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장애인권교육 이야기] 장애인은 ‘훌륭한’ 장애인권강사가 될 수 없나요 / 허신행
장애인은 ‘훌륭한’ 장애인권강사가 될 수 없나요
허신행│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장애인권교육팀 강사
올해 5월 29일부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2)이 법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업주는 연 1회, 1시간 이상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 내 장애인식 개선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지요. 현재 각 회사에서 의무로 하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장애인 인식개선교육도 의무교육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고용공단)에서는 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서 올해 5월부터 급히 강사 양성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그간 우후죽순으로 장애인권교육강사를 양성한다는 내·외부적인 비판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용공단의 이런 움직임은 일견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금세 공론화 되었습니다. 지난 8월 23일 비마이너에서는 "중증장애인은 못 하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어 사실상 중증장애인을 배제하는 고용공단의 강사선정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비용을 지급하고 강사를 초빙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라며 "강사 기준이 아니라 피강의자(강의를 듣는 사람)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고용공단의 문제적 시각을 비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음성언어가 전혀 안 되는 중증장애인도 대기업 임직원들 앞에서 장애인권에 대해서 멋진 강의를 할 수 있을까요? 뇌병변장애가 심 해 발음이 거의 안 들리거나 지속적으로 몸이 떨리는 사람도 강의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무학 장애인 당사자의 강의는 어떠신지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바람 말고 실제로 어떻냐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농간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되겠습니다.
장애인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미리 규정지어놓고, 비장애인 중심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자격 없음으로 해석하는 그런 농간 말입니다. 오랜 기간 장애인 당사자분들의 인권교육을 옆에서 지켜본 저로서는 자신 있게 우리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의를 잘하는 사람일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많은 강사들처럼 화려하고 어려운 말을 쏟아내면 그분은 훌륭한 강사일까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그런 강의를 듣고 나면 머릿속에 하나도 남는 게 없지 않나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두어시간 지나면 내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노들야학은 많은 경우에 장애인 강사와 비장애인 강사가 짝을 맺어 교육에 나가는데 좋은 강의 평가는 압도적으로 장애인 강사에게 향합니다. 힘겹게 몇 마디 건네지만 그 말이 교육 받으시는 분들의 가슴속에 울림을 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말로 하는 강의도 중요하지만 만남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 짝꿍은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판이나 손으로 글씨를 써서 소통하시는데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두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그분들은 더이상 ‘장애인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은 안하시게 됩니다. 적어도 활동지원사와 동료 교사들을 보호자로 부르며 그 분들과만 소통하려 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60년대까지 만해도 미국에선 흑인들이 학교도 따로 다녔고, 버스 좌석도 따로 앉았으며, 화장실도 별도로 썼습니다.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맞습니다. 바로 2018년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현실이지요. 장애인은 통합학급이 아닌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고, 저상버스를 찾아다니거나 콜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화장실을 한 번 가려해도 장애인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차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것을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정면으로 저항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비싼 돈을 내고 강의를 듣는데 말도 잘하고 배운 사람이 해야 되지 않겠냐는 고용공단 모 직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에게 그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주장해야 합니다. 강의라는 것을 소위 배운 사람들이 독점하면 안 된다고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강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우리 야학 학생분들을 비롯한 노들의 구성원들이 관공서에서, 기업체에서, 학교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인권교육을 하는 분들은 인식개선 교육이라는 용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의 차별 문제를 비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고, 인권적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노들장애인권교육팀 분들에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