱, 영희를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평생 경찰서는 물론 그 근처도 가 본 적 없던 겁 많은 한 신입 활동가가 경찰서를 수차례 ‘드나들었던’ 겁 없는 3명의 동료들에게 직접 묻고 듣고 기록했다. 대화가 두서없이 이리저리 흐르는 듯해도, 막상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이번 조사에 열심이었는지, 더 나아가 장애운동에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다스러우면서도 사뭇 진지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느껴주기를 바라본다.
○ 일시: 2023년 5월 11일 (목) 오후 1시
○ 장소: 모리셔스브라운 대학로마로니에공원점
○ 진행/정리: 남호범
○ 참여자: 김명학, 박찬욱, 탁영희
그들이 불응할 이유도, 우리가 거부당할 어떤 이유도 없다
- 찬욱: 우리 마치 경찰한테 조사받는 것 같아요. (웃음)
- 영희: 명학 형도 조사 잘 받잖아요. 찬욱도 되게 잘 받아. (웃음)
- 찬욱: 난 탁영희한테 다 배웠어요.
- 호범: 아니, 그럼 여기 있는 세 명은 모두 경찰한테 조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거예요?!
- 영희: 맞아요. 그럼 이제 우리 다음에 걸리면 다 남호범이라고 하자. (웃음)
- 찬욱: 맞아 맞아. 다 남호범이라고 하자. (웃음)
- 호범: (당황) 네...? 크흠... 자, 이제 우리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지난 3월 서울의 경찰서 31개소 편의시설 전수조사에 여기 계신 세 분이 모두 참여를 하셨는데요, 우선 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떤 과정이나 절차로 진행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영희: 우리가 서울의 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경찰에서 계속 전장연 활동가들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는데, 과연 공공시설인 경찰서라는 곳은 편의증진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우리한테는 계속 불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가 공공기관이야말로 불법을 저지른 거 아니냐. 이렇게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편의시설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으니, 그렇다면 우리는 서울에 있는 모든 경찰서를 전수조사하겠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나 우리가 조사받을만한 환경이 갖추어져야만 출석을 하겠다고 한 거죠. 경찰은 계속 우리만 불법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불법이기 이전에 국가가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경찰서 전수조사를 하게 된 거죠.
- 호범: 그렇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조사에 함께 하지 못해서, 그렇다면 실제 경찰서에서의 조사는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이루어졌을지 궁금하더라고요.
- 찬욱: 전수조사, 즉 장애인의 이동권 및 접근성 모니터링이라는 건 일단 경찰서뿐만 아니라 각 공공기관을 다 돌고 있죠. 편의증진법에 근거해서 공공기관에는 몇 년 이후로 지은 건축물은 모두 법률의 적용을 받으니까요. 특히 이번에 조사할 때에는 어떤 항목들을 보면 좋을지 참고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에서 만들었거든요. 그 체크리스트에는 점자블록이나 휠체어 이용자 접근성 관련 항목들도 많고요. 또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갔을 때 어떤 인적 자원이 필요하기도 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인적 자원에 대한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어요.
- 영희: 그래서 시작은 우선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차원에서 전수조사 관련 공문을 서울 내 모든 경찰서에 다 보냈는데, 알겠다고 한 곳이 사실 많지가 않았다고 해요. 주로 ‘법적 근거가 없다’거나, ‘이미 보건복지부나 지자체에서 지정한 단체가 있다’고 회피했고요. 그게 대개 한국지체장애인협회(아래 지장협)였고, ‘전장연은 미지정 단체이기 때문에 이런 모니터링을 할 어떤 근거도 없다’는 핑계로 불응한 곳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노들야학은 주로 불응한 곳에 가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왔었고, 실제로 저희가 갔던 종암경찰서, 혜화경찰서, 동작경찰서 세 곳 모두 조사에 불응 입장을 보였던 곳들이었어요.
- 찬욱: 사실 (전수조사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있어요. 근거가 있는데도 경찰이 해석을 이상하게 하고 있었던 거죠. 처음 경찰서나 공공기관을 지을 때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단체가 지장협인 건데, 사실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게 아니고, 다 지어져 있는 건물을 모니터링하겠다는 거였으니까요. 사실 법적 근거에 대한 해석이 다를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불응할 이유도 없고, 우리가 거부당할 이유도 없으니, 우리는 당당히 가서 조사를 하게 된 거예요.
김명학 노들야학 공동교장이 동작경찰서에 장애인 편의접근 모니터링 결과를 접수하고 있다.
