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141호 - 함께-해-요 아랫마을! : 홈리스야학과 홈리스 추모제 / 린
함께-해-요 아랫마을!
: 홈리스야학과 홈리스 추모제
린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같이 책 읽기, 따뜻한 차, 나열식 문장이 좋습니다
저번에는 노들의 퀴어한 시간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글을 제안받았다. 작년 겨울에 있었던 홈리스 추모제에 대한 글이다. 그런데 왜 노들바람 글을 제안받을 때마다 그 일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질까? 그래도 시간이 흐른 뒤 남은 것들로 글을 써보려 한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이 글이 인쇄되어 나올 때 즘이면 이번 글도 마치 오래전 기억처럼 느껴지겠지. 그래서일까 노들바람을 받을 때마다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번에는 두 달 전 이야기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2024년 12월, ‘합창과 연대’ 수업에서는 홈리스야학을 초대해 같이 노래를 나누고, 홈리스 추모제에도 함께했다.
홈리스 추모제 날짜는 잊기 어렵다. 매년 동짓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홈리스에게 특히 가혹한 시간이자 동시에 홈리스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비추는 날이다. 2024년 가장 밤이 긴 날은 12월 20일 금요일이었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그보다 일주일 전인 13일 금요일이었다.
맥심 한 상자를 들고 야학의 문을 두드리신 홈리스야학 분들이 떠오른다. 새로운 사람들의 등장에 호기심을 가지던 노들야학 사람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낯설지 않은 느낌이 신기했다. 그들도 두리번, 우리도 두리번. 조용하지만 들뜬 분위기 속에서 홈리스야학의 특별 교양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하품을 하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노들은 항상 그렇듯이 노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그 안에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든 홈리스야학 분들이 재밌었다.
홈리스 추모제는 2001년에 시작되었다. 이 추모제에서는 거리나 쪽방, 고시원, 시설 등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을 기리고, 홈리스의 권리를 주장한다. 홈리스는 더 이른 나이에, 더 많은 수가 사망하지만, 공식적인 사망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죽음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한다. 이는 홈리스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의 결과임을 알리는 것이며, 홈리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4 홈리스 추모제의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 무연고·홈리스 사망자의 애도 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라공영장례 부고게시 의무 법제화, 사별자의 장례 참여 접근권 보장, 공영장례 시 합동장례가 아닌 개별장례 보장, 영정사진 제공 및 비치, 마을공동체 장려 표준안 마련, 공설 장례시장 확대
● 홈리스 주거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하라동자동 쪽방촌 공공임대주택 사업 신속 추진, 고시원 거주자의 부당퇴거 방지, 주거상향 대책 강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확대
●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를 보장하라홈리스에 대한 형벌화 조치 중단, 공공장소 이용의 권리 보장
강연이 끝난 후, 홈리스야학에서 한 곡, 야학에서 한 곡씩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 같이 추모제에 들고 갈 피켓을 만들었다.
홈리스야학은 무려, 직접 만든, ‘함께해요 아랫마을’이라는 엄청난 노래를 불렀다. 정말 강렬한 노래다. 한번 듣고 나면 후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주 무서운 노래다. 따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은 노래다. 신기한 노래다. 노들은 마지막까지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고민하다가 ‘노래여 날아가라’를 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정확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함께해요 아랫마을~”만 기억에 남는다. 대단한 노래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드락이나 상자의 뒷면에 우리가 들고 행진할 문구를 적었다. 노들야학은 홈리스에 대해, 홈리스야학은 장애인에 대해 썼다. 누군가는 자신의 키만큼 길게 적었고, 누군가는 정성을 들여 작품을 만들었다.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며 기뻤고, 같이 들고 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을 때는 뿌듯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만든 피켓을 정작 추모제에서는 챙기지 못했다. 현장에서 피켓이 없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걸 잊을 수가 있나 싶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2024년 동짓날, 서울역 앞에는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빼곡한 벽이 있었다. 홈리스야학의 합창이 있었고, 방석과 핫팩을 가지고 사람들이 계단을 채웠으며, 왜인지 계속 서 있던 형도 있었다.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추운 날씨에 볼이 빨개진 사람들이 있었다. 흰 눈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눈을 밟으며 행진했고, 서울역을 한 바퀴 돌았다. 슬픔을 안고 걸었지만, 우리는 함께 걷고 있었다.
수업에서 만든 피켓은 ‘합창과 연대’의 교구박스에 있다. 올해 동지에는 그 피켓들도 눈을 맞으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길. 깜빡하지 말고!
우리는 노래해
(부제: 함께해요 아랫마을)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합창교실
작사: 날라,
작곡: 동동
지하실 노랫소리 이끌려 따라왔지
목청껏 부르면 스트레스 풀리지
반복 연습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들
짜릿해 우리는 무대체질~
누구와 어떻게 살건가
먹고 노래부르고 투쟁
서로 돌보고 돌봄받는 우리는
돌봄과 연대의 아랫마을~
글을 못읽어도 부를 수 있어
우린 씩씩하게 노래를 불러
아파도 가난해도 돌볼 수 있어
함께해요 아랫마을~
언제나 너의 말을 기억하는 세심함
겉으론 툴툴 속엔 따뜻한 정이 뚝뚝
다정한 시선과 따뜻하게 오가는 말 가득한
우리는 합창교실~
누구와 어떻게 살건가
먹고 노래부르고 투쟁
서로 돌보고 돌봄받는 우린
돌봄과 연대의 아랫마을~
글을 못읽어도 부를 수 있어
우린 씩씩하게 노래를 불러
아파도 가난해도 돌볼 수 있어
함께해요 아랫마을~
글을 못읽어도 부를 수 있어
우린 씩씩하게 노래를 불러
아파도 가난해도 돌볼 수 있어
함께해요 아랫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