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142호 - 3.1절 일본 1박2일 원정 특사단 참여기 / 김홍기
3.1절 일본 1박2일 원정 특사단 참여기
김홍기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자 권익옹호 활동가. 여행을 다니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3.1절에 특사단으로 일본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유럽과 일본으로 보름간의 특사단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참석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꼭 참석을 하고 싶어 신청을 하게 되었고 선발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정말 좋았습니다. 일본 투쟁에 참석을 하며 특사단 각자 각오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뜻으로 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3월 1일 출발하기 전에 특사단 모두의 결의문을 만든다고 해서 나의 각오를 담았습니다.
“일본의 부당한 입국 거부는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이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부당한 정책임을 우리는 분명히 밝힌다. 또한,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우수한 사람들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우생학적 사고는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라는 문구를 작성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의 결의문도 읽어보니 모두의 각오가 뜨겁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드디어 3월 1일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11시반까지 김포공항으로 모여 가벼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기자회견을 시작하였습니다. 박경석 대표님이 연설을 하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형숙 소장님이 김포공항까지 참석을 하였지만 컨디션 난조로 인해 같이 일본으로 못 가게 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꺼질 불꽃이 아닌 것처럼 모두에게 몸조심히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야학에서도 탁영희, 박찬욱 선생님들이 응원을 하기 위해 참석을 하여 조심히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노들야학 박성숙 부학생회장과 박지호, 이수미 등 다른 학생들도 응원을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출국심사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국심사 하는 동안에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에 카운터에 전동휠체어를 화물로 맡기고, 수동휠체어로 바꿔타야 했습니다.
17시가 되어 모두 출국수속이 끝나게 되자 하나 둘 비행기에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동휠체어 대신 탔던 수동휠체어에서 또 다시 작은 기내용 휠체어로 옮겨타야 했습니다. 내부 복도도, 좌석도 굉장히 좁고 불편하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약 2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일본의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일본에 도착하고도 입국 심사가 굉장히 오래걸렸습니다. 화물 수속을 하며 내 휠체어가 파손되기도 하고, 입국 수속중에 작년에 일본특사단을 다녀왔던 6명의 동지들(이규식, 한명희, 백인혁, 박지민, 신지현, 김소영)이 입국 거부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입국을 하게 해달라며 4시간 동안 모여 외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강압적인 서약서를 작성한 끝에야 가까스로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하네다 공항 4층에서 자리를 잡고 다음날 자정이 넘어서야 노숙 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불도 없고, 비행기를 타고 타국에서까지 처음으로 공항에서 노숙 농성을 한다는 게 참 힘들기도 했지만 신비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잠깐 잠을 자기 전에 하네다 공항 옥상으로 올라가 야경을 보니 매우 아름답고 수를 놓은 것 같아 남호범, 민푸름 선생님과 잔잔한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2시에 취침을 하고 5시에 기상을 하여 5시반에 3층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로 샌드위치와 김밥을 먹었습니다. 직후 6시에 지하철을 타고 야스쿠니 신사로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기도 하면서 약 한 시간 가량 이동을 하여 야스쿠니 신사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하는 중 한명희 선생님이 내게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내가 하고 싶다고 외쳤습니다.
“내가 정말 일본까지 찾아와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크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옛날에 일본이 침략했을 때 위안부 사건에 대한 진실 촉구와 남성들을 끌고 가 자행한 무수한 생체실험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며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되돌아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모든 말을 다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무튼 발언을 마치며 일본 경찰에게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기자회견
짧았던 기자회견을 마치고 공항으로 바로 돌아갈까 했는데, 우리는 가장 늦은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해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일본까지 왔는데 주변 구경도 못하고 가면 아쉽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주변 기타노마루공원을 남호범 선생님과 허종양 아저씨(활동지원사)와 함께 찾아가 산책을 하였습니다. 산책을 하는 도중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공원 체육관 앞 카페 33이라는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충전을 하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호범 교사, 허종양 활동지원사와 함께한 기타노마루공원 산책
이후 나리타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였습니다. 지하철을 탑승하는데 역무원이 발판을 대주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알게 되었는데 한국은 기차 운전원이 1명이지만 일본은 2명, 많게는 3명까지 타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신비한 구경이었습니다. 또한 지하철이지만 지하로 달리는게 아니라 지상으로 달리는데, 집 풍경들이 한옥마을과 같은 보존하는 마을처럼 보였습니다. 도시 풍경은 어디를 가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마땅한 가게가 없었습니다. 찾아다니다가 초밥가게를 찾아 먹으려고 하였는데 굉장히 비싸고 양은 적었습니다. 공항 주변에 식당이 없다는게 아쉽기도 했고 맛도 굉장히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공항 음식은 비싸고 맛이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온몸이 쑤셨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면서도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없어서 아저씨가 수동휠체어로 빨리 바꾸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출국 수속으로 짐과 전동휠체어를 맡기고 출국장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리타 공항 내 면세점에 들어가 여러 가지 물품들을 구경을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골라 물품과 빵 등 이것저것 샀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고 찾아다녔는데도 비행기 시간은 한참 남아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가게가 보이지않았습니다. 결국 편의점으로 일식 우동과 샌드위치를 사서 먹게 되었습니다. 우동을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었습니다. 결국 안 먹게 되고 아저씨가 먹게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게이트가 빨리 열리지 않았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우리는 가장 먼저 탑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이했던 것은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는 기내 휠체어로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타고 있던 수동휠체어에서 큰 바퀴만 떼니 바로 비행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휠체어가 되었습니다. 나름 편한 방식이라 한국에서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을 마치고 저녁 7시 30분쯤에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하였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내식을 먹지 않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잠시후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11시쯤 도착을 하여 화물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짐이 생각보다 늦게 나와 답답하였지만 입국 심사는 빨리 끝나게 되었습니다.

