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3 03:11
2015 겨울 106호 - 비마이너가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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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가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5인 미만 인터넷신문 퇴출’ 신문법 시행령 강행에 반대합니다
하금철 | 어쩌다보니 장판에 들어왔다. 어쩌다보니 또 기자가 되었다. 이러다 인생이 온통 '어쩌다'로 채워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어쩌다'의 연쇄 덕분에 '옹알이'가 아니라 공적인 '말하기'를 배우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산문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주제 넘는 꿈을 꾸며 산다.
세계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12월 3일. 비마이너가 창간 이래 처음으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5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매체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것입니다. 주류 매체가 주목하지 않는 장애인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분주하게 현장을 누볐던 지난 6년간의 시간이 인정받는 순간이었기에 너무나 기뻤습니다.(꼭 상금을 받아서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장애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어려움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장애인 전문 언론지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타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슈를 기획연재로 연속보도하여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제정 운동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 한국장애인인권상위원회 비마이너 선정 이유 |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저희에게 이런 칭찬은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갈수록 소수매체의 설 자리가 없어져가는 우리 언론 환경에서 비마이너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응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는 비마이너를 믿고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마이너는 이번 상을 계기로 그런 독자 여러분들의 믿음과 성원에 더욱 크게 보답하는 언론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이런 작은 다짐조차 유지하기 힘든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단지 저희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 것이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마이너는 소수언론이 설 자리를 없애버리기 위한 정권의 시도에 의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1월 19일부터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의 본격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른바 ‘인터넷신문 등록요건 강화’로, 기존에는 취재 및 편집 인력 3인 이상을 상시 고용하고 그 명부만 제출하면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취재 및 편집 인력 5인 이상 상시 고용과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함께 제출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기존에 등록된 인터넷신문들도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개정된 인력 요건에 맞춰야 하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이른바 ‘사이비’ 언론의 어뷰징(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같은 기사를 제목이나 내용만 조금 바꿔 반복으로 전송하는 행위)과 선정성 기사 등 언론 환경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언론 환경을 파괴하는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어뷰징으로 ‘클릭 수 장사’를 할 수 있는 언론은 대부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 메인화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언론사입니다. 네이버는 메인화면과 뉴스페이지를 150개 언론사의 기사로만 편집하며, 다음은 173개, 네이트는 116개입니다. 상위 2~10%의 언론사들이 포털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셈입니다. 또한, 100대 기업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기사를 이용해 기업에 광고를 요구하는 ‘유사언론행위’를 하는 언론은 대부분 ‘5인 이상 언론사’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비난의 화살을 ‘5인 미만’ 언론에게 돌려 언론사 간판을 강제로 떼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즉, 이번 시행령이 내세우는 표면상의 이유는 ‘등록요건 강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 인터넷신문에 대한 ‘강제폐간 조치’인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등록된 인터넷신문 중 대다수가 5인 미만으로, 1년 내에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70% 이상이 폐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비마이너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마이너는 올해 취재 역량 확대를 위해 신입 기자를 채용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시 고용 5명에는 미달하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1년 뒤에 비마이너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폐간되고 나면 다시는 ‘비마이너’라는 이름으로 언론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비마이너뿐만 아니라 각 지역과 부문에서, 주류 언론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의 취재를 하는 수많은 소수매체들 또한 5인 미만입니다. 이런 언론들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 다양성을 뿌리 채 흔드는 중대한 사태입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5인 미만’ 언론 퇴출 이유도 어처구니없지만, 고용된 인력 수로 언론사 퇴출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4명이면 찌라시, 5명이면 언론으로 인정해준다” 이런 말장난 같은 논리를 펴고 있는 게 현재 박근혜 정부입니다. 구청에서 식당 영업허가를 내 주는데 종업원이 몇 명인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종업원이 아무리 많더라도 음식 맛이 없고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면, 자연히 손님의 발길이 끊길 테고 식당도 문을 닫을 것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양식 있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지, 정부가 재단하고 통제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정부의 이번 조치에 반대 목소리를 냈음에도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은 강행되었습니다.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이 아니라 시행령 개정이었기에 국무회의 통과만으로 속전속결 처리되었습니다. 물론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에 받은 국민의견 중 찬성이 2건, 반대가 12건으로 반대가 압도적이지만 이는 간편하게 무시되었습니다. 법치(法治)주의가 아닌 ‘영치(令治)주의’, ‘시행령 독재’의 전형적인 행태였습니다.
처음으로 상도 받고, 이제 막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한 비마이너는 덕분에 1년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부의 이런 반민주적 폭거에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비마이너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의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이 땅에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지키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현재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신문법 시행령의 폭거를 막기 위해 헌법소원을 비롯한 다양한 법적·사회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비마이너도 이들과 연대하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서 싸우겠습니다.
하지만 비마이너만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더 큰 성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언론 다양성을 파괴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헛수고가 되도록, 여러분이 비마이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시오. 비마이너라는 작지만 소중한 공론장을 지켜온 독자의 힘이 정부가 시행령 개정 하나만으로 짓밟을 수 있을 만큼 우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다가오는 2016년,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싸움에 비마이너도 여러분과 함께 물러섬 없이 나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