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위한 신배공의 연대 / 김희주, 구도희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위한
신배공의 연대
김희주, 구도희
신촌홍대권역배리어프리공동행동
2022년 3월 31일, 신촌과 홍대 권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생 장애인권 단체 신촌/홍대 권역 배리어프리보장을위한공동행동(이하 신배공)'이 장애인 권리 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삭발 투쟁 결의식'에 피켓을 들고 나왔다. "수천억 혈세 낭비+ 안보공백 청와대? 국민의 삶 보장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하라!", "콜택시 예약에 이틀, 기약 없는 저상버스, 시외버스 탑승도 거부! 이동권 없으면 자유도 없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와 지하철 이용자들의 시선이 낯설어 두리번거렸지만, 우리의 메시지만큼은 더없이 선명하게 한 곳만을 응시한다.
우리가 전장연의 시위에 연대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약 20년 간 지속해온 이동권 투쟁이 이제야 가시화되었고, 그 당위성에 공감하며 연대하는 일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연대를 탐탁지 않아한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지하철 역사의 휠체어 리프트에 오르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쉬이 외면받는다. 장애인들이 죽음의 벼랑에 내몰릴 때 그 곁에 국가는 없었다. 정치권의 서울시 지하철 역사의 94%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장애인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주장은 겉보기에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6%의 수치가 상징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닌 폭력에 가깝다는 것을 국가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하고, 행동하며, 목소리를 합친다. 장애인의 권리 쟁취를 향한 위한 불온한 작당모의를 이어간다. 불평등함으로 점철된 기존 사회의 질서를 바꾸려 나서려니 아무런 논란 없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예산을 인간의 기본권보다 중요시하는 국가를 향한 타당한 분노이자 반가운 소란으로 읽혔으면 한다.
시위 이후 혜화역에서 진행된 연대 발언에서 우리는 시민들의 출근길을 ‘불편’하게 한 주체를 재정의 하고 싶었다. 우리의 손가락은 장애인이 아닌 정부와 기재부를 향해야 하며, 전장연이 이런 시위를 진행하게 된 이유는 시민에 대한 보복심리가 아닌,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하지 않은 기재부, 그리고 엘리베이터 설치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연이은 약속 불이행 등에 있다고 시민들에게도 호소했다. 짐이 많을 때, 다리를 다칠 때, 혹은 나이가 들 때 우리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될 것이며, 그 엘리베이터 역시 장애인 시위의 산물이라고.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사는 특권을 인지할 의무, 동료 시민인 장애인의 시위를 책임감 있게 받아들일 의무를 강조했다. OECD 평균 1/3을 웃도는 장애인 예산을 가지고 생색내는 기재부와 정부를 규탄했다. 마지막으로, 혐오를 땔감 삼아 파괴적인 정치를 자행하는 정치권에게 중단을 요청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비장애인의 이동권만큼이나 장애인의 이동권이 중요한 당연한 명제가 보편화되는 세상을 위해 신배공도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욕설을 하루 종일 들어도 연대 발언 하나 들으면 힘이 샘물처럼 솟는다’고 말해주셨을 때는 무척 감격스러웠다. 현장에서의 연대가 제공하는 연결의 감각은 정말 뜨거웠다. 비장애인 구성원이 대부분인 신배공이지만, 그럼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분법적인 구도와 이해관계에 갇히지 않는 사회를 바라며 연대했다. 이는 비당 사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무작정 부정적인 시선만을 보낼 것이라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당신도 하지 않았고, 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는 사람이자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쓴 바 있다. 공동체 감각이 쉬이 희석된 사회에서 비장애인들은 비장애 중심적 사회구조가 모두의 귀책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현재 여론을 살펴봐도, 장애인이 지금 겪는 차별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것이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전장연에게 “인수위로 가라”, “청와대에 가라”고 하는 백래시(backlash)는, 단순히 전장연이 20년 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몰라서만은 아니다. 알고 있다한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동료 시민으로서 방관한 책임을 느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태연함이 비장애인으로서 가진 권력의 표출 아니겠는가?
이런 사회 속에서 신배공은 장애인 이동권 개선 등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최근에는 장애 이동권 실태는 국회, 기획재정부, 서울교통공사 등 모두에게 있다는 내용의 규탄 성명문을 작성하고 연서명을 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신촌권역 배리어프리맵 제작, 학내 장애 의제 공론화 등을 위해서도 토론하고, 행동하며,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비장애 중심적 사회의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