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노들 책꽂이] 통증의 오감도 : 『통증일기』 서평 / 서한영교
[노들 책꽂이]
통증의 오감도
:『통증일기』 서평
- 북토크 여는 말에 다하지 못한 말에 덧붙여
서한영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작가

『통증일기』 (박정숙, 끌레마)
안녕하세요. 느닷없는 비에 양말 젖기 좋은 날씨에도 자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30년간 자신만의 시를 지켜오며, 통증의 현장에서 생동하는 시적 언어를 돌보며 가꾸어 오신 박정숙 시인의 시집 『통증일기』(끌레마, 2025)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자리입니다.
박정숙 시인은 노들야학 학생이자, 노란들판 활동가, 종이공예 달인, 2022년 탈시설장애인당 총선후보, 토요일 출근자, 봉제 노동자, 뜨개질 대표선수, 김밥 전도사, 가출소녀 등등 무수한 이름이 있지만, 오늘은 무엇보다 박정숙 시인, 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는데요. 한편 박정숙 시인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시기도 하고,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기도 하시는데요. 이 책의 들머리에는 이런 시가 있기도 합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다만
가슴에 불이 있을 뿐
시를 공부한 적도 없고
시 쓰는 형식도 모른다
삶이 너무 뜨거워
담고 있지 못해 토해냈을 뿐
나는 시인이 아니다
다만
가슴에 강이 흐를 뿐
맞춤법도 다 틀리고
말도 어눌하다
흐르는 물이 어지러워
주저앉아 눈물 흘릴 뿐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 전문
시인이 아니라고, 하는 시인에게 어떤 이름으로 소개해야 하나, 난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책의 추천사에 있는 한광주 연구자님의 추천글에 “‘정숙 언니’는 통째로 고유명사다”로 소개해주셨는데, 저도 이 말이 딱, 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유명사로서 ‘시인 박정숙’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통째로 고유명사”인 ‘시인 박정숙’을 모시기 전에, 『통증일기』라는 시집을 읽은 제 감상과 작품들을 낭독할까, 합니다.
시집 『통증일기』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박정숙 시인
1. 통증
“통증일기라는 큰 제목을 갖고 매일 시를 써요.”
-박정숙, 비마이너 인터뷰 중에서
시집의 제목은 『통증일기』 이지만 들춰보면, 실제로 ‘통증’이라는 낱말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산문시인 「통증일기」를 빼고 나면 한 두 번 정도 밖에 없지요. 하지만, 통증의 혈액이 몸의 언어로 시집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한 번 들춰보면, 통곡하는 몸, 폐허가 된 몸, 전율하는 몸, 움직이지 않는 몸, 핏대선 몸, 물어뜯는 손톱, 쓰라린 손끝, 얼어붙은 손끝, 미싱에 박힌 손가락, 울퉁불퉁한 손톱, 부어오른 손, 시린 손, 싹싹 비는 손, 가시랭이 가실 날 없는 손, 부어오른 다리, 힘없는 다리, 다친 다리, 굳은살 박힌 발바닥, 밟힌 발등, 구르는 발, 들이미는 발, 찍힌 발, 부은 발...또, 눈, 귀, 코, 젖, 자궁... 까지. 통증의 오감도라고 할까요? 통증의 지형도라고 할까요? 시인 박정숙의 시, 가 출발하는 곳, 개시되는 곳이 어디인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가슴이라는 현장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몸의 지형은 ‘가슴’인데요. “쓰린 가슴”, “천불 난 가슴” (「개같은 세상」), “산 가슴” (「망자의 유서」), “흥건한 가슴” (「오해」), “빈 가슴” (「꿈길에서」), “까칠한 가슴” (「앞집 할머니」), “낯부끄러운 가슴, “초로의 가슴” (「고까운 내 세상」), “허연 가슴” (「한숨」) 까지. 또, “가슴 시리게” (「너로 인해」), “가슴을 칠 수 밖에” (「나이 쉰의 성찰」) 없어서 “지금도 가슴에 남은” (「유년의 꿈」) 산산이 부셔진 조각난 가슴들이 숱하게 등장합니다. 가슴에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자주 등장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을 하나 짧게 읽어볼까, 합니다.
