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 보낸 공문을 통해 약속했던 연내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신청자격 확대 추진 약속이 사실상 파기되면서 장애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전장연은 22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복지부와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장애인의 죽음으로 받아낸 활동지원제도 신청 대상 확대 약속을 한순간에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날선 비판을 보냈다.
장애등급 이유로 활동지원 못 받아 죽어간 故 송국현… ‘책임지고 하겠다’는 문형표 장관의 약속은 파기됐다
지난 4월 13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반 지하 연립주택에서 홀로 있던 故 송국현 씨(53)가 화재로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나흘만인 17일 끝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故 송 씨가 타인의 도움 없이 걷는 것이 어렵고 언어장애가 심해 구조 요청조차 할 수 없었지만, 장애등급이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제도를 신청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화재 당시 그는 현장을 스스로 빠져나올 수 도 도움을 요청할 수 도 없어 홀로 화마와 싸우다 사망에 이르게 된 것.
이에 전장연 등 장애계단체는 故 송 씨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26일 동안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문 장관의 집 앞에 찾아가 항의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공식사과와 활동지원제도 신청자격 폐지 등을 외쳤다.
그 결과 복지부는 전장연에 지난 4월 29일자로 공문을 보내 ‘장애인활동지원 제도의 단계적 확대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2015년부터 3등급으로 확대할 계획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금번의 불행한 사고를 계기로 나타난 장애계의 요구를 감안해 신청자격의 추가적 확대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금년 내에 시행하기 위해 관계부처 협의 등 후속조치를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지난 5월 문 장관은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와의 면담에서 ‘책임지고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제1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 ‘활동지원급여 신청자격의 장애등급제한을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이 유지된 내용이 공개되면서 복지부와 문 장관의 약속이 사실상 파기되고 말았다.
“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한 복지부의 약속, 반드시 지켜내라”
전장연은 공문과 약속이 휴지조각 처럼 폐기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 상임대표는 “면담 당시 문 장관은 공문 내용과 관련해 사과는 할 수 없다며 ‘유감’이라는 표현을 고수했다.”며 “‘활동지원 신청자격 확대시기를 연내로 앞당기겠다’는 문구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에는 ‘관계부처와 기획재정부의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공문 내용 변경 대신 ‘책임지고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당시 면담 내용을 전했다.
이어 “하지만 이달 초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의 회의에서 발표된 제1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 복지부와 문 장관의 약속과는 다르게 당초 계획이 그대로 발표돼 사실상 약속이 폐기됐다.”며 “이제 와서 복지부 담당 사무관은 노력은 했지만 기재부와 협조가 ‘도저히’ 안됐다는 답변만을 할 뿐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 복지부를 믿은 내 잘못.”이라고 개탄했다.
실제 지난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진행된 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복지부 내에서 실무 작업은 끝났고,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 중인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말해 기재부로 책임을 미루기도 했다. 더불어 “부처의 입장이 다른 부분이 있다 보니 결론이 나지 않고 늦어지는 부분이 있다. 복지부가 의도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애계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복지부가 예산과 타 부처와의 협의를 핑계로 대며 약속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장애계의 입장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최재민 활동가는 “복지부는 장애계의 투쟁에 아주 작은 약속을 했다. 내년부터로 예정돼 있던 활동지원 신청자격 확대시기를 올해로 앞당기겠다는 것이 그 것.”이라며 “하지만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혼자 있다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이미 시작됐어야 할 신청자격 폐지를 이제야 계획하고 있으면서, 그 마저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복지부는 여전히 예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며 “삶과 직결되는 활동지원을 받기 위해 마음조리며 기다리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모르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바로 이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람답게 자립해 지역사회에서 사회참여를 하는 삶이다. 언제까지 장애인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대상으로, ‘죽지 않으면 된다’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면 정책을 펼칠 것인가.”라며 “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한 복지부의 약속,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전장연은 기자회견에 이어 복지부가 지난 4월 보낸 공문을 불태우며 약속 파기를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