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9 04:42
2022년 여름 131호 - 왜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인가? / 정창조
조회 수 101 추천 수 0 댓글 0
왜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인가?
2022년을 노동 패러다임 대전환의 원년으로!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노들장애학 궁리소 등에서 활동한다.
노들야학 교사로 다시 활동하고 싶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복직이 늦어져만 간다.
제1회 장애인노동절과 132주년 세계노동절 투쟁을 위한 현수막을 들고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로 노들장애인야학 깃발이 보인다.
132주년 세계 노동절인 2022년 5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제1회 장애인 노동절’ 행사를 열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420공투단 해단식을 마친 후 장애인운동 활동가들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관객 300여 명은 「인터네셔널가」가 울려 퍼지는 혜화로터리 일대를 행진하며, “올해 노동절을 장애인 노동절 원년으로 삼자!”라고 선언했다.
짧은 행진 루트에도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자본주의적 생산성 중심 노동 OUT’, ‘경쟁과 효율성 중심 노동 OUT’이 쓰인 피켓들 사이로,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합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 사이로 ‘체제 대전환’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붉은 기를 휘두르며 힘찬 몸짓을 선보인 야수 동지들, 예기치 못하게(?) 너무나 고퀄의 사운드를 전해준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래패 ‘영오’ 동지들이 도로 한가운데서 공연을 이어가자 환호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시간 관계상 앵콜 공연을 가로막은 사회자인 내게는 이내 정겨운 야유가 쏟아졌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속속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이라니, 어떤 분들에게는 꽤 낯설었을 것 같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전장연 노동권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도 행사의 명칭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132주년 노동절에 왜 하필? 유서 깊은 국제 노동자 연대·투쟁의 날인 ‘노동절’을 한국의 장애인운동계가 ‘장애인 노동절’이라 별도로 명명하여 기념하는 것이 혹시 다른 운동 진영에 대한 실례는 아닐까? 게다가 장애인운동계 역시 30여 년 넘게 이 날을 노동자들과 함께 꾸려오지 않았던가? 왜 굳이 민주노총과 별도로 노동절을 기념해야 하는 것일까? 심지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당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절 본 대회에서 발언이 잡혀 있었는데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이런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이란 이름은 우리의 목소리를 이 사회에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박했다. 노동을 할 수가 없으니, 노동을 하더라도 초저임금·고위험·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다 보니, 중증장애인들은 이 세계를 함께 생산하는 인격으로 좀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쓸모없는 사람들’, ‘기생적 존재’란 낙인 속에서 죽어도 그만인 존재로 머물 뿐이다. 어쩌면 지금은 정말로 낯선 광경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심화되는 불평등을 막아 세우기 위해서라도, 정말로 이대로 세상이 흘러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이 절박한 위기 상황임을 아무리 외쳐도 들으려 하지를 않는 이 사회에는 기존의 일상을 단절시키는 새로운 구호들이 필요하다.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은 올해가 그동안 노동 바깥으로 내몰린 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를 선언하는 원년, 그러므로 곧 누군가의 삶을 끊임없이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 체제를 멈춰 세우는 원년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혹자가 우려하듯, 이는 다른 운동들과 장애인운동을 경계짓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장애인을 노동 바깥으로 내몰았던 논리는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최저임금에서조차 배제하는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성’ 탓에 오늘도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당연한 것처럼 서로 간의 경쟁에 휘말려 들어간다. 기업들이 오직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겠다는 목표 하에서 경영되는 한, 그래서 장애인 의무고용률 준수 등 그들에게 부과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조차 회피하는 한, 이 세계는 점점 더 나빠져 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이윤의 창출을 중심으로 노동 세계가 유지되는 한, 신자유주의화 이후 강화된 불평등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고, 급속도로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함께 인류의 대멸종을 재촉할 것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마침 이러한 생산 패러다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우리도 노동자다’라고 외치는 것을 넘어, 이 사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가치를 중증장애인 당사자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한다. 그동안 이 사회가 가장 ‘일을 못한다’고 치부해 왔던 사람들이 말이다. 어쩌면 이윤과 경쟁 중심의 노동 세계를 끝장내는 데,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2년 5월 1일,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이 사회에 알려냈다.
지난 5월 1일에 있었던 '제1회 장애인노동절&132주년 세계노동절투쟁' 웹자보에 진행안내가 있다.
제1회 장애인 노동절 행사가 끝나고 얼마 후, 지방 모처에 ‘신자유주의와 장애인 노동권’을 주제로 강의를 하러 갔는데, 이 행사에 참여한 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 지역에 저상버스 설치를 요구하는 노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걸 노동으로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아요. 돈도 안 주려고 하잖아요. 요즘 코인이나 주식으로 돈 잘 버는 사람들 보면 마냥 부럽고.”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투기 목적으로 코인이나 주식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많이 생산할까요? 아니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더 많이 생산할까요?”
갑자기 그 자리에 함께 한 노동자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더 중요한 것을 생산하죠!”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이 상식이 되는 그 날, 우리는 2022년 제1회 장애인 노동절을 새롭게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