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6 05:18
2015 겨울 106호 - 사라진 주말, 멘붕의 연속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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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주말, 멘붕의 연속 그리고...
미디어아트 ‘줄탁동시’에서 뭔가를 하얗게 불태운 이야기
강미진 | 저는 편의점과 바나나우유를 사랑하고 요즘 하루키 소설에 푹 빠져 사는 34살의 꽃 처녀 미진입니다.
난 준비한 모든 걸 다 보여줬어
하얗게 내 자신을 불태웠어
시선(장애인노래패)에서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가 장애인이 활동하는 극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극을 준비한다는 정보도 듣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스텝으로 도와달라고 하기에 시선의 신입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 주 주말에 오디션 비스무리한 걸 봤고, 사진을 찍었고 그 뒤 내 주말은 없어졌다.
내가 연극 준비를 시작했을 때에는 스토리와 모든 역이 다 정해져 있었다. 난 마치 깍두기 같은 느낌으로 원래 스토리에 없던 활보역(이름도 없다, 그냥 활보란다)을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이어서 정말 매력적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하기가 싫었다. 그냥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연습 스케줄도 벅찼고 업무도 쌓여있어 대충하자라는 심정이 컸다. 내가 해봤자 얼마나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또 내가 얼마나 잘하겠나 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활보역의 비중이 아주 작았다. 까메오라고 생각될 정도의 분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늘어가는 대사와 내가 해야 하는 영역이 많아졌다. ‘내가 소질이 있나?’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 잘해야지.’라고 점점 내 자신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 좋았던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 없어져도 줄탁동시 멤버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대본 리딩을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행복과 칭찬에 내 스스로가 자만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리딩과 동선을 정하는 날 줄탁동시 준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멘붕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외웠던 대사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멤버들에게 우울하고 불쾌한 내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그때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지는 감정이 들었다.
사진 : 오른쪽이 미진.
그것을 계기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열심히 해보자!’라고 각성하게 되었다. 그런 계기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내가 원래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아주 거만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고 의상, 소품 등을 준비할 수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날 리허설 때 난 또 다른 멘붕을 경험했다. 목소리가 작은 것에서부터 조명의 열기까지 연습 때와는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 힘들었고 또다시 내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멤버들이 저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잘 할 수 있다고 파이팅 해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콜라도 사주었다. ^^
무대에 오르는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한 번 더 리허설을 하였고 드디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난 다른 배우들보다 비중이 작았던 탓도 있고 의상이나 분장이 단순해서 빠르게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를 빨리 끝내고 다른 스텝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스텝이 ‘너는 배우다. 쉬어라.’라고 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을 위해서 주말을 반납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웠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본을 더 볼 수 있었다.
3회 무대가 모두 끝나고 별다른 실수 없이 무사히 끝냈다는 뿌듯함과 홀가분한 마음이 지난 날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처음의 어색함, 연습하면서의 자만감과 속상함, 무대에 오르면서의 긴장감, 끝나고 나서의 뿌듯함과 홀가분함이 뒤엉켜 감동이 되었다. 비록 처음 무대에 올랐고 내가 원한 역할(난 원래 스텝이었다)은 아니었지만 무대 체질이라는 의외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난 준비한 모든 걸 다 보여줬어, 하얗게 내 자신을 불태웠어’ 그러고 뒤풀이 때 전사했지 ^^
다음날 숙취에 몸살을 앓았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