경찰의 무례한 ‘태도’, 곱지 않은 ‘시선’, 성의 없는 ‘자기기만’
- 영희: 실제 모니터링할 때에는 건물 전체를 다 싹 다 봐요. 다만 이번 조사 때 우리 입장은 주차장, 화장실, 민원실, 그리고 조사실 네 곳만을 주로 보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3월 9일에 처음 혜화경찰서에 갔을 때 출입조차도 계속 안 된다 그랬어요. 민원실이나 화장실, 주차장은 모두 공공시설인데 왜 가지도 못 하게 하느냐, 우리도 시민이고 내가 지나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은데도 여기 못 들어오는 곳이냐. 조사 현장에서 이렇게 화를 냈는데 ‘의도가 불순하다’, ‘순수한 목적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들은 그냥 우리를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민원실로 간 거예요. 나도 민원을 넣고 싶어서 민원실에 온 거다, 그러니까 들어가서 말하겠다. 왜 계속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냐고 그랬죠. 그렇게 우리는 혜화경찰서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밖에 있었잖아요.
- 호범: 에고, 그랬군요. 찬욱은 상지님과 종암경찰서를 갔었을 때 이런 어려움은 없었나요?
- 찬욱: 저희도 기본적으로 계속 질문을 받았어요. ‘왜 왔냐’, ‘뭐 할거냐’ 등등. 그런데 계속 길을 막고 물어봐서 한 명에게 대답을 하고 나면, 그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물어보고. 하여튼 그렇게 입구 앞에서 4~5명을 마주했나 봐요. (웃음) 그때마다 영희와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설명했던 것 같아요. 화장실 이용도 할 거고, 민원실은 민원인이면 다 갈 수 있으니까 민원 넣으러 갈 거다. 이런 설명들을 다 했는데, 일단 계속 곱지 않은 시선들을 받았죠.
- 명학: 나보고는 경찰서에서 형사가 와서, 내가 교장인 걸 아는가 봐. 교장 선생님이 빨리 이야기하고 정리해서 가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더니, 제발 빨리 가달라고 하더라고. (웃음)
- 영희: 자기네도 퇴근해야 하니까. 우리가 민원 마치니까 6시 30분 이랬거든요. 그런데 나는 억울했어. 억울했던 게 뭐냐면, 사실 미주(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 활동가)가 혜화서 정보과에 말을 미리 해놓았어요. 우리가 혜화서 가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합의를 잘 봐달라고 했는데, 아니 막상 그 사람이 진짜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거기서 정말 화가 나서 왜 그냥 서 있기만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누가 나올 테니 기다려봐라’, ‘다른 무슨 시설팀이 나와야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가 나오면 ‘시설팀 말고 어디 민원팀이 나와야 된다’고 하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계속 기다리게 하면서 방관만 하고 있더라고요.
- 호범: 동작서는 어땠나요?
- 영희: 동작서는 신사적인 ‘척’은 했는데, 결론은 다 똑같아. (웃음) 결론은 다 지정된 단체가 있다는 거예요. 거기는 그래도 민원실에 있는 직원이 좀 친절해서 화장실도 명학형 안내해주고, 경찰서 나오는 길에 ‘우리는 그래도 노력 많이 했는데 좀 괜찮지 않냐’는 식으로 어필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화장실이 너무 좁던데요?’라고 하니까, ‘아 그러세요…’ 이러면서. (웃음) 조사 이전 장추련에서 했던 교육에서 경사로의 기울기와 같은 각종 기준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사실 실제로는 이런 저런 기준 다 필요 없이 나 혼자 이용할 때 힘들지 않고 편해야 되는 것이 편의시설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아무리 넓고 좋아도 장애인 혼자서 이용하고 활동지원사 없이도 들어갈 수 있고, 그 경사로로 올라갈 수 있는 정도여야 된다는 점을 말했어요. 만약 경사가 너무 높은 경우는 도움벨이 아니라 사람이 상시적으로 있어야 된다고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동작경찰서)는 약간씩 달랐어요. (사람은 없이) 도움벨만 있고. 근데 그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우리는 이런 것도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경사로 안전봉에 점자가 있긴 있었는데, 굉장히 오래돼서 다 무뎌진 거예요. 그런데도 똑같이 ‘우리는 이런 것도 있다’고 했어요. 막상 장애여성 화장실 칸은 청소도구함처럼 쓰이고 있었고.
동작경찰서 여성 장애인 화장실. 청소도구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 명학: 사실 경찰서 말고도 예전에 우리가 카페나 편의점들 조사했을 때, 대부분 큰 건물인데도 그런 편의시설이 아예 없거나 2층에 있거나 그러더라고.
