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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서 연극으로 경계를 허물다
병명 : 장애인에 대한 편견
처방 : 장애인문화예술판 공연 관람

미나 | 내가 태어나 돌이 막 지났을 무렵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아빠를 평생 보며 살아 왔다. 하지만 아부지를 장애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내겐 ‘우리 아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내 생에 가장 많은 장애인들을 만난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의 1년. 판에서 보낸 지난 1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해 내가 품고 있던 경계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고, 또 한편으로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판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며, 미나.


1년 전, 판에 처음 왔을 때 좌 대표님이 내게 판 업무를 익히라며 여러 가지 자료들을 던져 줬다, 사실 ‘일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대충대충 건성건성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 이게 바로 장애인문화예술판이구나!’하고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자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올해 2년차를 맞이한 자립예술 프로젝트의 1년차 교육 결과물인 ‘러브러브’ 공연이었다.

‘생각보다 연기를 잘하네.’

어느새 삐딱했던 몸을 일으켜 정자세로 고쳐 앉아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집중력으로 공연 영상을 보며 ‘생각보다 잘하네’ 하고 판단하는 내가 있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잘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흔히 교과서 혹은 고리타분한 발제문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란 놈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뿌리 깊게 탑재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연극을 한다고? 그냥, 그렇겠지 뭐.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

뭐. 이런 생각들. ‘그랬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깨닫는 순간 참 오싹했다. 세상의 많은 편견들과 ‘안녕’했다고 착각하고 잘난 척하며 살고 있던 내 안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봤으니 오싹할 수밖에. 한편으로는 ‘이런 판의 배우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볼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작년에는 이렇게 멋진 공연을 만들었는데, 과연 올해는??? 얼마나 더 멋진 공연을 만들게 될까??? 하고 말이다.

시간은 구름과 같이 흘러 어느새 장애인문화예술판에는 공연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왔다.

장애인 극단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장애인이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친다고!

<이 동네 개판이네>로 2015년 장애인문화예술판 공연의 서막을 열었다. <이 동네 개판이네>는 장애인들이 항상 집에서 빈둥거릴 거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 극단 판 단원들이 연극을 만들고, 사물놀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싸우고 울다가 웃는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비장애인 연출이 장애인 배우들을 가르치러 왔다가 배우고 돌아간다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동네 개판이네> 공연 안의 극이었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한 고고(서훈), 디디(김진옥), 포조(임은영)와 럭키(금민정) 네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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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 동네 개판이네> 공연 장면 (왼쪽부터 디디, 고고, 럭키, 포조)



공연이 끝나고 한 관객이 배우에게 매우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우와. 저 사실 장애인 극단이라고 해서 별 기대 안하고 왔는데,
오늘 공연 너무 멋졌어요!”

10월에는 작년 <러브러브> 공연을 했던 자립예술 프로젝트 2년차의 결과물인 통합예술 <심장이 뛴다> 공연을 했다. 연기에 집중했던 작년과 달리 영상과 무용 그리고 연기가 어우러졌다. 1년 동안 배우들이 만든 이야기들로 구성된 극과 배우들이 직접 만든 무용을 선보일 수 있었던 통합예술공연 <심장이 뛴다>의 관객 후기는 더 큰 감동과 울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너무 훌륭하고 감동이었어요. 내년 공연도 기대돼요.
진짜 감동적이었습니다.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표정, 대사, 움직임 다 환상적이었습니다.
가슴이 뛰었답니다. (from 노들 장애인 야학)


관객들의 관람 후기를 읽으며, 내 가슴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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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통합예술공연 <심장이 뛴다> 공연 장면.



판의 2015년 마지막 공연은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재해석해 실험적인 창작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는 창작음악그룹 the튠과 국내외 20여 개국에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공동작업으로 내공을 쌓아 온 연출가 리지프로젝트 대표 리지(이지현)와의 앙상블이 환상의 하모니를 그려낸 음악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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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유쾌한씨의 운수좋은 날’> 공연 장면.


영국의 장애인 운동가 핀켈슈타인(Finkelstein, 1993)은 문화예술이 장애인에 대한 대표적 사회적 이미지인 <자선의 대상, 비극적 장애인의 이미지 혹은 인간 승리의 신화>를 벗겨내고 인간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2015년 장애인문화예술판 배우들의 공연은 핀켈슈타인의 주장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 공연이었다. 그래서 어느 관객의 말처럼 내년이 더욱 더 기대된다.

혹시 주변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불쌍한 이가 있다면, 장애인문화예술판의 공연을 처방해 주는 것은 어떨까? (단, 주로 9월 이후 연말에만 처방 받을 수 있으므로, 환자의 인내심을 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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