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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을 알려주마]
End? And...!
무호아저씨와 함께 자립의 기쁨을 맛보다

김한준 | 2015년 2월 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콧수염을 길러보고 싶어 한 3주간 길러보았는데, 주변-특히 여성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길렀지만, 결국 종로구청과의 재협약(자립생활주택), 복지재단에서 사례발표 등 공식 행사에는 나의 몰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면도를 하긴 했지만, 꼭! 다시 한 번 멋지게 길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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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앞줄 왼쪽이 이무호 님. 그의 휠체어에 손을 대고 서 있는 사람이 김한준.



무호 아저씨를 처음 뵈었던 때는 2015년 2월 11일 오전 10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주택1-가형에서였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를 처음 뵈었을 때는 무언가 불만이 가득 차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과연 내가 무호아저씨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급하지 않게 내 본 모습을 보여드리며 다가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가기로 생각하였다.

무호 아저씨의 자립생활을 위한 욕구는 크게 3가지였다.

1. 활동보조서비스 이용 시간의 확대
2. 2급인 장애등급을 1급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
3. 임대주택 등 주택을 마련하여 완전한 자립을 이루는 것

어찌 보면 쉬울 수도 어찌 보면 어려울 것도 같은 욕구를 이루기 위해 내가 지원해드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물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가 그리고 아저씨가 함께 감당해 낼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아저씨와 함께 부딪혀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무호아저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활동보조서비스 이용 시간이었다. 활동보조 시간이 월 130시간. 이마저도 3월 이후로 110시간으로 줄어들었기에, 활동보조인이 무호아저씨 옆에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에 4~5시간. 오전 9시 ~ 오후 2시 정도였다. 장애등급을 재판정 받는 길 밖에 없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아저씨와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크게 8가지의 목표를 갖고 나와 아저씨의 시간이 시작이 되었다.