세월 속 쌓인 많은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애를 쓴다
꾹꾹 눌러 담아 곰삭은 설움이
주책없이 주절대니
가슴을 칠 수밖에
눈물이 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입을 열면 가시가 나와
피 흘릴 테니
-「나이 쉰의 성찰」 부분
저는 이 작품을 시인 박정숙의 시론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읽었는데요. 입을 열면 뚝뚝 피를 흘리는 말이 “꾹꾹 눌러 담”겨 있는 말들이 거주하는 시적 공간으로서 ‘가슴’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의 언어가 탄생하는 ‘현장’이 어디인지 보여준다고 할까요? 입을 열면 “가슴을 찢어 피눈물 흘리며”(「너로 인해」) 쏟아지는 목소리들이 시집 안에서 생동합니다. 자기 언어의 현장을 가슴에 둔 시인이, 가슴을 칠 때 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참 다양하기도 한데요.
-산 가슴의 시학: 지금도 가슴에 남은 가슴
시집 『통증일기』 속에는 “주저앉아 눈물 흘”리는 목소리,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더 많”다며 격려하는 목소리, “핏대서는 밤을 토악질하며 울”고 있는 목소리, “빌어먹을 희망을” 노래하는 목소리, “개같은 나라, 징그러운 세상”을 한탄하는 목소리, “하루벌이 끊길까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 목소리들은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다. 감정도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솟구”(윤지영)치기고 합니다. 가슴에서 “솟구”치고, “튀어”오르고, “터져나오”는 이 목소리의 기세? 기운? 기력?은 어떤 여정을 겪은 것일까? 궁금했는데요.
그러다, 우연히 계간소식지 <노들바람>(2021년, 봄126호)에 실린 시인 박정숙의 글을 한편 읽었습니다. “장애인이라서 불행하고, 장애인이라서 목소리를 숨기고, 장애인이라서 매사 포기하며 살아야 했던 내가 목소리를 내고 포기하지 않”았다, 고요. 무릎을 딱, 하고 쳤습니다. 자기 언어를 포기하지 않은 목소리에 깃든 시적 울림은 어쩌면, 이 ‘포기하지 않음’이라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목소리 그 자체가 시가 되는 작품들이 시집 『통증일기』에는 그득그득합니다.
2. 통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계속 분노가 나는 거예요. (...)
그 고통에 내가 들어가서, 내 눈물로 떨어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파요.”
-박정숙, 비마이너 인터뷰 중에서
-품의 시학
『통증일기』 속에서는 시인이 통증을 마주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대개 통증은 어서 사라지기를, 없어지기를 바라죠. ‘내 안에 있는 내가 아닌 어떤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인 박정숙의 작품 속에는 통증과 고통은 쫓아내야 할 이물질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야 할 ‘내 안에 있는 타자’로서 품어냅니다. 제가 읽은 작품들 중에 ‘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를 한 편 읽어볼까, 합니다.
