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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하지 않은' 여행을 담은 대단한 이야기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

 

 

이현아 │ 노들인이 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노들과 함께하니 시간이 더욱 세차게 가는 느낌이에요...

 


  장애인에게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당사자조차 '그림의 떡' 혹은 '배부른 소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꿈을 꾸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박윤영/채준우 저, 뜨인돌)의 두 저자는 '감히' 그 꿈을 꾸라고 우리의 등을 떠민다. 저자 중 한 명인 윤영과 나는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십대에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관심분야도, 자라온 환경도 많이 달랐지만, 내 친동생마저 “누나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며 깜짝 놀랄 만큼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삶은 닮은 점이 많았다. 즐거울 것도, 고민할 것도 많았던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경험들을 가감 없이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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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순천이라는 지리적으로 먼 거리만큼 당시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은 머나먼 이야기였지만, 매일 밤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라인 채팅을 하곤 했다. ‘버디버디’에서 ‘카카오톡’으로 수단이 바뀌고, 마음만 먹으면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주제가 어두운 것(?)이 되었을 뿐 우리의 시시콜콜한 수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에, 윤영과 애인 준우가 쓴 책을 냉철한 제 3자의 입장에서 읽어 내려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유럽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유럽 5개국 10개 도시에 직접 다녀온 것 마냥 설레고, 화나고, 피곤하고, 그리웠다. “...나에게 전동 휠체어는 첫 외출, 첫 여행은 물론이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자립할 수 있게 했으며, 해외 연수의 꿈을 실현해 주었다. 이동 수단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존엄의 상징이었으며, 내게 자신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였지만 배낭여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만약 여행 중 100kg이 넘는전동 휠체어가 멈춰버린다면? 아찔하다. 그대로 여행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동 휠체어는 편리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조용한 시한폭탄과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자유롭게 해 주지만 동시에 그 속을 가장 알 수 없는, 소통이 가장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전동휠체어란 녀석 외에도, 불의의 사건과 사고, 여행 비용,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 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지난 학기에 야학 수업을 하면서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나라 이름을 언급하며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여행을 꿈꾸는 학생들은 소수였으며, 여행을 가기 싫다거나 어떻게 가느냐고 반문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이유들에 반론을 제기하며 “그래도 해외여행은 도전해볼 만한 것”이라고 설득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운이 좋아 미국에 몇 년 사는 동안 미국의 도시들, 근처의 여러 나라를 여행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만, 막상 가본 곳이라고는 손에 꼽았다. 그마저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계획했던 것이 아닌, 친구나 가족의 손에 이끌려 마지 못해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무게가 꽤 무거웠던 것 같다. 책은 좋은 사람과의 여행은 두려움이 아무리 클지언정 극복할 용기를 가질 만한 일임을 충분히, 친절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국에선 눈치가 보여서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곳에선 길거리에 앉아 밥을 먹거나 책을 읽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떠는 모습들이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지 않고 보낸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윤영은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탈 때도, 길을 갈 때도 자기를 보면 이런 ‘것’이 왜 여기에 있냐며 불편해하는 것만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 런던의 한 골목에서 ‘길을 막고 있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여겨진것에 감동하고 있는 것 같다.” 시선에서 자유로운 경험은 정말 짜릿하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이상하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 느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분위기,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사회. 외국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투쟁의 역사를 통해 그러한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일 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가 아닌 곳으로 가야만 그러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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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 방법은 나의 감정을 숨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옳지 않았다.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모든 순간을 함께 경험하며 감정을 나누기에, 말하지 않는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부정적인 감정은 외면하려던 노력을 집어치우고, 계단에 대고 함께 욕을 쏟아낼 수 있게 되자 우리의 파리 여행은 비로소 솔직하고 즐거워졌다.” “저들이 어떤 말을 지껄여도 상관없었다. 내일은 복도에 타고 가는 한이 있어도 나를 기차에 태우게 할 작정이었다.” “나는 물리적인 환경에 따라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삶을 산다. 그런 한계 앞에서 포기하는 것쯤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나처럼 똑같이 포기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해외여행은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다. 나는 그에게 손톱만큼의 후회라도 남길까 조마조마한데,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행 내내 모처럼 나서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들의 45일간의 유럽 여행이 자유롭고 설레고 행복했던 시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례한 직원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고, 낙후한 시설 때문에 불편하고 답답하기도 했으며, 사소한 듯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로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저자들은 여정의 순간순간마다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상황을 바라보았는지, 무엇을 원했는 지 솔직하고 꾸밈없이 담아냄으로써, 글을 읽는 사람을 낯선 여행지에 초대함과 동시에 그들의 마음 속 은밀한 대화에도 초대한다. “이해를 구해야 하고, 수많은 설명을 거듭해야 했으며, 순전히 직원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정이 좌지우지됐다. 불안하다.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피곤한 여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주 부딪쳐야 하는 멈출 수 없는 길이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거나 호흡기를 차고 있거나,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생경한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까지 우린 떠나야 한다.”

 

변수가 많아 불안하고 피곤한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더 자주 부딪쳐야만 하므로, 책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수월하게 부딪칠 수 있도록 대중교통, 편의시설, 화장실 등의 접근성 정보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윤영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여행방법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기에, 그들의 여행 방법이 담긴 이 책이 만능백과사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점에 넘쳐나는 여행 관련 서적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감히’ 떠날 용기를 내는 어떤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책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대단하지 않은’ 여행을 한 한 커플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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