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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설은 없다
좋~은 시설이 있다는 건, 
좋~은 군대가 있다는 말과 같다!!


이승헌 | 2002년에 ‘민중복지연대’라는 단체의 상근자로서 최옥란 열사 투쟁, 이동권 투쟁, 에바다 투쟁을
함께하면서 장판과 인연을 맺었다. 그해 말 민주화 과정에 있던 에바다복지회의 사무국장을 맡게 되면서 평택에 내려가 오랫동안 일했다. 2015년 5월부터 (사)노들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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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지금으로부터 12년도 더 전에... 에바다 시설 비리 척결, 민주화, 정상화를 외치며 에바다에 들어갔을 때 그때 목표는 아마 ‘좋은 시설 만들기’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시설’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그런 시설 말입니다. 1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단언컨대 ‘좋은 시설이란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들에 와서 얼마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는 자립생활모델 연구개발사업을 주관하여 진행하면서, 이 사업에 참여했다가 자립을 지원하게 된 어느 시설 거주 여성장애인이 밝힌 자립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을 자유를 위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짧고도 굵은 한마디의 말을 들은 후, 저는 군복무 시절 모든 것이 통제되고 억압받았던 군대에서의 기억이 떠올랐고, ‘좋은 시설이 있다는 말은, 좋은 군대가 있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군대 이야기를 하자면, 흔히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군대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군 복무가 끝난 사람, 군생활이 끝나가는 말년 고참들, 군 부대의 운영자인 장교, 그리고 군생활을 하는 자녀를 둔 가족들. 정작 본인만 힘들다고 하지요. 이런 군대와 시설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저만의 과도한 생각일까요? 어쨌든 그래서 저는 ‘좋은 시설이 있다는 말은, 좋은 군대가 있다는 말과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굳이 군대를 끄집어 내지 않아도, 좋은 시설이 불가능한 이유들을 하나씩 이야기하자면.

첫째,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점이 용이한 구조입니다. 사회복지법인은 비록 ‘민간’재단법인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업수행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수행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거의 모든 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치고는 독점이 너무 용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도가니 사건 이후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면서 그나마 지역사회로부터 외부이사 추천이 의무화되었지만, 그래도 이사 정수의 1/3을 넘지 못합니다. 나머지 2/3는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이사들을 ‘자가 선출’ 합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이사회 내부에서 다수파를 점하게 되면 이사의 추가적인 선임부터 시설장의 임면 등 법인과 시설 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틀어쥐게 되고 독점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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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사회복지법인 자체가 기형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공공의 재원인 국민의 세금을 민간의 특정 집단이 독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법인입니다. 저는 정말로 제대로 된 복지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기형적이고 독점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사회복지법인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복지법인들의 재산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귀속시키고 복지사업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수행해야 합니다.

둘째, 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있습니다. 먼저, 운영법인과 시설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운영법인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향에 맞게 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며, 그 정체성과 지향이라는 것은 법인 이사회의 다수파의 영향력 아래서 형성됩니다. 그리고 시설은 당연히 운영법인의 그런 정체성과 지향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설장의 임면권은 물론, 예산과 결산, 사업계획의 심의 의결권, 직원 채용 및 인사에 관한 권한, 각종 규정의 개폐 등 이 모든 것이 이사회의 소관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사회의 다수파들의 정체성, 지향에 따라 시설은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법인/시설운영자들과 종사자들의 이해관계, 노사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로기준법이 거의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그만큼 비상식적인 노사관계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고 종사자들의 처우와 권익도 상당히 향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노사관계의 유지에 전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회복지법인들의 대부분은 수익사업이 아닌 공익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무능력한 상태에 있습니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도 스스로는 지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회복지법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말도 안 되는, 구조조정 대상들입니다. 결국 사회복지법인들이나 시설운영자들은 시설종사자들의 처우가 개선될수록 국가와 지자체의 보조금에 더욱 종속되거나, 시설운영을 통해 자부담 수익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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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해관계는 거주인 가족들과 시설의 관계입니다. 사실 거주인 스스로 자발적 입소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가족들이 의뢰하고 입소가 이루어집니다. 특히 지적장애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사실 저는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단기보호시설, 장애인거주시설 같은 서비스는 거주인 당사자를 위한 서비스라기보다는 그 가족들을 위한 서비스의 성격이 더 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가족들이 케어의 부담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그것이 서비스 제공의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시설 입소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시설 입소를 의뢰하는 사람도, 시설 입소를 결정하는 사람도 ‘가족’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 시설의 관계입니다.
시설은 운영할수록, 직원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직원들의 근속년수가 올라갈수록, 시설이 노후될수록,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끊임없는 재원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어느 시점이 되면 보조금만으로는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되고, 따라서 자원봉사자 확대, 후원사업 확대 등을 통해 자체 재원을 조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시설의 입장에서는 지역사회에 언제나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합니다. 그뿐입니까? 반대로 지역사회의 돈 푼깨나 만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예욕을 위해서 정치인들은 표를 받기 위해서 시설과 이해관계를 형성합니다.

이렇듯 시설은 그 자체가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거대한 이해관계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이 이해관계는 언제나 법인의 존립, 시설 운영상의 문제로 표현되며, 거주인들의 실질적인 욕구를 뒷전으로 밀어버릴 뿐만 아니라, 거주인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통제하는 이유가 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복지법인이 갖는 태생적으로 기형적인 구조, 독점이 용이한 구조 탓에, 시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이해관계의 덩어리인 탓에, ‘좋은 시설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시설은 복지사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복지’를 내세워 거대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기형적인 집단에 불과합니다.

“좋은 시설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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