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6월 22일 삼각지역 57차 삭발 결의자 / 이영애
2022.6.22.
삼각지역
57차 삭발결의자
이영애
57년만에 자립을 앞둔 노들야학 학생입니다.
걱정 반, 좋음 반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장애인야학 청솔 3반 학생 이영애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야학에 오기 전까지 저는 학교를 다니지도, 동네를 다니지도, 어디를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아침 7, 8시에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고. 동생이랑 오빠가 학교 가는 그때부턴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근처에 일하는 엄마가 잠깐 와서 밥 먹이고 대소변 치워주고 가면 다시 오빠가 올 때까지 혼자 울다 잠들고 울다 잠들고. 매일 눈이 팅팅 불었었습니다. 이렇게 31살 때까지 집에서만 살았습니다. 집 안에만 박혀 살면서 ‘그냥 죽고 싶다’, ‘누가 와 가지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죽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와서 목 졸라 죽이든지, 칼로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이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사느니 차라리 당장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2002년 꽃다운 31살에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노들야학을 알게 되고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간판의 글도 읽고, 돈을 모아 옷도 사 입고, 밥도 사 먹습니다.
얼마 전 발달장애인 분들이 부모님에게 살해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8살이던 겨울밤에 엄마가 이상하게 방문을 꼭 닫길래 “엄마, 왜 그래?”라고 했더니 “같이 죽자”, “이렇게 살 바엔 같이 죽자”라고 하면서 연탄을 피웠습니다. 그날은 다행히 아빠가 와서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저는 이제 곧 자립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저한테 화풀이했습니다. 내가 동네북인가. 왜 나만 때리는지. 이대로 살다가는 맞아 죽겠다고 생각해서, 엄마랑 더는 같이 살기 싫어서 자립을 결심했습니다. 엄마한테 아직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 집 얻어서 주소 옮기고 계약 다 하고 나서 살림살이 다 장만하고 난 뒤에 이야기할 겁니다.
자립하고 난 뒤가 겁나기는 합니다. 자립하고 나서는 내가 알아서 공과금도 내야하고 방세도 내야하고. 활동보조 없는 날은 나 혼자 자야 하고. 옛날에 뉴스에서 보니까 어떤 장애인이 겨울에 집 보일러가 동파돼서 죽었던 게 계속 기억이 납니다. 나도 자립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있을 텐데, 불이라도 나거나 동파되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될까 봐 겁이 납니다. 어떤 장애인은 활동보조가 없어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터져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다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삭발을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다 같이 활동보조 24시간 지원받고. 시설도 다 없어지고.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다 나와서 같이 일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들야학 같은 곳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자립도 많이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가고 싶은 데 가고.
마지막으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추경호는 들어라!
하루라도 빨리 장애인권리예산 응답하고 시설 없애라.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자! 우리는 끝까지 집회도 하고, 지하철도 탈 거니까 알아서 해라!
장애인은 30년이 넘게 기다려왔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 장애인들이 죽어가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란 거냐. 반드시 응징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투쟁! 끝.
삭발한 이영애가 혜화역 선전전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