어느 누가
나만큼 종종거리며 살았다 한들
너만큼이랴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았지만
너만큼 고단했으랴
고운 마음 키워주지 못한 것이
누구 탓이든
오늘을 주물러 내일을 간다
힘없고 하찮아도
인생길 어제와 오늘 또 내일
누군가
병신이라 내친다 한들
기어오를 오기 가진 것이
너 말고 또 있으랴
-「다리에게」, 전문
“오늘을 주물러 내일을 간다”는 시적 진술을 읽으면 읽을수록 울림이 더해가는 것 같아요. 시집 안에는 시인이 ‘내 안에 있는 내가 아닌’ 통증을 품어내는 다양한 포즈들이 있는데요.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으로 “잠들지 못한 밤”, “쓰디쓴 입을 위해/ 달콤한 치약을 사야겠다”(「통증」)고 손님 대하듯 통증을 품어내기도 하고요. “외로움도/ 슬픔도/ 정직하게 직면해/ 견딘 시간을”(「기왕이면」) 품어내기도 하고, “어둠을 먹고 크는 가시/ 독을 품”(「불치」)은 통증도 “스며드는 것은 품고 가면/ 그만이”(「헛배가 허기진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작품의 품 안에
시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통증을 품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조각난 가슴 속 통증을 뜨개질하듯 작품의 ‘품’으로 엮습니다. 쫓겨나가는 노점상의 “찢긴 마음 아비 가슴”(「마르지 않을 눈물」)을 엮고, 철거민의 “멍든 새끼 가슴” (「상도동 159번지 2003년 겨울」)을 엮어 품어 냅니다. 시집 곳곳에 홈리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노점상, 쌀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 성폭력을 겪은 발달장애인, 세월호 참사 피해자, 철거민, 성노동자 등등. 산산조각 난 가슴들을 작품 한편, 작품 두 편 엮으며, 시집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작품들 속에서 시인 박정숙은 고통의 구경꾼으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대상화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고 할까요? 시인 박정숙은 세계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겹쳐놓아요. 시인은 그들과 “함께 무너져” 내려 “붉은 띠 두르고 유월 하늘 아래/ 투사가 되어버린”(「마르지 않을 눈물」) 쫓겨난 노점상인의 통증 속으로 자신을 뒤섞습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캘리포니아 쌀이 그렇게 맛있다고/ 우리 쌀보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그래서 그 쌀 사먹는다고 열변을 토하길래/ 그 친구가 먹던 밥 빼앗아 버렸다”고 합니다. 친구의 밥을 빼앗아 버린 시인은 “쌀 개방 반대 붉은 머리띠/ 집회하는 농부님들”과 자신을 뒤섞으며 “화가 나서 밥도 못 먹고/ 오는 길에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농부님께 구하는 용서」)고 합니다. 5.18광주민주항쟁 희생자들의 통증과 뒤섞이며 “가슴은 다시 쪼개져/ 점점이 새겨지고/ 멈출 수 없는 눈물자국이/ 쓰리고 아프구나”(「오월아」)합니다.
-통감의 시학
저는 이를 ‘통감의 시학’이라고 부르고만 싶기도 합니다. 공감과 통감은 다르죠. 공감은 서로간의 위치가 구분됩니다. 나와 타자의 사이에 경계막이 있죠. 타자의 고통이 나에게 침투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하지요. 공감은 연결됨의 감각, 내 자리와 타자의 자리를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통감은 뒤섞임의 감각입니다.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이 내게로 일렁이며 흘러들어오고, 내가 누군가에게 일렁이며 흘러들어가는 것. 서로의 통증 속으로 뒤섞이고, 침투하고, 잠기는 것이죠. 시인 박정숙은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정치적 감각으로서 통감의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고통의 파동을 함께 겪어내는 통감은 타자의 고통을 경청하는 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온몸으로 절절히 다시 토해내는 자의 감각인 것이죠. 저는 이를 ‘통감의 정치학’이라고 부르고만 싶기도 합니다. 시인 박정숙이 품은 통감의 시학은 윤리이면서, 동시에 정치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가 익혀야 할 감각의 기술이지 않을까요?
시인 박정숙의 작‘품’에서 기워낸 윤리와 정치가 바로 이 통감의 발성법,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통감, 한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너머, 다르게 살아내려고 할 때 만나게 되는 일렁이는 감각이라는 것을 시집을 읽으며 배웠습니다.
3. 공통감
“긴 세월을 견딘 지금도 싸워야만 하는 고통과 통증의 사회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 장애인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저항해야 하는 통증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증일기 중에서
통증에 관한 고전 의학서인 <통증의 도전>의 내용을 잠시 빌려오자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양과 질은 우리가 이전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러한 고통이 얼마나 또렷이 남아있는지, 고통이 발생한 이유와 그로 인한 결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문화 속에서 자라왔는가, 는 고통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그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는지에 관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고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의 느낌은 한 개인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문화·사회·정치의 층위에서 중층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인데요. 시인 박정숙은 온몸으로 이를 체득하고 있습니다.
-만국의 통증이여, 단결하라!