3월부터 시작된 동료상담. 실질적으로 아저씨에게 자립에 대한 조언 및 아저씨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 찾았고, 다행히 추천을 받아 노원센터의 임형찬 국장님을 모실 수 있었다.
동료상담은 특히나 무호아저씨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았다.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은 아저씨에게 말동무 상대도 되어주고, 아저씨가 좋아하는 장기도 함께 두고, 장애등급 재판정을 위한 다양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장애등급 재판정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4월 22일에 재판정 신청을 하였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시간이 조금 흘러 7월. 전에 신청했던 장애등급 재판정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공단 측에서는 직접 실사를 나와 보지는 않고 무호아저씨에게 이런, 저런 의료기록들만 요구하여 아저씨의 자비로 비싼 검사들을 다시 받으며(MRI 촬영, 근전도 검사, 의사소견서 등) 제출을 했던 차였다. 하지만 우편으로 온 결과는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 유지하고 있는 등급 그대로 유지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공단 측에서는 현 장애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라며, 더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를 주긴 했었지만 이런 결과를 막상 받아보게 되니 열심히 준비하셨던 아저씨도, 옆에서 함께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나도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단지 의료기록으로만 아저씨의 장애정도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버린 국민연금공단의 행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센터 차원에서 함께 연대를 하여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현 아저씨의 상황 및 상태를 상세히 적어 논의에 부쳤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과 연대를 하며 2015년 8월 6일 장애등급, 근로능력 부당판정 규탄 및 국민연금공단 면담요청 기자회견에 연대발언을 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아저씨는 현 상황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씀해 주셨고 그 자리에서 국민연금공단 담당자들과 면담 및 장애 등급 판정 이의신청을 하였다. 담당자에게 좀 더 신경을 써서 처리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후속 조치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되었다. 개별자립생활기술훈련(ILST)의 경우 위에서 목표했던 것처럼 집에만 계시는 아저씨를 최대한 밖으로 모시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 시작으로 수유동에 있는 4.19 민주묘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8월 12일. 드디어 아저씨와 함께 서울 나들이의 첫 시작을 하기 위해 자립생활주택에 방문하였는데... 이게 웬 일? 아저씨는 외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는 나를 조용히~ 방으로 부르셨다. 난 외출준비를 전혀 하고 계시지 않은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실망을 하고 따라 들어갔지만, 그 실망감은 1분도 되지 않아 환희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번에 SH공사에 임대 주택 신청을 한 게 대기번호 3번이 나와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주택이 당첨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 목동에 있는 아파트에 당첨이 되었는데, 그깟 외출이 문제겠는가?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나들이에 대한 ILST 계획을 임대주택 입주까지의 준비과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퇴소절차, 집안 꾸미기, 전세금에 대한 것들 등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임대주택 입주를 위한 준비가 시작이 되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보증금 마련이 큰 급선무였다. 자립지원 정착금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돈은 완전히 자립을 하여 전입신고를 하고 한 달 이상이 소요되기에 그것을 기다리기에는 큰 무리가 있어 대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출이 가장 좋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아저씨가 찾아내셨다. 우리은행에서 ‘버팀목 전세 대출’이라는 상품을 찾아내신 것이다. 기초수급자, 장애인, 저소득층을 위한 대출로서 전세금의 70%까지 대출을 해주고 매달 이자를 조금씩 내고, 2년마다 일정금액을 상환하면 되는 그런 상품이었다. 나머지 모자란 부분은 무호아저씨의 동생 분에게 빌리기로 하여 전세금 마련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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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이사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입주예정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입주날짜를 정하고, 도배 및 장판은 어떤 것을 할지 결정하고, 청소, 집안 가구나 가전제품 구매 등 한 단계씩 밟아가며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이사를 앞둔 9월 24일. 아저씨가 함께 요리를 하여 식사를 하자고 하셔서 자립생활주택을 방문하였다. 그날따라 아저씨께서는 표정이 밝으셨다. 너무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아저씨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오늘따라 표정이 너무 밝아 보이시네요?’라는 나의 질문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국민연금공단이 내게 추석 선물을 줬어. 이거 한번 봐봐.’라고 말씀하시며 내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나는 ‘국민연금공단이요? 뭔 바람이 불어서 선물을 했데? 이런 데 쓸 예산 있으면 인건비 늘려서 현장실사나 더 열심히 하지.’라는 푸념을 하며 그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그 봉투 안에는 전혀 뜻밖의 것이 들어있었다. ‘장애 등급 판정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2급에서 1급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계속 흘러 내렸다. 그토록 원하시던, 그토록 원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계속 눈물이 났다. 너무 기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아저씨께서 올해 초 나와 함께 나누었던 아저씨의 바람이 모두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준비해왔던 모든 시간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계속 났다. 이제는 아저씨가 활동보조 시간에 쫓겨 일찍 잠자리에 들 필요도 없고,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계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자립생활주택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식사를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0월 1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주택1-가형에서의 퇴소 및 개별ILST가 끝나는 날.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그래서 이사날짜를 하루 늦출까? 하고 아저씨에게 여쭈었지만, 아저씨는 ‘비 오는 날 이사 가면 잘산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믿고 이사를 진행하였다. 아저씨의 짐을 하나하나 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났었고, 마지막으로 입주자분들과 사진을 찍고 새로운 새로운 시작이 될 목동의 아파트로 이동 이사를 마쳤다.그리고 새롭게 이사를 한 그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아저씨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자립생활주택 입주자와 담당자의 시간은 끝이 났다. 그렇게 입주자와 담당자의 사이는 끝이 났지만, 이대로 무호아저씨와의 인연을 끝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퇴소자 사후 지원을 3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저씨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가을 나들이도 가고, 전체 입주자 모꼬지도 함께하고, 입주자-퇴소자 간의 간담회도 하며 여전히 노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무호아저씨.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저씨께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욱 멋지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원해드리고자 한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모두가 무호아저씨께서 생각하시고 행동하시고,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끝까지 믿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저씨와 함께했던 이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이 과정들이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지원할 것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주택 코디네이터. 내게는 너무 행복한 자리이자,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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