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115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 김유미
노들바람을 여는 창
김유미
청와대가 보이는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농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닳도록 외친 것 같은 이 구호를 붙잡고 친절한 정권의 얼굴 앞에 천막을 치고 있습니다. 3월 26일 차린 이 농성장은, 또 다시 전국의 단체들이 조를 짜고,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6월 어느날 농성장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문재인 대통령님 약속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말없이 서있는 것이 일인 탓에 동네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8시가 넘으니 동네 아이들이 책가방을 매고 재잘거리며 농성장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어른들은 횡단보도에서 안전 지도를 하고 있고, 종종 어른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9시가 가까워지자, 중년의 손을 잡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우리 천막 뒤에 있는 장애인복지관 안으로 쏙쏙 들어갔습니다. 시간대별로 지역사회가 움직이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복지관에 가는 장애인들, 잘 짜인 지역사회의 모습 같단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얼마 전 읽은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때문인지, 지금 저 복지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애인 가족은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장애아들을 위한 치료실 대기번호가 100번, 200번이 훌쩍 넘어가는 현실. 작업치료 한번 받으려고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 이 책은 전직 기자, 현직 장애아이 엄마로 자신을 소개하는 류승연 씨가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아주 크게 달라진 자신의 삶,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들려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농성장 바로 옆에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는 장애인부모들의 천막농성장이 있었습니다. 200명이 넘는 부모들이 삭발을 하고, 농성을 했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어딘가에 수용되지 않는 삶,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이번 <노들바람>에 실린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