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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 2014.12.31 07:29
    노들야학 스무해 톺아보기 프로젝트

    노들과 당신의 이야기

    - 노들20주년 역사팀 은전

    2003년 나는 하필 "10주년" 개교기념제의 준비팀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은 교사에게 '지나온 10년을 기념하라'는 미션이 떨어졌습니다. 고심 끝에 우리는 노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를 준비하기로 하고, 역사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느라 살아온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를 준비하기로 하고, 역사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느라 교무실을 거꾸로 뒤집어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좁은 그곳 어디에 숨어 있엇을까 신기한 옛 기록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일약 유물 보존에 힘쓴 개념 있는 후배가 되었지요.
    그러나 행사가 끝나고, 자신들의 창조자이자 든든한 후견인인 동문들이 모두 돌아가자, 유물들인 이내 '재투성이 파일철'로 변하여 본새을 알 수 없는 새 주인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전시회 준비에 급급해서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저이들을 열면, 일이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우리는 당장 내일이 더 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물들은 그대로 '봉인'하기로 합니다.
    "괜찮아 - 20주년이 있잖아."라는 말로 석연치 않은 마음을 털어내면서, 그때 우리가 정말 20주년을 기약했을까요? 노들을 거쳐 간 당신은 대버에 알 수 있겠지요. 교사들의 평균 활동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20주년이란 당연히 '오지 않을 먼 미래'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는 그 재투서잉 파일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속엔 무슨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아직 무사하긴 한 걸까.

    생각보다 10년은 빨리 흘렀습니다.
    나는 아직도 '장애해방'이란 말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때보다 '노들'을 더 잘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노들 사람들 속에서 가슴 벅차게 사랑하고 사랑 받았으며 진심으로 미움 받으며, 수도 없이 도망을 갔지만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노들의 시간이 1년 주어졌습니다.'
    당신이라면,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하겠습니까?

    퇴임을 결심하고 퇴임식을 앞둔 그 날까지, 당신은 무엇을 하며 노들의 시간을 채웠습니까?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 할까봐 끝까지 그 사실을 숨겼나요? 미안한 마음으로 술을 샀나요? 원망이 많아서 불쑥 불쑥 터져 버리는 화 때문에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냈을까요? 호깃 눈물이 터지면 어쩌나 퇴임식에 불참할 궁리에 골몰하진 않았는지요.
    나처럼 많이 흔들려본 사람이 갖는 단 하나의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노들에서 만난 보석 같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것들을 품어 진주로 만들어내던 노들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렇게 먹은 술로 대부분 노들이야기를 했습니다.
    노들을 잘 모르는 내 친구가 나에게 늘 묻던 말이 있죠.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심지어 1년 전에도 똑같은 사람들이랑 ,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나는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노들이야기! 얼마나 재밌는데, 그리고, 우리, 매일 다른 얘기해"

    그래봤자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제 준호는 사랑이가 한 마에 너무 화가나서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만화방에 박혀 만화를 볼 지경이었고, 사랑이의 전호를 수차례 쌩까는 등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는데, 뒷날 사랑이가 [대장금] 배경음악이라도 깔아야할 것 같은 비주얼의 '배숙'을 가지고와
    '너를 위해 준비했다.' 삐죽거리며 내밀자, 준호는 전화 화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그만 웃어 버려서 억울하게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나마 이 이야기는 기승전결이나 있지,우리들의 술자리에는 이야기랄 것도 없는 허리 없고 꼬리 잘린 그것들이 꾸무럭거립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긴 수고를 무릅쓴다면 자연히 알게 될 것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고, 그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 그 말을 어제는 A로 오늘은 A'로 끊임없이 변형, 반복,확인하고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무언가'가 뭔지에 대해서 나로서는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혹시 당신은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나요?

    나는 요즘 그 좋아하던 술을 잠시 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매일 밤 대학로 곳곳에서 풀어질 '노들야화'가 궁금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지요. 민구가 전날 만신 술로 몹시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을 하면, 나는 안테나를 징~ 세우고 그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누구랑 마셨냐, 어디서 마셨냐, 재밌었냐, 는 질문에 걱실걱실 대답 잘하던 놈이 '무슨 이야기했어?'라는 질문에 정색하며 말합니다.
    "어디서 날로 먹을려고 그래! 거래가 될 만한 걸 갖고 와요."
    간밤 술자리에서 간신히 건져낸 시나리오라는 것이 사실은 시간을 버티는 체력전과 각고의 심리전 끝에 얻은 전리품이므로, 가만히 앉아 엑기스만 취하겠다는 심보는 부도덕한 일이라는 겁니다.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어젯밤 술자리 이야기와 바꿀 수 있을 만한 다른 이야기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피 흘린 훈장이 없는 이에게 쉽게 들려오는 그런 노들 이야기는 잘 없더군요. 긴긴 술의 강을 건너지 못할 거라면 누군가를 업고 산 하나쯤 넘는 수고는 감수해야하나 봅니다.