인천공항 도착 후 찍은 단체사진. 이때 이미 밤11시가 넘었다
밤 11시 40분쯤 집으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차라리 서울역까지 가서 GTX-A를 타고 연신내에서 집으로 와야겠다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이미 GTX도 지하철도 다 끊겨 더 이상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없었습니다. DMC역으로 가는 중에 콜택시를 타기 위해 미리 신청을 하였지만 역에 도착하고서도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습니다. 역에서 문을 다 닫는다고 나가야 한다고 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밖은 비가 많이 내리고 굉장히 쌀쌀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엘리베이터 앞에 비가림막이 있어 비를 덜 맞으며 콜택시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추워 밑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전동휠체어 배터리도 거의 다 소모해서 지하철 역사 내에서 콘센트를 찾아 일단 충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일본 전압기준인 110V에서 220V로 충전기 설정을 다시 바꿨는데 잘 안 바뀌었는지 갑자기 펑소리가 나며 충전기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고장이 났습니다. 아저씨가 놀라 급하게 뽑으며 정리를 하였습니다. 충전을 못하고 있었는데 새벽 2시 반에 겨우겨우 장콜이 오게 되어 타고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도착을 하고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고장났던 휠체어 충전기를 고치기 위해 휠로피아 사무실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전기가 고장난거는 고칠 수가 없다며 새로 사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시며 오늘은 공휴일이라 현재 휠로피아 대리점이 문을 닫았다고해서 차라리 4일에 찾아가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휠체어 배터리가 많이 없으니 롯데몰에서 충전을 하고 출근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서 급한대로 충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4일날 몸이 좋지 않아 병가를 내고 휠로피아 대리점으로 충전기를 사기 위해 방문을 하였습니다. 방문을 한 김에 컨트롤러도 고치고 발판이 막 돌아가던 것도 고치고 공항에서 고장났던 것까지 모두 수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휠체어 수리비와 충전기를 구매하니 모두 합쳐 17만원이 나오게 되어 놀랐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쉬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하루 동안 투쟁을 위해 간 것이었지만 이후 몸의 아픔과 전동휠체어의 케어가 안되었다는 것으로 다시 한번 불편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동휠체어를 남호범 선생님이 끌어주셨는데 굉장히 먼 거리임에도 불평없이 공항내의 이동을 도와주어 고마웠습니다. 아저씨가 날 위해 케어를 한다는게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라는 것과 날 위해 타국 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감정이 교차하였습니다. 아저씨가 날 만나서 고생을 많이 하고 아파하는걸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파왔습니다.
만약 비행기 좌석 공간을 더 넓게 만들었더라면 비행기를 타는 시간도 줄어들고 전동휠체어에 탄 상태로 타고 내리는 게 가능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점들이 바뀌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본 특사단 여정이었던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의 투쟁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투쟁을 할 수 있다니 꿈에도 몰랐던 생각이 이루어진 것 같아 정말 행복했습니다.
일본 경찰들이 우리가 투쟁을 하려는 것을 막는 게 한국보다 심각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며 활동을 하는게 그렇게 보기 싫고 억제를 해야하는 걸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만약 다음에도 특사단이 꾸려져 일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발언문을 미리 준비하여 잘 발표하고 더욱이 한국의 장애인권리 탄압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