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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고! 의미 있는! 자조모임을 찾아서...
- 발달장애인자조모임 -

 


임당 │ 노들야학 교사, 고민이 늘 치열할 수만은 없어서 약간의 방전된 시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진정한 자조모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첫 번째 자조모임을 운영한 2017년 봄학기를 끝내고 작성한 평가서에서 나는 위와 같이 썼다. “진정한”에 강조 표시를 해야 할 것 같다. 의미 있는 자조모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표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중요한 활동, 의미 있는 자조모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과 모여 보니 저 목표는 당최 적합하지 않은 목표였다. 만들고자 했던 ‘당사자-조력자’ 관계보다는 익숙한 ‘교사-학생’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로간의 소통보다 나를 통한 소통이 우선시 되었다. 모든 말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학생들에게로 흘러갔고, 학생들의 말은 나를 거쳐서만 다른 학생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게다가 학생들은 이 모임 자체를 편안하게 느끼지 않았다. 수업의 하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수업이라는 형식과 학생-교사라는 위계를 없애고, 당사자들이 자조 모임을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서로 간에 끈끈하게 엮인 유대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렇게 답답하던 차에, 발달장애인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이하 ‘피플센터’)’의 활동에서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피플센터는 우선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했다. 첫 회의 때 반년 간 활동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모임 계획에서는 투쟁 장소를 연대 방문하는 계획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모여서 친목을 우선 쌓는 나들이 개념의 활동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발달장애인 조력자교육에서 들었던 강사분의 코멘트도 생각이 났다. 초반의 자조모임이 너무 의미 있는 활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고, 당사자 간의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나는 ‘놀면 안 된다’는 초반의 생각을 고쳐먹고, 당사자들이 조금씩 돈을 내더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방식의 활동들을 회의 주제 삼아 이야기 해 보기 시작했다. 2017년 가을학기의 일이었다. 학기 초반에는 이런저런 것들을 계획만 하고 막상 활동 실행은 미루게 되었다. 그 실행의 무게가 오롯이 나에게만 쏠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막상 활동을 시작해 보니, 나도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몇몇 활동들은 나에게 “일 부담”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그 부담이라는 것도 돌이켜보면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한 시간 내에 목표한 활동을 정확하게 시작해 정확하게 마쳐야 한다는 나의 강박에서 비롯되었다는 스스로의 평가가 남았다.

 

그 과정에서 정말 좋았던 경험이 있었다. 당사자들과 다 같이 광장시장에 부침개와 막걸리를 먹으러 간 날이었다. 부침개와 막걸리를 흡입하고 광장시장 구경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또 고민을 시작했다. 낯선 종로 5가에서 집에 혼자 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책임을 지고, 혼자 가실 수 없는 분들과 동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를 대비해 미리 다음 일정을 미뤄 놓기까지 해 두었다. 나는 이제 슬슬 집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는 종로 5가이고, 1호선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공지를 했다.

 

그런데 당사자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와 함께 집을 가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를 흔쾌히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고, 누가 누구와 같이 가면 집까지 가는 5호선으로 잘 갈아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원래의 다음 일정에 맞는 방향으로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진행되자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 2명을 바래다주기로 한 사람이 뒤에 남은 우리에게 너무 열렬히 작별 인사를 하던 나머지, 바래다줘야 하는 두 사람만을 태운 채 지하철 문이 닫혀 버린 것이다. 순간 아찔했다. 먼저 탄 2명에게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급히 전화한 후 황급히 뒤 따라 가서 결국 일행은 다시 뭉칠 수 있었다. 즐거운 해프닝이었고, 결국 집에 모두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재미있었고 좋았던 건, 당사자들이 서로 간에 도울 수 있는, 함께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 내 움직였다는 점이었다. 비록 한 번의 작은 사건이었고, 그 뒤로 서로 반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무관심한 태도도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이 한 번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사자들 안에서 자조모임의 의미가 싹트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싹들이 조금씩 더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조금 더 느슨하고 느리게 모임을 지속하면서 또 어떤 순간들이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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