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114호 - 마주보지 않아도, 손 잡지 않아도, 결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 장선정
마주보지 않아도, 손 잡지 않아도, 결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장선정 │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 이 글은 개인의 의견입니다. 누구와도 상의하거나 허락받지 않았으며 모두 맞다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다 이렇다 할 결론마저 없을 수 있어요. 워낙은, 노란들판의 복리후생제도에 대한 글이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받았습니다만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생일날 휴가를 준다던가 일상적으로 탄력근무제를 한다던가, 쉬는 것에 후한 편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실제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적어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최근에 저는 구성원들의 고민의 본질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노란들판은 팀장과 팀원의 두 가지 직급만 존재하고 다른 위계제도가 없어요. 창립멤버를 포함해 대부분 경력이 높은 직원들이 팀장을 맡아서 업무별로 인원을 나눠 운용하고 있고, 회의와 휴가 등도 팀별로 상의해서 치우침이 없도록 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현수막으로 시작해서 인쇄물과 디자인과 출판, 그리고 업싸이클링 제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에 경력직 디자이너들의 채용이 필요했고 자체적으로 성장한 디자이너를 포함해 총 21명의 근로자중 8명이 디자이너고 2-3명의 인원이 다른 업무와 디자인을 병행하고 있으니 전체 인원의 절반가량이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출력과 마감을 하는 직원이 3명, 상담접수와 업무진행, 회계와 인사노무, 대외업무를 맡은 직원이 나머지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사단법인 노들’의 다른 단위들에서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을 대할 때 남인 듯 남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가 이웃인 건지 형제인 건지 혼란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아마 그것은 쌍방 간에 사실일 것이에요. 어찌되었든 성북구에 있는 ‘노란들판’은 지난 2-3년간 15억 이상의 연매출을 내고 있는 일반 중소기업의 형태로 꾸준히 업무량을 늘려가고 있고,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추가채용의 기로에서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어요.
한 가지 양해를 구해도 된다면 이 글은 장애인의 노동권도, ‘활동가로 살기로 결의한 자’에 대해서도 통과하겠어요. 다만, 총 21명의 근로자 중 현재 8명이 장애인근로자라는 것만 말씀 드릴게요. 주식회사처럼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익의 대부분을 사장님이 가져가시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우리 사장님은 월급도 안 받아요) 기본적으로 한 가지 일에도 투여되는 인력의 수가 많고 지켜야 할 공정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노란들판의 급여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아요.
또 직급제도라고 해봐야 모든 사안을 전체회의로 결정하기가 불가능해 팀장 정도가 있는 것이라서 사실상 승진이 없다고 봐야 하죠. 게다가 분명 회사로 알고 들어왔는데 업무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꽤나 많고 그나마 고유 업무도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책임져야 할 영역이 하염없이 넓고도 깊은 것이에요.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어요. 노들의 공동체로 출발했지만 기업의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인력운용의 형태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그 개별의 하나하나는 마땅하고 당연하게 본인의 생계와 인생에 대한 진지함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죠.
‘노란들판’의 어느 분들은 가뜩이나 하루하루 일도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중에 이 곳은 기업인가 기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곳은 공동체인 건가? 나는 그렇게까지 밀접한 조직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시 그렇다면 이 곳의 미래가 곧 나의 미래에 부합한다고 말 할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해 대놓고 표현할 수도 없는 쓸쓸한 퇴근을 하는 날들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짐작하고 있어요.
많은 부모들이 결국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고민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죠? 결국 소용없을 거예요. 저는 다만, 우리 모두가 여기에 같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아름답게) 마주보지 않아도 된다. 꼭 (따뜻하게) 손잡지 않아도 좋다. (결연하게) 결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맨 앞에 분명히 적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의 의견이에요.)
저는 노란들판에 계신 분들이 본인의 인생의 어느 날과 어느 순간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지내면서 대체로 본인의 선택으로 존재하고 움직였다고 여길 수 있기를 바래요. 궁금하면 물어보고 힘이 들면 땡땡이를 칠 수도 있지만 어떤 당위가 불편함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풍경처럼 공기처럼 딱히 무슨 맛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없으면 어색한 밥 한 공기처럼 편안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의 사랑이 너에게 사랑이 아니어도 나는 괜찮다고,
나는 사랑했으니까.
좋은 봄날 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