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평등한 밥상 & 노란들판의 꿈]
정신 차려보니 밥을 하고 있었어요
- 평등한 밥상 주방 이야기
이권희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 없음, 전주 사람(50%), 주방경력 다수, 신라호텔 주방장의 요리 잘 먹음, 밥 잘 먹고 다님, 식사 경력직, 얼레벌레 전문가.
사실 잔치가 열리면 정신없이 바쁜 것도 주방이지만, 제일 풍족한 것도 주방이라 저는 입이 굉장히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아침 일찍 모여 다 같이 유부초밥을 조물조물 만들던 풍경이 기억납니다.
영원히 찢어지는 유부주머니들과 부스러지는 떡밥을 합체시키느라 처음 만난 모든 동지들과도 어떤 유대감을 가지게 된 상황은 하루의 유쾌한 시작이었어요.
동시에 전날 밤 늦게까지 설탕 코팅해둔 바나나 브륄레가 밤 사이 녹아버린 비극 앞에서, 공간과 메시지 뿐 아니라 시간도 잘 맞춰야 하는 게 투쟁이라는 가슴 아픈 경험도 체득했습니다.

유부주먹밥 조물조물

평등한 밥상 전날 밤 늦게까지 바나나 브륄레를 준비하는 노들 활동가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평등한 밥상에서 함께 요리를 할 줄 몰랐습니다. 정말 사는 건 어쩌다 보니, 정신 차리고 보니 하고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듯합니다.
처음 보는 레시피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와버린 제 활동과 너무도 흡사해서 많이 놀랐습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들 듯, 내가 하는 것들이 저를 표현하는 거겠죠?
참 얼레벌레 사는구나 싶으면서도, 이런 얼레벌레한 속도감이 좋습니다.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내보내고, 동나면 다시 준비하는 와중에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레시피를, 오늘 하루만 내보내는 데에도 이렇게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급식을 조리해주시는 선생님들은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 20일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총파업을 진행했습니다.
학교 급식실이 우리의 경험과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됨은 물론이고, 그들 모두 비정규직일 뿐 아니라, 일 년 중 6개월은 방학으로 인해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당 기간 동안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자유롭지도 않은 현 상황을 개선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학생들의 의무교육을 법으로 규정해 놓았듯이,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러 환경의 안정적 보장 또한 법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저는 “밥 먹었니?”를 일상적 인사말로 쓰는 한국 사람으로 우리를 규정지으려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들다방은 바로 이 점에서 너무너무 소중한 장소입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학생이 있으면 빨리 식사를 하길 권하고, 오늘의 급식메뉴 중 어떤 것이 제일 좋았는지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이곳이 정말 학교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밥을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걸까요?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연대하고, 들다방의 선생님들께도 무한한 존경을 표하며, 평등한 밥상을 계속해서 나누기 위해 힘써주시는 모든 동지들께도 마음 속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재료 한가득 썰고, 다지고

평등한 밥상 전날부터 주방은 북적북적

2025년 평등한 밥상 ‘평등한 메뉴판’

평등한 밥상 당일 아침 주방팀 준비 시작!

평등한 밥상 때마다 함께 하는 성미산 학교 학생들의 연대부스 메뉴 준비

일찍 완판된 메뉴들 덕분에 갑자기 신메뉴 준비로 분주한 노들 활동가들

행사 끝나고, 주방 정리까지 말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