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142호 - [조선동이 돌아왔다] 꽃동네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서울로 / 강정윤
조선동이 돌아왔다
꽃동네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서울로
강정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남성 체험홈 담당자

체험홈에서 강정윤, 조선동
조선동 씨는 탈시설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2022년 1월 10일 김포의 체험홈에 입주하였고, 이틀 뒤인 2022년 1월 12일 김포야학에 등록하여 새로운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또한 그는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자, 2022년 3월 21일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근무를 시작으로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하여 투쟁을 이어나가던 중, 그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가기위하여 전동휠체어를 구매하였고, 처음 운전해보았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조작을 하여 주변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본인이 시설로 들어가기 전 살았던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내비쳤습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있었는지, 그의 열정은 오래가지 않았고 2022년 12월 31일 권리중심일자리를 그만두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선택을 만류하였지만, 그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누구보다 명확했고, 싫은 일이라면 그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야학과 권리중심일자리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자를 쓰고 읽지는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을 이용하여 자산을 관리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가며 세상과 소통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탈시설을 도와준 홍은전, 김필순 씨와는 어느날을 기점으로 멀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노들센터를 찾았고, 주위를 배회하다 조용히 체험홈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담당 코디네이터로서 첫 지원이 생각납니다. 그의 방안에 있는 작은 개인금고의 비밀번호를 바꾸는 일이었고, 처음부터 그와 잘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스무고개식으로 그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첫 지원을 마치기까지 3시간 정도가 소요될 만큼 라포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저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활동지원사에게도 맡기지 않았던 금전관리를 맡겨주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처했던 상황이 타인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그의 속도에 맞춰 함께하였고, 그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체험홈에 들어올 땐 술을 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답답함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때로는 적이었고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 동안 조금씩 조금씩 술을 마시게 되었고, 결국은 술이 없으면 크게 화를 내거나 휠체어로 활동지원사에게 부딪치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음주가 발각됐고, 알콜 의존증이 심해졌으며 때마침 체험홈 퇴거일과 맞물려 자립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그는 경기도에서 자립하면 받을 수 있는 2천만 원의 정착금을 포기하고서라도 서울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자립을 위해 그가 준비한 돈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경기도 안에서도 노들센터와 가까운 지역을 추천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러차례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만류하고 설득도 해봤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수는 없었습니다. 퇴거가 확정된 날, 짐을 노들센터 근처로 보내달라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25년 3월 7일 체험홈에서 퇴거를 하면서 다른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자랐고 앞으로 서울에서 살기를 원하였기에, 자신의 짐을 서울시청으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주거지 마련을 위하여 서울시청에서 노숙투쟁을 하겠다고 선포하였고 그의 바람대로 노숙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동 씨의 하루하루는, 그저 그가 선택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조선동 씨를 만들었고,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