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박경석vs이준석 「썰전라이브」 후기 / 박정수
박경석vs이준석
「썰전라이브」 후기
"고장샘, 굿 잡!"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이지만 연구활동은 아주 조금만 하고 있고,
대신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더 많은 열의를 보이고 있다.
"노들야학 철학교사입니다"라는 소개말을 주문처럼 사용하여
평생의 무대울렁증을 치유한 기적을 체험했고,
최근에는 영상 제작 활동으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려고 400만원을 투자했다.
2022년 3월 17일 서울교통공사 언론담당 직원이 내부 게시판에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란 제목의 문건을 올렸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내 머리에 알람이 켜진 것은. 그날부터 새벽잠이 없어졌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투쟁에 열의가 생겼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혜화역 선전전에 대해 관성적으로 반응했고,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마음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여론전의 ‘공격’ 대상으로 삼고 승리 전략까지 짜는 걸 보자 머릿속에서 ‘안전핀’이 뽑히는 듯했다. 3월 22일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공사 정문 앞에서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고, 봄이 왔고, 투쟁의 알람이 큰 소리로 나를 깨워 들뜬 마음으로 참여했다. 공익을 추구해야 할 서울교통공사가 소수자의 권리 투쟁에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SNS와 언론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3월 25일 국민의힘 당대표인 이준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백 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비난하며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하여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 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포고문’을 올렸다. 곧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정치인이 장애인의 권리 투쟁에 대해 ‘볼모’, ‘인질’이라는 선정적인 단어를 써 가며 물리력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하는 글을 올린 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이준석 당대표는 서울교통공사의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건이 제시한 전장연 공격 포인트를 콕 집어 ‘고의로 틈새에 휠체어 바퀴를 끼웠다’ ‘지하철 시위 때문에 할머니 임종에 늦은 승객이 울부짖었다’ ‘지하철 선전전 주제가 이동권을 넘어 탈시설로 확장되었다’며 비난했다. 한술 더 떠 “최대 다수의 동의”를 구해야 할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 주장을 위해 최대 다수 시민의 출근길을 막는 행위는 “반문명적”이라고, 19세기 문명론과 공리주의의 언어까지 사용하며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감행했다.
이준석 당대표의 유례없는 전장연 공격에 지상파 뉴스와 주요 일간지도 뜨겁게 반응했다. 나는 지하철 선전전을 마치고 박경석 고장샘과 마로니에공원 입구의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러다가 고장샘 소원대로 100분 토론 하겠는데요?”라고 말했다. 3월 31일 박경석 고장샘이 페이스북에서 이준석 당대표에게 TV 토론을 하자고 공개 제안했고, 놀랍게도 이준석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적같이 성사된 TV 토론에 대해 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보통 TV 토론은 3대 3 토론이 많으므로, 전장연의 라인업으로 박경석 고장샘과 함께 장혜영 국회의원, 그리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인 김상희 씨를 떠올렸다. 박경석 고장샘이야 100분 토론 나가서 장애인 권리를 논하는 게 소원인 사람이고, 장혜영 의원은 탈시설한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가족 당사자이자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했으며, 무엇보다 말을 너무 조리 있게 잘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3일 수요일 오후 3시에 열린 JTBC 1차 썰전라이브 홍보물
그럼, 김상희 활동가는? 장애인 활동가이자 〈비마이너〉 칼럼리스트인 그는 장애인 차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또한 누구보다 뾰족하고 논리적인 사유 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특히 김상희 활동가의 입말이 지닌 차이의 힘을 기대했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그의 불수의적인 움직임과 불안정한 입말은 다수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아직까지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TV 토론에 나와서 장애인의 언어로 장애인의 차별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균보다 두세 배 긴 시간과 주의력을 필요로 할 텐데, TV 토론이 그 ‘장애의 시간’을 포용한다면, 그 기다림 끝에 전해진 주장의 설득력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상상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MBC 「100분 토론」은 무산되고, 우여곡절 끝에 JTBC 「썰전라이브」에서 박경석 vs 이준석의 1대 1 토론이 잡혔다. 4월 13일 생방송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 역사적인 TV 토론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반응도 뜨거웠다. 먼저 이준석 지지자가 몰려 있는 ‘에펨코리아’ 등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은 “이준석이 전장연의 새빨간 실체를 벗겨낼 것이고, 박경석은 이준석의 현란한 말빨에 짓뭉개질 것이다”라는 것과 “이준석이 토론 배틀에는 이기겠지만 박경석의 감성팔이에는 질 것이다”라는 것으로 나뉘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 12일 서울시청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시끄러운 정치 논쟁에 끼어드는 것이 사태 해결에 지혜로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떼쓰는 장애인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보수층의 전통적 반응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 인사는 박경석 고장샘 핸드폰으로 “혹시라도 실수하면 전장연에 대한 여론만 나빠지고, 그동안 이룬 성과마저 잃을 것이므로 코로나19 핑계 대고 토론하지 마라”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민주당 지지층 중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TV 토론씩이나 해야 할 사안이냐? 한심하다”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약한 존재로 보고, 주체 역량보다 상대방(이준석)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민주당 특유의 전통적 관점이다. 전장연에 친화적인 SNS의 반응 중 나는 “이준석이 어그로 끌려고 좀 빈정댔을 뿐인데, 아예 끝까지 가자는 박경석이 만든 선전장이다”라는 반응이 웃기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4월 13일 오후, 나는 집에서 혼자 TV로 「썰전라이브」를 숨죽이며 시청했다. 2002년 월드컵 생중계 이후로 이렇게 긴장하며 본 중계방송이 없다. 박경석 고장샘은 평소 즐겨 부르던 ZEN(젠)의 「공간이동」 중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 버린 내 모습!”으로 시작하는 랩을 구사하며 자기 몸에 들러붙은 TV 토론의 권위와 긴장을 떨쳐 냈다. 거리에서 즐겨 입던 옷 그대로, 평상시 헤어스타일 그대로, 평상시 말투 그대로 장애인의 권리가 그동안 얼마나 무시되어 왔는지, 시혜적인 태도 속에서 장애인 복지예산에 정부가 얼마나 인색했는지 조근 조근 설명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이어진 2부에서는 몸이 풀려서인지 노래도 부르고 ‘탈시설’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deinstitutionalization’를 구수하게 발음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마음껏 드러냈다.
