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노들아 안녕] 무엇이, 무엇이 닮았을까 / 박유리
노들아 안녕
무엇이, 무엇이
닮았을까
박유리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반말해.“
“볼 일이 있어서 동주민센터를 갔는데, 내 말은 안 듣고 같이 갔던 선생님한테만 물어봤어.”
“내가 시설에서 살았을 때, 선생님이 밥 안 먹는다고 화장실에 가뒀어.”
“가족들이 자꾸 날 때려서 신고했는데, 가족들 말만 듣고 돌아갔어. 난 신고했다고 더 맞았어.”
“가족들이 날 때리긴 하지만, 이 사람들마저 없으면 난 진짜 혼자잖아.”
“내가 살던 곳에서 겨우 도망쳤는데, 혼자서는 못산다고 자꾸 돌아가래.”
“일을 구하려는데, 보호자 동의를 받고 오래. 난 보호자가 없다고 하니까 일 못 한대.”
“투표하고 싶다고 하니까 내 결정은 미성숙해서 안 된대.”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다들 겪었던 혹은 가지고 사는 어려움이래. 잘 견뎌보래.”
노들야학에 오기 전 청소년들을 만날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에요. 노들야학에 온 지금도 여전히 곁에 머무는 이야기들이지만요. 노들야학에 온 뒤 사람들을 만나면서 청소년과 장애인의 삶이 참 닮았다는 걸 매일 확인하고 있어요.
고민하면서 찾게 된 닮은 꼴은 사회가 이들의 존재를 유예시킨다는 점이에요. 청소년은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장애인은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더 쉽게 대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비청소년과 비장애인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말이에요. 마치 나의 삶과 너의 삶이 명확하게 구분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 그 문제들을 겪어왔거나, 겪게 될 가능성이 다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이 가진 어려움을 남의 일처럼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내 삶도 버거워서 다른 삶에 기여하는 건 부담스럽고 힘들대요. 만약,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긴다면 달라질까요?
요즘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삶이 나의 삶으로 확장될 순간이니까요. 누리고 있던 것들을 포기하며 예기치 못한 존재와 함께 세상을 꾸리는 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는 더욱 다양해질 삶의 관계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들의 투쟁이 ‘누구나를 위한 사회’로 향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동등함을 거부하는 사회와 싸워요, 삶의 구성원으로 동등함을 가지기 위해 나 자신과 싸우고. 노들야학에서 싸우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