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지하철과 골목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에서 / 이종건
지하철과 골목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에서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지난 4월, 사회선교 단체인 옥바라지선교센터의 활동가 동료이자 이웃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 노들장애인 자립센터의 유진우 활동가가 삭발을 했습니다. 멋들어지게 길었던 머리카락의 뭉텅뭉텅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 진우씨는 당당히 그 자리에 임했습니다만 긴 머리를 자랑하던 그이의 모습들 생각나 속상했습니다. 모든 투쟁이 그렇지요.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을 거리에 내놓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습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거리의 지분을 사다가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의 주장을 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웁니다.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닌데 매번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진우씨가 삭발을 하던 날, 발언을 맡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톺아봅니다. 이동권 투쟁을 향한 동료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그간 진우씨에게 이야기 못했던 내심의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이동권 투쟁에 연대하는 한명의 시민으로 그 기억의 연장선에서 오늘 짧은 글로 인사드리려 합니다.
저는 도시권 운동을 하고 있는 사회선교 단체인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이면서 개신교 교회 전도사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현장에 연대하며 만난 동료 신앙인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간을 구하려니 얼마 되지 않는 재정으로 입주할만한 공간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분이 저렴한 가격에 흔쾌히 공간을 내어주시겠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제법 높은 곳에 있지만, 가는 길 전부 도로가 잘 닦여 있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진우씨를 초대해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사진으로 받은 공간 입구에 계단이 있었지만, 공사가 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들었기에 기대는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도로에서 공간까지 향하는 짧은 내리막이 오래된 계단이더군요.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동네의 누가 이용하기에도 불편한 낡고 위험한 계단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런 공간만일까요. 굳이 가난하고 후미진 골목의 계단을 탓하지 않더라도 도시 전체가 치밀한 불평등으로 짜여 있습니다. 진우씨와 함께 도시권 운동을 해온 지난 몇 년간, 제가 매일 같이 일하는 공간인 사무실에 그이를 초대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단골집에 뒤풀이 가자 속 시원히 얘기해본 적도 없습니다. 단체 행사를 준비하며 대관한 교회,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된 공간이어서 대관을 했더니 장애인 화장실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더군요. ‘어쩔 수 없다’ 라는 아득한 핑계, 그 좁고 납작한 핑계에 기대어 도시 전체가 불평등으로 가득합니다. 같은 공간을 두고도 공동의 경험을 공유할 수 없으니 자꾸 멀어져만 갑니다. ‘이동권’이 기본이 되는 이유는 공간의 단절이 곧 존재의 단절로 이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단절된 존재사이 공동의 경험이 부재한 공동체는 혐오와 배제를 원동력 삼아 자꾸만 존재를 지워나갑니다. 연대의 가치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며 공정이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무한 경쟁이 마치 인간의 본질인 것처럼 선동합니다.
갈등의 도시를 평등의 도시로 재구축 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모두에게 허용된 공간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저는 요새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현장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을지OB베어’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42년 전 이 골목에서 처음으로 맥주와 노가리를 팔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가게 을지OB베어가 골목의 한 가게를 인수해 프랜차이즈화 하여 10개 넘는 점포를 가진 만선호프에 의해 강제집행 당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강제집행에 반대하고 젠트리피케이션에 그러니 우리는 ‘을지OB베어도 지키지 못하면 서울시의 어떤 가게도 지킬 수 없다’ 그렇게 말하며 매일 문화제와 거리강연회, 예배 등을 열고 있습니다. 선택의 다양성이 사라져 만선호프를 가득채운 손님들에게 이 골목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우리에게 그 몫이 남겨 있노라 얘기 합니다. 평소 데시벨이 80db를 넘는 시끄러운 골목, 노래를 크게 틀어보고 구호를 외쳐본들 이게 들릴까 싶기도 합니다. 이 골목은 이제 우리에게 어느정도 ‘트라우마’입니다. 강제집행의 폭력과 지독한 소음 속 무관심, 독식과 폭력의 골목을 찾는 손님들 사이 우리 모습이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강제집행이 있던 4월 21일 새벽, 택시를 타고 급하게 가게 앞으로 가며 오래전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장애인 이동권을 외쳤던 한 활동가를 떠올렸습니다. 삭발에 나서는 나의 동료들과 따가운 시선과 혐오 발언 속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동지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내 용기를 내어 이 폭력의 골목을 향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상생을 이야기 합니다. 철거되고 쫓겨나는 가게들에서 지금껏 외쳐왔던 구호들입니다. 지하철과 골목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에서 우리는 더 평등한 도시를 바라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평등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서 이동권 투쟁은 쫓겨나는 모든 이들의 투쟁과 맞닿아 있습니다. 누구도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투쟁하는 일이 진우씨와 저에게 좋은 세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단골가게의 사라진 문턱을 넘어 진우씨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그릇의 음식을 대접하길 바랍니다. 노는 것 좋아하고 취향 비슷한 우리가 이웃과 함께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가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도시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우리 몫을 주장하며 살아낼 수 있기를!
그날, 삭발 투쟁에 발언으로 연대하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싸우는 철거민과 장애인이 승리하고 연대하는 우리가 쟁취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