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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장애인들의 살아남기와 살아가기

 

 

 히옥스

노들야학에서 과학수업의 교사가 된 지 어느새 2년을 꼬박 채우고 있습니다.

고도의 효율성에 집중된 과학기술사회의 ‘인간’중심주의와 비장애인 편향성을 노들의 학생들과 함께 읽으려 애쓰는 동안, 우주와 자연, 식물과 동물, 사회와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2022년 9월 21일 열린 <924기후정의행동X전장연 간담회>에서 발표된 원고를 <노들바람>에 옮깁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인류는 크든 작든 대응과 적응의 두 방향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응” 계획이 멸종반란의 계획이며, 인류의 생존, 살아남기의 계획이라면, “적응” 계획은 이미 변화의 소용돌이에 들어간 인류의 현재의 삶과 세계를 돌보는, 살아가기의 계획입니다.

 

  탄소배출감축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다양한 대응방안과 관련하여, 기후정의라는 배경 속에서 에코에이블리즘의 관점에서 또한 검토해야 할 지점 등이 많이 있음을 사회자께서도 미리 언급하여 주셨습니다. 스마트하고 선량한 의도로 거뜬하게 해낼 수 있는 많은 ‘친환경’ 활동들이, 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항상 의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는 자연과 다시 관계를 정립하고 인류 전체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탄소문명의 장점을 모두 누린 선진국이 전 세계의 평등한 탄소배출감축을 외쳐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한 ‘그린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하고 있어’라는 기성세대의 반박에 대해 ‘스웨덴은 개도국을 위해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도국의 사회 환경이 더 낫게 개발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국가간의 상황 차이뿐 아니라 시민들의 계층, 젠더, 인종, 그리고 장애에 따른 다른 상황들이 포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1인당 탄소배출량이 5위쯤 되는 순위를 가진 나라입니다. 세계지도에서는 매우 작은 국토를 가진 나라이지만, 기후악당 국가가 되는 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책임은 매우 크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문제는 시급을 다투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의 모임에서는 기후변화시대 장애인의 기후위기 적응의 측면, ‘살아가기’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는 “노동자는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 죽지만, 일자리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고 했습니다. 장애계에서라면 저 문장은 어떻게 다시 쓸 수 있을까요? “장애인은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 죽지만, (    )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 괄호 안에 어떤 단어를 넣으면 좋을까요? 

 

  작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작된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읽다 보니, 장애인과 관련된 페이지는 아마도 건강, 경제, 작업 등 기후변화 취약계층 중점보호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데, “모든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없으므로, 우선순위에 따른 단계별 지원 필요”라고 적시되어 있고, 건강과 관련해서는 쪽방촌의 고령 노인들을 위한 지원, 경제와 관련해서는 에너지바우처 등을 이용한 주거환경개선, 야외작업자를 위한 폭염시 작업가이드라인 강화나 폭염대응시설 설치가 전부입니다. 

 

  장애인의 우선순위가 어디쯤일지 가늠하기도 불가능한 저 페이지이지만, 아무튼 ‘중점보호’의 명목으로 작성된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책 입안시 자주, 돌봄과 보호의 대상으로서만 등장하게 되는 장애인들이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많은 시민들이 ‘장애는 타고난 것이거나, 손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형식과 가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보호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고, 지역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고, 교육받고, 일할 수 있지 않다면, 장애인은 더더욱 기후재난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말 것입니다.

 

  지난 2년간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과학수업을 맡아 일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그럴 때 학생들 편에서 ‘너무나 무섭다’라는 반응을 많이 듣곤 합니다. 그 이전에는 대안학교의 비장애청소년들과 기후위기 수업을 했었는데,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그 청소년들도 기후위기에 대해서 공부하고 상상하는 동안 두려움과 우울감을 많이 표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두려움과 우울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가져야겠고, 어쩌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2018년에는 청소년기후소송단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기후위기 문제에서 ‘주체’가 된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토니 마조치의 문장, “장애인들은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 죽지만, (   )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를 생각해봅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비장애중심사회, 장애차별사회에서 이미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노들의 학생들은 그런 취약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생존자’들이며, 적어도 그런 이유로 “오늘은 죽지 않겠다”를 말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여기에 ‘기후위기’라는 조건을 붙여 오늘도 내일도 죽는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자폐성 발달장애인들의 미술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온라인 수업 자체도 쉽지 않았지만, 왜 집에 있어야 하는지, 미술교실에 갈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려워 난감하다는 학부모들의 속상한 마음을 자주 들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기후위기로 인해서 벌어지는 문제상황들을 잘 알 수 없습니다. 노들의 수업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코로나19는 물론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난감해 합니다. 장애유형에 따라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과정은 다양하게 요구되고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고자 준비중인 기후정의동맹의 많은 단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각 단체들의 요구에 각 단체에 소속된 (소속가능한) 회원 장애인의 요구 문장을 한 줄 더 적어주십시오. 모든 단체가 장애인의 요구와 권리 문장을 하나씩 꼭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토니 마조치조차, 노들에서 만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장애인노동자들’ 또한 일자리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고 적어넣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로 무장한 개발과 발전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생명과 돌봄의 가치를 내놓은 여성주의자들의 요구 문장 아래에도 생명과 돌봄의 주체로서의 장애인들의 요구 문장이 덧붙여 써져야 할 것입니다. 탈탄소, 탈성장사회를 떠올리는 기후활동가들은 지금껏 장애차별사회에서 고립되고 외면되어온 장애인들의 삶의 회복을 우선에 두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장연과 노들야학을 떠올리면 자주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이미 전력으로 활동을 해오는 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의 주거와 교육, 이동과 일자리 요구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살펴지고 요구되고 실현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 기후변화 적응대책에서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말을 붙이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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