    그때 나는 오래 전 재투성이 파일철들이 떠올랐습니다. 냉동고를 다시 열면 어째 일이 많이 커질 것 같아 망설였지만, 20주년이 와 버렸으므로, 또한 열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들을 만났습니다. 다행히 무사하셨군요.

    당신이 고작 스물다섯이었을 때 야학을 만들고 이름을 '노들'이라 짓고, 그 '꼴'을 갖추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생략된 말들이 짐작되어 눈물이 쑥 나버렸습니다. 또 당신이 적어 놓은 대로 '할 말을 잃게 하는' 날씨에 아차산 초입에 있던 야학을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별이 또렷이 보인다'는 그 날은 수업 끝나고 내려가며 소주를 한 잔 부딪쳤나요? '교무일지 좀 씁시다.'라고, 교무일지 낱장마다 닦달한 당신은 멘탈이 아주 단단한 분 같습니다. 교사들은 쓰라는 수업내용은 안 쓰고 '교사대표가 너무 무서워요'라고 '건의'했네요. 예나 지금이나 교사들은 참 말을 안 듣습니다.
    '춥다 춥다' 노래를 불러 어찌어찌 난로 하나 들였더니, 이번엔 '공기가 탁해서 숨이 막힌다'하고, '덥다 덥다' 노래를 불러 간신히 선풍기를 구해 틀었더니, 이번엔 '바람에 먼지가 쓸려 다닌다'하고, '어둡다 어둡다' 유난을 떨어 겨우 형광등 갈았더나, '눈이 부셔 힘들다'하는 일이 그때도 있었군요. 나도 모처럼 크게 웃었습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는, 여전히,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마치 영원한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기록도 있었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 : 아무런 특별한, 별일이 없었다. 웃긴 했는데 무슨 일로 웃었는지 모르겠다."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이 형광등을 갈고 사라진 걸레를 찾아 돌아다니듯 사소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웃을 일이 더 많았으니 충분히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비록 정든 이들이 자주 떠나갔고, 때로는 함께 공부하던 이가 사라지는 참담한 일도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날, 아무런 특별한 별 일이 없었으므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노들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눈에 밟혔던 것도 그 사소한 일상이 아니었나요? '누군가는 노들을 지켜주었으면'했던 당신의 이기적인 마음도 실은 누군가 남아서 형광등을 갈고, 칠판지우개를 갈아주길 걱정했던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빈다.

    나는 아직도 '장애해방'이라는 말을 잘 설명할 수가 없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내 마음까지 다 품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장애해방일거라고 믿습니다. 어떤 것을 칭하는 '제한'이 아니라 어떤 것도 품을 수 있는 '제한없음'일 거라고, 그렇다면 수업 하는 내내 교실 위를 둥둥 떠다니던 말풍선들 - 하나로 합치기엔 애매했던 우리 각자의 걱정과 바람들-을 담기에 더없이 좋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했던 중증장애인 은영이의 꿈은 물론이고 '이렇게 서류적인(기능적인!)' 인간으로 살기 싫다'는 노들 상근자 은전이의 꿈, 그리고 은영과 은전이 '평범한 이웃'으로 만나는 꿈까지요.

    그저 소박한 하루가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들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교실은 바깥세상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은영과 나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온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매일 뼈아프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절망이었고, 어떤 이에겐 희망이었을 테지요.

    나는 언젠가부터 누군가가 우리의 교실로 들어와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해주길 바랬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무수히 취재되었고, 고맙게도 연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실의 온도와 습도, 냄새와 소란스러움 같은 현장성과 일상의 맥락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 말해진 노들이야기라 할지라도 음이 소거된 영상처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말하고 쓸 차례입니다.

    20주년을 기념하라는 미션이 떨어졌습니다. 10년 전처럼 과거의 기록을 잘 봉인하고 냉동고 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헤집어 '다시 듣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장애해방 인간해방의 길에서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고 싶었던,
    작은 학교 '노들'의 스무해 이야기는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으므로

    당신이 아는 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사랑하고 불편하고 미워했던 그 하루들의 이야기. 그리고 노들을 통과한 당신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그러면 나는 민구의 것과 바꾸어와 다시 당신에게 내가 아는 노들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나누고 나면, 나와 당신이 지키고 싶어 했던 그 '무언가'를 말하기가 좀 쉬워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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