활동가들이 사무실 한 곳에 모여 썰전을 함께 보고 있다.
박경석 고장샘이 「썰전라이브」에서 보여준 모습은 분명 흔히 보던 토론 패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치인, 교수, 전문가, 평론가, 전문 기자의 정돈된 외양과 언어에 비해 박경석 고장샘의 외양과 언어는 거칠고 투박하고 자유분방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설명’하고 ‘호소’하는 어투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토론 배틀에서 이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나온 게 아니라, 장애인들의 처지와 권리를 알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TV 토론에 임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준석 대표는 토론에 이기기 위해 나온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빈번히 상대방의 주장을 공격하기 좋은 형태로 과장해서 낙인찍었다.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은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고, 자신의 논리적 모순이 들켰을 때는 뱀처럼 미끄러져 도망쳤다. 상대방의 약한 모습은 비아냥으로 강조했고, 자신의 말실수는 농담이라며 희석했다.
이준석 당대표는 ‘말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진실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에 반해 박경석 고장샘은 투쟁의 진실을 전할 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2부 유튜브 생방송에서 감을 잡은 고장샘은 농부의 거친 손길로 토론을 휘저으며, 미꾸라지처럼 미끌거리는 이준석의 말머리를 움켜쥐고 장애인의 권리 예산 앞으로 끌고 왔다. TV 토론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줘서 나는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편이 골을 넣을 때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방송이 끝나고 나는 ‘에펨코리아’에서 들어가 반응을 살펴봤다. 때로는 적의 반응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저게 토론이냐? 내가 알던 토론이랑 다르네; 뭔 신세한탄 쇼를 하고 앉았냐;; 장인(장애인)이랍시고 이준석도 일방적으로 패지를 못하고... 답답하구먼”라는 글이었다. 이준석 지지자들이 알던 토론이랑 너무 달라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성공이다! 지체 높은 패널들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현란한 말솜씨와 기묘한 변증술을 뽐내는 토론 배틀과는 전혀 다른 TV 토론이었다. 거리에서 투쟁할 때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와 거리에서 투쟁할 때의 말투 그대로 자신의 권리를 올곧게 주장하는 박경석 고장샘의 모습이 소위 ‘정상적인’ TV 토론 패널의 이미지에 균열을 낸 것이다. 어차피 토론 내용에 감화 받아 ‘정상성과 장애’을 구별하는 습관이 깨지기를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오히려 그 내용을 전달하는 TV 토론의 ‘정상적’ 표현 형식에 균열을 냄으로써 차별의 현실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게 효과가 크다.
JTBC는 박경석을 패널로 섭외한 지 한 달이 넘도록 고장샘의 휠체어를 고려한 무대 세팅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턱이 있는 삼각형의 무대는 너무 좁아 위험했고, 테이블은 너무 높아 이준석 당대표의 의자를 낮추고서도 두 사람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도 없었다. 2부 토론에서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 정책이든 어떤 정책이든 저는 당사자성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종편 JTBC는 장애인이 패널로 나와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생방송 토론을 하는데, 장애인의 ‘당사자성’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핫한 인물의 핫한 토론 배틀이 가져다 줄 시청률과 유튜브 조회 수만 중요한 것 같았다. “당사자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준석의 짐짓 ‘객관적’인 태도가 얼마나 차별적인 결과를 낳는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편의시설, 수어통역, 문자통역 없는 그 무신경함이 만든 사회적 ‘장애’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12일 목요일 오후 3시에 열린 JTBC 2차 썰전라이브 홍보물
「썰전라이브」가 끝나자마자 트위터에는 전장연에게 지지와 후원금을 보내는 인증샷이 줄을 이었다. 그 중에는 도쿄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와 가수 핫펠트도 있었다. “ㅠㅠ” 하면서 감동하는 거 안 좋아하는데, 이날만은 정말 눈물 날 만큼 감동이 밀려왔다. “고장샘, 굿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