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7 02:09
2015년 겨울 106호 - 노들센터에서 보낸 9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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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센터에서 보낸 9개월
인턴활동을 마치며
김혜진 | 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30대 김혜진입니다. 2013년 4월에 중증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서 지금은 능숙하게 자립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친해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안기는 것입니다.
보통 자립생활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자유로운 삶을 원해서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릅니다. 시설에서 저는 많은 선생님들의 손을 거쳐 살아왔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다양한 성격에 일일이 맞춰가야 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여러 선생님들께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점이 저를 너무 지치게 했고 그런 삶을 계속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립생활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마침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 장애인 인턴제1)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센터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의욕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턴으로 활동하다 보니 저에게 부족한 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수행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워드나 엑셀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과 함께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활동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들센터의 활동보조 코디네이터가 되고자 국제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인권강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인턴 업무 중에 특히 자립생활지원팀 회의는 저의 자립생활 경험을 통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가장 참석하고 싶었던 자리였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다른 여러 회의에 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실제로 많은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인턴을 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멘토 활동이었습니다. 멘토 활동은 탈시설하고 싶은 의지를 가진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자립생활에 대한 제 경험을 들려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입니다. 저는 보기와 달리 소심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그런데 멘토 활동을 하다 보니 점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시설에서 나왔을 때 멘토 분들에게 장보기, 영화관 이용하기, 쇼핑하기, 병원가기 등을 배우면서 자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 또한 멘토로서 ILST(자립생활기술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을 하고 싶은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립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 지금까지 어떤 일을 시작하고도 끝까지 해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턴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제가 매일 출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태껏 어떤 활동을 해도 제가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턴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선 지금에 와 돌아보니 지난 9개월간 같은 공간에 매일 출퇴근한 것만으로도 제게는 무척이나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끝까지 해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끝까지 해본 일이 바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인턴 활동인 것입니다.
어느덧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제게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편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자립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용자로만 센터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낼 때는 ‘센터’라는 단어와 공간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턴 활동을 통해 센터 식구들과 센터 활동가라는 입장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부터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센터 식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점은 저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센터 활동가로 일하는 동안 저의 자립생활 경험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립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자립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멘토 활동이 가장 보람찼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 제 꿈이 저의 등대가 되어 미래의 자립생활을 환하게 비춰줄 것입니다.
1) 서울시는 올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22곳에 중증장애인 1명이 인턴근무를 할 수 있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중증장애인 인턴제’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