- 호범: 그럼 경찰서가 더 나은 편인 거예요? (웃음)
- 명학: 아니, 그건 아니지. 경찰서는 편의시설 설치 및 개선하라고 얘기하면 건물들이 노후해서 다 새로 지을 예정이라고, 다 계획에 있다고 늘 말만 하지. 당장 편의시설을 개선할 수 없다고만 해왔어. 사실 경찰서 같은 공공기관이 더 모범을 보이고 해야 하는데 말이야.
- 찬욱: 종암경찰서는 옛날 목욕탕 건물을 지금 임시로 쓰고 있는 거였어요. 우리는 2층 조사실 앞까지는 또 들어갔거든요. 엘리베이터도 넓고 안에 거울도 있고 괜찮았는데, 민원실이 되게 좁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온다는 거를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장애인 창구가 따로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봤는데,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복도 가운데 그냥 작은 책상이랑 의자 하나가 덜렁 있고 종이랑 펜이 그 위에 놓여 있더라고요.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서 이렇게 장애인 창구가 있다고 소개해 줬어요. 그래서 ‘우리 민원도 여기서 써요?’라고 말하니까 ‘민원은 그래도 안에 들어와서 쓰시죠’라고 하기에, ‘장애인 창구 여기 아니에요? 우리는 그냥 여기 밖에서 바람 맞으면서 쓸게요’라고 하고 일부러 거기서 썼는데 되게 좀 불쾌했어요. 지나다니는 사람 다 보이고. 담배 피우러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다니는 골목에 우리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상의하는 내용도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데서 썼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일부러 거기서 썼어요.
동작경찰서 여성 장애인 화장실. 청소도구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맞서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저항한다는 것
- 명학: 예전에 우리가 주민센터 조사할 때가 있었어. 주민센터 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오잖아.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이 와서 업무 볼 수도 있고. 점자 안내판 같은 준비를 다 했는지 물어보는데, 있다고는 하는데 어디다 잘 보관해뒀는지 자기들도 어디 있는지 모르더라고. 또 못 들어가게 계단이나 턱이 있기도 하고. 공공기관들이 이러니 다른 데는 얼마나 더 열악하겠나.
- 찬욱: 맞아요. 공공기관은 10중에 9가 되어 있으면 잘 된 게 아니고, 그것도 못 한 게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들 ‘우리는 이만큼은 해놨어요’라고 계속 자랑하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10중에 10이 일단은 되어 있어야 하는 곳들인 건데, 9나 8만 되어도 우리는 잘 하고 있다고 서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답답하죠. 우리가 카페나 편의점을 갈 때 이만큼의 기대를 하고 가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모니터링이 아니어도, 실제로 일상 속에서 공공기관에 내가 가야할 일이 있는데 여길 내가 못 들어갈 수도 있음을 걱정하면서 가면 안 되잖아요.
- 명학: 한마디로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없는 거야. 그리고 내가 가끔 선거할 때 투표소에서도 접근이 보장 안 될 때가 있었어. 투표함을 갖고 오겠다고 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거부했어. 아무튼 이게 다 경찰서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이 비슷해. 법이 있는데도.
- 영희: (웃음) 얘네야말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돼.
- 찬욱: 안 지켜도 되는 법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 영희: 그리고 아까 놓쳤는데, 혜화서 같은 경우도 탄진이 형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니까 갑자기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안내 하더라고요. (웃음) 우리가 진짜 어이없다고, 막 엄청 저거 보라고 막 이러고.
- 호범: 결국 조사 이후에 세 경찰서 모두 답변서를 야학으로 보내긴 했더라고요. 다 살펴봤는데 뭐 ‘안타깝지만 자기들이 당장 뭘 할 수 없다’, ‘노력하겠다’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 찬욱: ‘유감입니다’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왔죠.
