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115호 - 여기모여 - 우리들의 미투 / 최은화
여기모여 - 우리들의 미투
최은화 │ 노란들판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멍하니 있는 것. 오랜 시간 걷는 것. 오랜 시간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사람입니다.
얼마 전 한 여성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 폭로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유력 정치인의 비서 성폭행 사건(이 역시 피해 여성의 용기 있는 고발에 의해 밝혀진 사건)과 함께 검찰, 정치계, 연예계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수많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들이 알려졌습니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가해자들이 폭로되었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운동으로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여성들의 연대의 물결 또한 거세게 일었습니다. 노란들판 ‘여기모여(노란들판 내 여직원들의 모임)’상반기 모임에서는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최근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우리들 각자의 미투(Me Too)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성’으로서 우리들이 겪었던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이야기해보며 우리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가까운 곳부터 어떻게 변화시킬수 있을지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금요일 밤, 업무시간이 끝난 후 노란들판 여직원들은 회의실에 빙 둘러 앉아 함께 저녁을 먹고, 한창 올라오고 있는 미투 관련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우리 주변에서 느꼈던 (혹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스컴에서 보았던 불편한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내 주변에서 겪었던 이야기가 되었고, 또 자연스레 내가 겪었던 불편했던 이야기들이 되었습니다. 막상 어떤 이야기를 꺼내 놓아야 할지 머뭇거렸던 순간도 잠시 서로에게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른 지도 모른 채 두 시간이 훌쩍 흘렀고,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에 쏟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들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은 끝나지 않은 질문들과 답을 내리지 못한 해결책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별로 나는 할 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놀라웠다는 사람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위안을 받아서 좋았지만 한편으로 겪지 않으면 좋았을 일들을 조금씩 경험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는 사람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되었다는 사람도, 노란들판 내에서 성평등 문화를 위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저마다 더 나누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과 긴 여운을 남긴 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날 우리들의 미투가 누군가에겐 지극히 별 것 아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은 ‘어떤 구조’에서 ‘약자’인 ‘여성’이 겪는 불편함과 부당함 앞에서 순응하고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예민함으로 나를 지키고, 용기있게저항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 남성이지만 남성이 아닌 사람,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닌 사람, 가난한 사람, 노인, 어린 아이, 권력 아래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음을 알고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임을. 이것은 결코 별 것 아닌 문제가 아닌 것임을. 프로듀서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실을 밝힌 미국의 가수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노래 Till It Happens To You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레이디가가 - Till It Happens To You
You tell me "it gets better, it gets better, in time"
당신은 저에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죠.
You say "I'll pull myself together, pull it together, You'll be fine."
당신은 "넌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고통에서 멀어지라고 말하죠.
"Tell me what the hell do you know,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당신이 뭘 하나요?
How could you know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겠냐구요
Till it happens to you, you won't know.
당신기 겪기 전까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how it feels
그 고통이 어떤지
how it feels
그 고통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Cause until you walk where I walk,
제가 걸은 곳을 당신이 걷기 전까지
It's just no joke.
그 고통을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Till it happens to you, you won't know how I feel
당신이 겪기 전까지, 당신은 제가 느끼는 고통을 모를 거예요.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더 이상 가해지지 않기를, 지금의 이 물결이 그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기를, 가해자가 가해자로서 처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폭력과 억압으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짓밟을 수 없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우리 모두는 바라고 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