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3 03:17
2015 겨울 106호 - 【노들 책꽂이】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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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 책꽂이 】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허위에 대한 날카로운... 사이다 같은 책
허신행 | 2010년 학교 졸업 후 상근자로서 줄곧 노들야학에 있다가 올해 2월 독립(?)을 하였다. 현재는 주식회사 생각의 마을에서 사회복지 관련 출판, 연구 컨설팅(개인 및 단체의 연구작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19일 저녁, 나는 현장 인문학 마지막 세미나를 위해서 카페 별꼴에 있었다. 세미나를 하긴 해야 하는데 계속 손은 핸드폰으로 가고 있었다. 대선 결과가 나오고 모두들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에 대해서 절망만을 해온 것 같다. 가끔은 ‘다들 밑바닥으로 치달아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가, ‘그 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기도 했다가, 결국엔 나라야 망하건 말건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진심으로 했었다(하고 있다).
이 대멘붕의 시기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이 기억난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라는 책은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에 대한 책인데, 이는 새누리가 대중을 어떻게 이용해 먹는지, 도무지 왜 국민이라는 작자들은 그렇게도 잘 속아 넘어가는지를 이해해보려고 산 책이었다. 하지만 너무 두껍고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중간에 접었다. 가장 최근에는 다니엘 튜더라는 영국인이 쓴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었고, 지금은 이태원에서 수제 맥줏집을 운영하는 저자는 한국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위로해주거나 다시 희망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헬조선❶은 답이 없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만 더 크게 만들었다.
그러다 요즘 말로 사이다❷ 같은 책을 발견했다. 바로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이다. 저자는 멘붕에 빠져 있던 나에게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다 글러먹었으니 당신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화끈하게 말해주었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할 시간에 자기 자신을 다잡고 온전한 개인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저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책들은 제목이 제일 도발적이고 내용은 그저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이 그나마 제일 덜 도발적이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도발적이라는 점이다.
1장.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장. 가족, 이제 해산하자
3장.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장.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장.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장. 신 따위, 개나 줘라
7장.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장.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장.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장.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애국, 효도, 사랑, 종교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것들의 허위에 대해서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냥 전형적인 일본식 냉소주의 아니냐, 그냥 배설 차원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조 있고, 깊이 있는 사유라고 생각되었다.❸ 보통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것들을 정확히 짚어내고, 알더라도 ‘감히’하지 못하는 말을 편안하게 내뱉고 있는 저자의 배포에 감동할 따름이었다. “부모를 버려라”, “바보 같은 국민은 단죄해야 한다”, “국가는 적당한 바보를 원한다”, “직장은 사육장이다”, “연애는 성욕을 포장한 것일 뿐이다”, “훌륭한 생이란 없다” 등의 문구를 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나의 또 다른 자아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지금까지 잘 포장된 삶을 살아왔다. 나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으며 내 욕망과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심지어 내 욕망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마루야마 겐지는 내 인생을 살라고, 온전히 너의 것을 챙겨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라고 꼬장꼬장한 노인이 호통을 치고 있었다. 여러분도 꼭 자신의 진짜 욕망을 찾고, 당당한 개인으로 오롯이 살아가길 바란다. 나도 언젠가 절대 이별할 수 없을 것 같은 야학에게 “노들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 무엇도 나를 옥죄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❶ 헬조센(헬조선)은 Hell +조센(朝鮮의 일본식 음독)의 합성어로, 마치 지옥과도 같은 한국이라는 뜻을 담은 신조어다.(출처: 나무위키)
❷ 답답한 상황이 통쾌하게 진행되었을 경우 쓰이는 인터넷 은어. 모 유머사이트에는 사이다 게시판이 따로 있다.(출처: 나무위키)
❸ 다른 글에서도 이 분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시골생활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낭만을 이야기하고, 전원생활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반면 실제로 시골에서 은둔생활을 한 저자는 자신의 저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등의 주옥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❹ 글을 쓰면서 유독 직접 인용한 문구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다 옮겨 적어서 보여드리고 싶다. 꼭 한 번씩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야학 국어시간에 수업 교재로 써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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