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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봄을 불러봅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이종란 │ 저는 현재 반올림에서 상임 활동을 하면서 주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들 상담하고 산재신청을 조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식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느리게 일하기가 좋습니다. 빨리하는 거 힘이 들어서요^^ 노들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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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유미의 11주기.

 

“유미와 함께 맞는 봄, 희망을 피우다”

 

올해는 유미 씨의 어머님이 하늘나라의 딸 유미에게 편지를 못 쓰시겠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유미 씨의 추모기일에 어머님이 서울 삼성본관 앞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하셔서 손수 쓰신 편지를 낭독해주시곤 했는데, 올해는 더욱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요. 스물셋 된 딸 황유미가 떠난 지 11년이 흘렀건만, 어머님은 딸의 죽음으로 생긴 병 우울증이 나을 기미가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버린 딸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삼성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유미가 나고 자란 땅인 속초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반도체를 만드는 클린룸에서 미지의 유독가스가 아니라, 그전처럼 푸른 동해바다를 보고 설악산 맑은 공기를 마셨더라면 유미가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끝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픈 어머님은 못 오셨지만, 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님은 누구보다 앞장서 딸 11주기를 챙깁니다. “내 딸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밝혀 달라”고 한 11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아니 그때보다 더욱 힘 있는 모습으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은 산재 살인이다. 삼성은 수백 명의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외치며 투쟁에 앞장섭니다. 유미 씨 영정을 든 황상기 아버님을 필두로 우리 80여명은 3월 6일 유미 씨 기일에, 추모행진을 했습니다. 이재용 집 근처인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강남의 삼성본관까지 4시간에 걸친 추모행진이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반도체 클린룸에서 일할 때 입었던 하얀 방진복을 입고 백혈병, 뇌종양 등으로 죽어간 80명의 사망노동자의 영정을 들고 이러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여전히 삼성은 공장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영업비밀이라고 감추며 노동자의 생명을 함부로 하고 있음을, 삼성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날씨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따사로운데, 우리들의 행진은 봄의 색깔이 아니라 하얗고 검은색이었습니다.

 

마치 노동자들이 화창한 봄에도 24시간 돌아가는 클린룸에서 첨단 설비와 미지의 약품에 둘러싸여 하얀 방진복을 입고 눈만 내어놓고 일하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요.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추모 현수막에 “유미와 함께 맞는 봄, 희망을 피우다”라고 만들어 봤습니다. 더이상 죽음이 아닌 희망을, 그리고 이 봄과 같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에도 봄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삼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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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올림 노숙농성 893일째.

 

계속되는 삼성의 무책임을 규탄한다

 

얼마 전 이재용이 풀려났습니다. 박근혜, 이재용을 구속시킨 촛불항쟁이 정형식 판사에게 하루아침에 배반 당했습니다.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는 1심 판결을 뒤엎고, 정경유착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하는 항소심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80년간이나 이어진 부패한 삼성재벌의 정경유착 흑역사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데, 그래서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이재용을 구속시켰던 것인데 이를 정형식 판사가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또한 직업병 피해자들의 울분이 들리는 것 같아 분노를 참기 힘들었습니다. 이재용에게 준 면죄부는 뇌물죄뿐 아니라 산재살인에 대한 면죄부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해온 피해자들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2005년 10월 7일 시작한 농성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숙농성 893일째. 그사이 3번의 겨울을 삼성본관 앞에서 맞았습니다. 농성 초반에 연대하러 오신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농성에 임하고 있습니다만, 삼성의 무책임의 시간만큼 분노가 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반올림 농성은 단지 그 상대가 삼성이라고 하는 것 빼고는 농성을 통해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LCD 직업병 피해문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보상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삼성에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게 만든 진짜 장본인인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리 부실로 인해 병들고 죽어간 이 문제에 응당 책임져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농성과정에서 2016년 1월 재발방지대책(예방대책)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긴 했지만 아직 사과 문제와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제3의 기구인 조정위원회를 통한 대화도 중단된 상태로 900일이 되어갑니다. 농성기간에도 피해자들이 죽어갔습니다. 화학물질 공급업무를 했던 황 모님이 악성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고, 서른한 살 기철 씨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고, 지난 추석에는 이혜정 님이 전신성경화증을 앓다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삼성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만 해왔으니 반올림의 농성이 이어질 수밖에요.

 

삼성의 무책임을 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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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희망의 봄을 불러봅니다.

 

돌이켜보면 삼성만 빼고 진전을 이룬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삼성왕국의 통제된 언론시장 속에서 처음에 우리가 가진 언론수단이라고는 거의 입소문 수준밖에 없었으나 지금 삼성 백혈병 문제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온 이들에 의해 여론이라는 것이 생긴 것입니다. 삼성이 직업병 문제를 외면하고 있음도 농성을 하는 3년의 과정을 통해 제법 알려졌습니다. 삼성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진전은, 법원의 거듭된 산재인정 판결들입니다. 특히 2017년 8월 대법원은 첨단전자산업 희귀질환에 대해 산재인정의 증거를 노동자 측에 요구하는 정도를 대폭 완화하고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히 사업주의 조사거부나 행정청의 조사부실에 대한 것을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에 있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영향으로 산재인정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 번째 진전은, 법원이 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유해 화학물질 정보가 담긴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영업비밀보다 노동자의 지역주민의 알권리와 생명권이 우선되어야 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삼성의 제왕적 군림에 약간의 제동이 걸리는 것이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산재 입증을 위해 싸워야 했던 피해노동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삼성만 바뀌면 됩니다. 삼성은 반올림의 농성에 응답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 보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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