- 호범: 그리고 결국 이번 전수조사와 결코 뗄 수 없는 하나의 장면은, 3월 17일 오전 박경석 대표님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되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활동가와 기자들이 서울경찰청 앞에 모였었죠. 그날 상지, 탄진, 애경, 홍기, 용호 등 많은 학생분들이 오셨었는데, 다들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대표님을 태운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뒷모습들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 찬욱: 그랬죠. 우리는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야학 학생분들은 여러 경험과 관계 속에서 ‘고장 샘(박경석 대표)’이 조사 거부를 한 맥락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감정이 누구보다 이해가 됐던 거예요. 특히 권익옹호 일자리 분들은 수년간 일자리하면서 직접 모니터링을 그래도 꾸준히 좀 한 게 있었죠. 장애인 당사자로서 계속 이 주제로 같이 이야기를 했었고. 이렇게 내가 사는 동네에서 경찰서나 주민센터나 어떤 가게들을 일상적으로 방문했을 때 접근조차 안 되는 게 얼마나 부당한 일이었던 건지에 대해 함께 언어화하고 체화해나가는 작업들을 우리가 계속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고장 샘도 처음에는 조사에 응하려고 혜화서 갔는데, 거기서 보고 그 현장에서 계획이 바뀌었던 거잖아요. 그때도 야학이 함께 있었거든요. 조사 거부의 과정과 경찰서에서 계속 우리한테 조사받으러 오라고 하는 압박이 점점 심해지는 과정들이 계속 이들한테도 쌓여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31개 경창서 조사할 때 되게 되게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임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 체포되는 고장 샘을 학생분들이 떠나지 못하고 바라보던 그 장면들에는 스스로 경험하고 쌓였던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되게 아쉬워하고 하고, 또 되게 슬퍼하고 애달파하는 모습들이 그 장면에서 보였던 것 같고. 기자회견에서 상지님도 발언할 때 되게 마음이 달랐었다고 해요. 좀 더 무거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난 3월 17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체포영장 신청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조상지 노들야학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투쟁한다
- 호범: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번 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에 나섰던 세 분의 소회나 앞으로의 각오를 한 번 들어볼까요? 아니면 하고 싶으신 말씀이라도 괜찮습니다.
- 명학: 공공기관이 아무리 건물이 낡았어도 그걸로 변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공공기관은 특히 더 열심히 만들어야 할 처지인데. 공공기관이 그러니까, 공공기관이 아닌 곳들은 더 어떻겠어. 새로 짓거나 이전하는 가게도 경사로가 의무적으로 있어야 하는 데 실상 없는 경우들도 허다하고. 만약 외국 사람이 와서 보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아니, 그런 일이 없더라도 당연히 해야지. 자꾸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가고. 사실 빠져나간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잖아. 얼마든지 공공기관은 편의시설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 영희: 다음으로 제가 말할게요. 아까 찬욱이 말한 것처럼 원칙상 조사는 관할서에서 받아야 돼요. 여의도에서 우리가 집회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걸리면 관할인 영등포경찰서에 가야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관할서에 편의시설이 다 되어 있지 않으면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때 경찰의 대응은 남대문경찰서로 다 사건을 이관하는 거였잖아요. 그런 논리가 진짜 열이 많이 받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편의시설을 설치하거나 고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이것들은 우리를 빨리 조사해서 벌금 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 벌금을 때리는 것도 나는 너무 어이가 없는 것 같아요. 몇 년 전에도 벌금이 총 4,400만 원이 나와서 5명의 대표들이 노역살이를 했는데, 우리한테 4,400만 원을 뜯어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대기업들 세금 맨날 조작하고 하는 데서 한 번만 때려도 벌금 몇 억이 나올 텐데, 우리 활동가들 100만 원, 200만 원씩 계속 꾸준히 벌금 때려서 4,400만 원까지 늘리고 있는 것도 많이 화가 나요. 아까 명학 형이 말한 것처럼 편의증진법과 같은 법이 있기는 하지만, 현행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나 경찰에게 우리가 실제로 벌금을 때릴 수도 없잖아요. 그런 게 너무 화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투쟁을 하는 것 같고.
- 찬욱: 음… 떠올려보면 우리의 과정 중에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모의재판이란 것도 있었어요. 우리는 계속해서 사법적인 절차를 당하잖아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우리에게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말했고요. 이처럼 우리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사에서 우리도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국가 기관이라면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 영희: 그러면 호범은 어땠어요?
- 호범: 음… 저는 실제로 조사는 안 나갔지만, 막상 박경석 대표님 체포되던 현장과 다음 날 저녁에 석방되시던 현장에는 모두 있었네요. 착잡하면서도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아무튼 올해 들어 경찰들과 아옹다옹했던 게 떠오르기도 하고, 3개월 밖에 안 됐지만 야학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세 분이 얘기한 게 많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저는 그래도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고, 사실 아직도 없진 않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경찰들에게 ‘선생님’이라고 꿋꿋이 호칭을 하고 있어요. (웃음) 분명 경찰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순수한 악의를 가지고 우리를 대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엔 되게 고민될 때가 많아요. 기본적으로 위계적인 조직 구조 속에서 그 사람들도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경찰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책임져야 할 건 책임지는 태도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사유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요즘 들어 더 안 보이고 있는 것 같고, 오히려 집회를 나가거나 이렇게 조사 나갔을 때 경찰이 더 격앙되고 감정적인 방식과 태도로 나오고 있죠. 아무튼 저도 다음 기회에는 어디든지 모니터링에 열심히 참여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다음 모니터링 관련 기사는 제가 절대 안 쓰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많이 늦었지만 정말 모두 고맙고 고생하셨습니다.
혜화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에 나선 노들야학 권익옹호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