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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115호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짐을 끄는 짐승: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함께 읽기’ 세미나 후기

 

 

허신행│ 노들야학의 과학 선생이다. 주업은 출판사 직원이지만,

활동지원사, 장애인권 강사 등 총 7가지의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꾸미기_허신행_동물해방.jpg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짐을 끄는 짐승: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함께 읽기’ 세미나 후기 대학교 1학년, 한참 학생운동에 꽂혀서 여기저기 다닐 때 친구들은 내게 불만이 많았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 “이 문제는 중요한 것이니 꼭 알아야 한다”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말하자면 진보 꼰대, 운동권 꼰대의 느낌이었을 거다. 이제는 내 마음도 약간 시들해지고 설렁설렁 살게 되면서, 그 전과 같은 긴장 관계는 더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그런 긴장 관계가 다시금 생겼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불편해”라고 했고, 한 친구는 “좋은 얘기도 좀 적당히 해라. 너무 나간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내 입은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움직거렸고 대화 말미에도 꼭 한 마디 덧붙이고야 말았다.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바로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주제로 한 세미나 때문이다. 사실 이 공부 모임에 함께하게 된 이유는 동물권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장애인권 교육을 하면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장애와 동물이 무슨 상관이기에 엮어 놓았나 하는 궁금함도 약간은 있었다. 그때는 가볍게 신청한 세미나 하나가 나에게 이 정도의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미나는 수나우라 테일러(Sunaura Taylor)라는 장애학자이자, 동물해방 운동가의 저서 『짐을 끄는 짐승: 동물해방과 장애해방』를 읽으면서 진행되었다.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현재 번역을 하고 계신 이마즈 유리 선생님과 고병권 선생님의 도움으로 초벌 번역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전반부에는 세미나 참여자들의 발제를 듣고 책 이야기를 했다. 쉬는 시간을 갖고 나서는 유튜브를 통해서 동물권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세미나를 통해서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인간중심주의가 어떻게 유사한 방식으로 타자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지를 확인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인간과 동물, 장애인과 동물 사이의 관계 맺음 등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고기’로 불리는 동물의 삶이었다. 나는 일생 동안 육식을 해왔다. 세미나 이전까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금도 없었다. ‘치느님’이라는 표현도 웃으며 해왔고, 체육대회 대신에 제육대회를 하는 연예인들의 이벤트에도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동물들의 삶과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무척 큰 충격을 받았고, 마음과 감각이 달라져감을 느꼈다. 평소에 앎은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역부족이라고 믿었던 나였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과 무지막지함은 이런 믿음을 가볍게 뛰어넘어버렸다. 닭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치킨의 바삭거리는 식감을 위해서 올해 4월 한 달 동안 8,000만 마리가 생명을 잃었다.

 

1) 축산물안전관리시스템 2018년 4월 도축통계. 2017년 도축된 닭은 9억 3천 6백만 마리였으며, 복날이 있는 7월이면 해마다 1억 마리 이상의 닭이 희생된다.


육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고기용 닭은 세상에 태어나 30일을 산다. 그들은 ‘고기’라는 운명이 아니었다면 10년의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달걀을 위해 길러지는 산란계의 일생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24시간 내내 꺼지지 않는 불빛 아래서 수면을 방해 당하면서 끊임없이 알을 낳아야 한다. 평상시라고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료들과 다닥다닥 붙어 마치 한 몸처럼 되어버린 철제 우리 안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야 한다. 사료 값에 비해서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소위 가성비가 없는 닭이라고 여겨져 살처분 된다. 그 기간이 대략 2년 정도다. 어찌 보면 2년을 살 수 있는 산란계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화한 병아리 중 수평아리는 바로 구분되어 기계에 갈려 비료가 된다. 기계에 갈리기 전에 마대에 담겨있는 동안 대부분 압사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라고 인식한다면 이렇게 다룰 수 없다. 한승태 작가의 이야기처럼 축산업은 1차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2)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시대의창, 2018


닭과 병아리들은 생명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물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 살기도 벅찬데 동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현실론이나 “동물의 고통이 문제면 식물은 고통을 못 느끼냐, 그럼 아무것도 안 먹고 평화롭게 굶어 죽는 것이 낫겠다”는 비아냥은 더 이상 듣지않았으면 좋겠다. 도축장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면 정말 모르겠는지, 어미와 강제로 떨어져 우는 아기 돼지들의 비명에서 진정 아무것도 느껴지지않는지, 배터리 케이지에서 나오고 싶어 발버둥 치는 닭의 모습에서 그들의 말을 진짜 ‘못’듣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우리가 시설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눈감아 왔듯이, 장애인의 이야기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흘려버렸듯이 또다시 외면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나의 일상과 관계되기 전에 미리 차단하고 원래 없었던 일처럼 편히 살고 싶은 마음 아닌가?


수나우라의 말대로 우리는 선택적으로 경청해왔다. 힘 있는 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힘없는 자의 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결과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럴싸한 식품을 대면하게 되었다.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이대로 가면 안 되지 않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노들은 최소한의 작은 노력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 없는 식단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급식을 먹는 사람들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왔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 채식은 계급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 해결할 것이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안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미약한 보탬이라도 되려는 긍정의 움직임이 너무 고맙다. 장애운동도 모두가 안 될 거라 이야기했지만 하나하나 이루어왔듯이, 동물해방 운동도 언젠가는 많은 것을 바꾸어내고 2018년의 대한민국 상황을 말도 안 되는 야만의 시절로 기억하는 때가 왔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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