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4월 12일 경복궁역 10차 삭발결의자 / 유진우
2022.4.12.
경복궁역
10차 삭발결의자
유진우
해방의 길을 향해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은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준말)'입니다.
장애인당사자로서 겪은 차별과 억압을 장판에서 마음껏 털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중증뇌병변장애인입니다. 뇌병변장애인이라고 하면 뇌에 있는 운동신경이 잘못돼서 장애가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조금의 언어장애가 있고 경직이 심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술자리에서, 회의에서 저도 모르게 경직돼서 병을 깬다든지, 잔을 엎는다든지, 물을 엎는다든지 저의 의도와 상관없는 행동이 나올까 봐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집에만 있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외출을 못 했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저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장애인에게 꿈이란 사치며, 외출은 한 달에 다섯 번 하는 이벤트였습니다.
저는 단지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11살 때부터 꿈꿔온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는 소외된 자, 배제된 자와 함께 활동하던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저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이제 목사가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고, 신이 났습니다. 학교에서 하라는 과제, 공부, 책 읽기를 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란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했던 노력은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 구조가 가득한 신학교, 교회 내에서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권리의 주체가 아닌 도움의 객체로 상정해 저의 노력은 그냥 장애인이 하는 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차별을 견디지 못한 저는 17년간 꿈꿔온 목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비장애인 중심 커리큘럼을 이수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오는 답변은 ‘기도하겠다’, ‘기다려라’, ‘장애인인데 할 수 있냐?’였습니다. 그 순간 장애인이 아무리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그냥 장애인이구나, 도움의 객체밖에 될 수 없기에 17년간 꿈꿔온 목사는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오늘 저는 삭발을 합니다. 저는 머리가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 머리를 밉니다. 그만큼 절박하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게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저의 머리보다 절박하기에 삭발합니다.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었고, 이동할 수 없기에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기에 노동할 수 없었고, 노동할 수 없기에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삶이 싫습니다. 아니, 다시는 이러한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권리로 보장된, 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21년간의 투쟁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21년간 장애인들이 온몸으로 투쟁해왔던 시절, 무릎에 피가 날 정도로 한강대교를 건넜던 시절, 1842일간 광화문역에서 했던 농성을, 21년간 켜켜이 쌓인 투쟁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말한 것은 투쟁의 역사를 왜곡하는 짓이며,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짓입니다.
왜곡된 사실을 말할 시간에 법에 명시된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십시오. 제대로 보장하는 일이 당신 같은 정치인이 할 일입니다. 예산을 보장하는 것도 정치인이 할 일입니다. 장애인권리예산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또다시 동지의 죽음을 보기 싫습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십시오.
세상에 어떤 존재도 차별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당장 사과하고, 제대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십시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받을 때까지 우리는 투쟁할 것입니다. 투쟁!
유진우 활동가 탈색한 긴 머리카락을 삭발하며 투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