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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운명의 따귀를 올려붙일 것인가

- 장애인 투사 이브라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

 

 

 

고병권 │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지난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즈음해서 몇몇 국제 행사들이 열렸다. 1월말 서울과 평창에서 열린 ‘국제인문포럼’도 그 중 하나였다. 공식 명칭은 좀 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계기 국제 인문포럼’. 내가 포럼에 참석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포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기서 발표된 글 한 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포럼에 참여했던 지인이 건네준 자료집에 실려 있던 것인데, 팔레스타인 작가 칼레드 흐룹(Khaled Hroub)의 글이다. 제목은 「이브라힘의 가자지구: 당당히 일어서서, 전쟁과 절망과 가난의 얼굴을 힘껏 때리다」였다.


흐룹은 팔레스타인의 장애인 투사 이브라힘 아부 투라야(Ibrahim Abu Thuraya)의 삶을 소개하면서, 그것을 팔레스타인인들 전체의 삶과 겹쳐놓았다. 장애인 이브라힘의 상처와 투내게 이 글은 반대 방향으로도 읽혔다. 즉 팔레스타인인들의 필사적 투쟁이 이브라힘을 통해 장애인들 일반의 투쟁으로 읽힌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이브라힘은 중도 장애인이다.

 

2008년 12월 이스라엘군이 쏜 로켓 미사일에 두 다리를 잃었다. 스물한 살 때였다. 그가 두 다리를 잃던 날 가자지구에서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브라힘 한 사람의 예외적인 비극이 팔레스타인이라는 예외적 민족에게는 일상적 비극이었던 것이다. 비극은 2008년의 그 날에만 일어난 게 아니다. 2009년에도, 2012년에도, 2014년에도 비극은 계속 되었다.

 

2014년 한 해만 해도, 500여 명의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서 2,2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었고, 천여 명의신체 장애인들이 새로 생겨났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신적 손상은 따로 잴 수도 없었다. 비극의 시간은 2008년 뒤로만 긴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길다. 1920년대, 이 땅에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때부터 갈등이 생겼다. 당시 이곳을 식민통치하던 영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면서도 시온주의자들의 건국 움직임도 인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시온주의자들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의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즉시 정착촌을 만들어갔다.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지만 영국은 유대인들의 배타적 거주지 건설을 묵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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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물러가자 아랍의 군대와 유대인들의 군대가 충돌했다. 유대인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곧바로 1948년 5월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다. 그리고는 유대인들의 거주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일종의 인종청소였다. 이후로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주거지에서 밀려나 난민으로 떠돌았다. 그러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쟁이 일어났다. 1967년 발발한 제3차 중동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원래 이곳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군은 돌아가지 않았다.

 

황당하게도 이스라엘 정부는 점령지들에 유대인 정착촌을 지어나갔다. 땅을 차지한 뒤 정착촌을 만들고, 이것을 영토로 편입하는, 초기 건국 과정에 있었던 일을 계속 반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제외하고는 이제 팔레스타인의 거의 모든 땅이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들어갔다. 이브라힘이 사는 가자지구도 이스라엘 점령지이고 언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될지 모른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이스라엘군이 언제든 들이닥친다. 마치 포로수용소 같다. 군대가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수용자들이 자치 질서에 따라 임시적으로 사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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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브라힘이 사는 가자지구의 하늘과 땅, 바다는 모두 봉쇄되어 있다. 그래서 여기 어부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정해놓은 수마일의 좁은 벨트 안에서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바다의 부표는 육지의 철책과 같다. 누구도 그 선을 넘을 수 없다. 평생을 착한 일만 하고 살아온 어부라고 할지라도, 그가 팔레스타인인 한에서는 이 감옥에서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흐룹의 말처럼 가자지구는 “지구상의 가장 큰 야외 수용소”다.

 

이브라힘은 여기서 살아왔고 또 싸워왔다. 2008년 12월 다리를 잃었을 때 그의 철조망은 더 좁아졌다. 장애인인 그로서는 바다는커녕 난민촌도, 아니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수개월을 그렇게 집구석에 처박혀 상처 입은 짐승으로 울부짖었다고 한다. 하지만 흐룹의 가슴을 울리는 문장에 따르면, 그는 결국 “당당히 일어서서, 운명의 뺨을 때리고 고립으로부터 걸어 나갔다”.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늙은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맏이였다. 가난했던 그는 철이 들면서 야채 장사를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부가 되었다. 어부였던 만큼 그는 바다에 둘러진 부표와 대면했고, 팔레스타인인이었던 만큼 그는 이스라엘군과 대면해야 했다. 그는 일했고, 그는 저항했다. 다시 “운명의 뺨을 때리며” 휠체어를 밀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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