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3월 30일 경복궁역 1차 삭발결의자 / 이형숙
2022.3.30.
경복궁역
1차 삭발결의자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세계장애인의 날’ 해단식에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연내 개정’을 위해 매일 아침 8시에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 선전전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12월 6일 월요일부터 아침 8시에 출근선전전을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며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아침부터 왜 승강장에서 시끄럽게 떠드냐고 비난했습니다.
가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줄지어 지하철에 승차하여 연착되면, 시민들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했기에 창피를 무릅쓰고 그 욕설을 참아냈습니다.
추운 겨울 캄캄한 새벽에 시민들의 욕설을 들을 생각에 심란한 마음을 잡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혜화역 승강장으로 아침 8시 출근 선전전에 나갔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8시에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 선전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8일엔 혜화동 거리에서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자였던 윤석열 후보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엔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자도 함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이 불편한 것은 들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그해 12월 31일에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법은 개정되었지만 법을 지킬 수 있는 예산은 없었습니다.
21년을 외쳤는데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변화는 정말 쥐꼬리만큼씩 밖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1년을 장애인도 이동하고 싶다고 외쳤습니다.
21년을 장애인도 교육받고 싶다고 외쳤습니다.
21년을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외쳤고,
21년을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2월 3일부터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장애인도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출근도 하고 혜화역 승강장에서 아침 선전전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시민들은 장애인의 혐오를 수만 개의 욕설로 퍼부어냈습니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 선전전을 하고 나면 머리가 띵하면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하철 시민들의 온갖 욕설로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면서, 매일매일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선전전을 했습니다. 욕설을 퍼붓는 시민들도 있지만 간간이 힘내라고, 응원한다고 하는 시민을 만날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우리는 오늘로 79일째 아침 8시에 혜화역 출근 선전전을 합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26번째 ‘장애인도 지하철 타고 출근합시다’를 했습니다.
시민들은 장애인을 혐오하는 욕설을 뱉으면서 ‘왜 아침부터 남의 출근도 못 하게 하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단 몇 분, 몇십 분을 참지 못하고 사정없이 욕설을 날렸습니다. 제가 지하철을 타고 선전전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시민 여러분, 불편을 끼쳐 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입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항상 무엇이 미안한지, 무엇이 죄송한지, 입에 껌딱지처럼 달고 말을 합니다. 왜 장애인은 세상을 살면서 매번 미안해야 하고 죄송해야 합니까? 지하철의 시민들은 장애인이 열차를 지연시켜 화가 나서 욕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휠체어가 걸리적거린다고 욕하고, 엘리베이터를 좀 늦게 타도 욕하고, 식당에 들어가도 휠체어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고 뭐라 하고, 단 한 번도 시민들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명확하게 장애인의 혐오와 차별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서면서 먹먹한 가슴을 달래며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과 지하철 출근 선전전을 했습니다. 오늘은 또 시민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욕설을 할까? 우리의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을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아침 출근 선전전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서슴없이 공론화 시켰습니다. 21년을 외친 장애인의 목소리를 하루아침에 깡그리 짓밟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외되고 배제되어온 장애인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끈질깁니다.
우리는 21년을 외쳐서 미세하게나마 세상을 바꾸어 내고 있습니다. 공권력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강고한 힘이 우리에게는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은 하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삭발 투쟁을 하면서 4월 20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답변이 오지 않으면 4월 20일에 장애인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겠습니다. 동지들과 함께라면 혐오와 차별에 맞서 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끈질기게 외치겠습니다.
삭발한 이형숙 대표가 혜화역 플랫폼 선전전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