통증을 조형해내는 “고통과 통증의 사회구조”가 “빌어먹을 혐오로 가득 찬 개같은 세상”을 만들었다, 고 외칩니다. “장애인이 죽음을 선택하면/ 장애를 비관해 선택했다고 떠들어 댄다// 아.니.다/ 편의시설의 부재와/ 변하지 않는 혐오와/ 차별의 벽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평등」) 고 외칩니다. 비장애중심사회가 배치해놓은 이 통증의 구조 속에서 “극복이 아니다/ 언제나 주어진 하루하루는/ 투쟁일 뿐이다” (「장애인」) 라고 외칩니다. “차별적인 사회의 요구를 거부했기에 나는 나로서 살아남았다”고 외칩니다. “숨결마다 투쟁해야만 살아남는다”(「통증일기」)고 반복해 외칩니다. 통증은 개인이 극복해내야 하는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옭아매는 구조적인 것으로 함께 투쟁해야한다, 고 외칩니다.
시집 『통증일기』 속에는 함께 외칠 수 있는 시적 구호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데요. 모두가 함께 외칠 때, ‘우리’라는 공통감은 새롭게 발명됩니다. 함께 외치며 ‘투쟁’하고, 함께 ‘거부’하고, 함께 ‘저항’할 때 마다 ‘우리’라는 공통감이 거듭 새롭게 탄생되는 것은 아닐까? 시집을 읽으며 생각해보았습니다.
-탄생되는 시인을 향하여
“차별받고 투쟁하는 장애인의 삶, 고통 받는 내 삶 자체가 시라는 걸”
-시인 박정숙, 비마이너인터뷰 중에서
시집을 다 읽고 탁, 덮고 나니 시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자기의 삶-몸을 현장으로 삼아, 가슴 속 들끓는 목소리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시. 세계 속 삶-몸 현장에 조각난 가슴들을 통감의 품으로 엮으며, 함께 평등을 외칠 수 있는 시. “내 삶 자체가 시”로서 탄생하는 시. 답답한 가슴을 탁, 틔워줄 시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비좁은 품을 탁, 틔워줄 시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늘 피로하고 지속되는 통증을 나의 일부로 탁, 받아들일 수 있는 시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통증을 지속시키는 차별과 배제의 “까마득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 같은 시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이 시집은 앞으로 탄생될 시인을 향한 시인 박정숙이 보내는 한 권의 초대장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턱이 있고/ 출입구엔 또 계단이 서너 개/ 여기도 못 가겠구나/ 퉷” (「우리동네」) 뱉는 퉷-불구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난치병을 앓는 우리는/ 어둠을 먹고 크는 가시”(「불치」)를 데리고 사는 난치-불구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앉은 자리마다 붉은 피 냄새가” 나고 “쌓인 많은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애를 쓴다/ 꾹꾹 눌러 담아 곰삭은 설움이/ 주책없이 주절대니/ 가슴을 칠 수밖에// 눈물이 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입을 열면 가시가 나와 피흘” (「나이 쉰의 성찰」)리는 소수-불구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빌어먹을, 혐오로 가득 찬 개같은 세상”(「개같은 세상」)의 가슴을 내려치는 투쟁-불구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가슴 속에 “피눈물”로 “응어리”져 “침묵 속에 묻힌 마음”과 “뱉어내지 못한 눈물”과 “수많은 말과 함께 삼켜야했”던 “상한 마음”이 서식하고 있는 모든-불구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인 것만 같습니다.

제 말이 좀 길었습니다. 이제 인사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가장 쉬운 평범함에서/ 가장 깊은 절망을” 보고 “가장 하찮은 사유에서/ 가장 큰 상처가 지혈되지 않는 쓰린 가슴팍”(「개같은 세상」)의 맥박을 듣는 시인 박정숙의 첫 번째 시집 『통증일기』를 아직 구매하지 못하신 분들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과 같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마침내, 끝끝내, 우리 곁에 탄생한 박정숙 시인을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시집 『통증일기』 출간 기념 북토크 기념 사진
1) The challenge of Pain, RONALD MELZACKand PATRICK D. WALL, PENGUIN BOOKS, 1996, 1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