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140호 - [노들아 안녕] 영원히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문학 읽기 / 이서현
노들아 안녕
영원히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문학 읽기
이서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안녕하세요. 목요일 저녁에 문학반 수업을 하는 신입교사 서현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친구를 따라서 유리빌딩에 오가다 노들야학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노들야학 교실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계단에서 마주친 많은 학생분들이 먼저 인사해 주셔서 환영 받는 기분을 느꼈고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 후 노들야학을 더 잘 알고 싶은 신입교사를 신청하게 되었는데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큰 책임감이 따르는 일인 것을 알기 때문에 신청 전까지 여러 번의 고민이 있었고 스스로에게도 내가 최대한 오랫동안 성실하게 노들야학과 함께할 수 있을지 물었을 때, 확신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고민만 거듭하면 끝내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결국 신입교사에 지원하게 되었고 신입교사 과정을 마치고 벌써 수업을 시작한지도 5개월이 되었네요.
수업을 하면서 이전까지는 수업이라고 했을 때,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그런 수업을 야학에서는 할 수 있고,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게 저로서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전까지 개인 과외나 입시학원에서 제가 했던 수업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수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학생들을 아끼고 좋아해도, 애초에 돈으로 연결되고 성적을 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관계에서는 제약이 많았는데, 야학은 그렇지 않기에 자유로움과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해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책 읽고, 궁금했던 것을 배우고, 서로 알려주며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갑니다.
특히 문학반에서 소설을 함께 읽다 보면, 책 주인공의 이야기를 본인의 경험과 연결 지어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생들도, 저도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꺼내 놓게 되는데요. 신기하게도,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저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살았었다는 학생의 이야기 속에서 앞으로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읽히고, 좋았던 기억들과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는 지금 그분의 생활을 견디고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기도 하고요.
한강의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함께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이 시를 읽고 호연님께서 목요일 저녁에 문학반에서 함께하는 이 시간도 영원히 지나가는 순간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는 자각은, 특히 그 무엇인가가 좋을수록, 씁쓸함과 허무함만 불러온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오늘의 문학반 수업도 지나가겠지만, 수업을 통해 나눈 이야기와 그로 인해 가까워지고 변화하는 우리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확장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함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아직 야학에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많은 학생분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분들과 한껏 뒤섞여 야학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하고, 또 다음 주에도 다시 볼 거라는 약속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공간이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숨통이 트이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의지를 다 빼앗아 가는 겨울 추위에도 터벅터벅 야학에 나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